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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 한국 단편 소설과 만남
오세영 지음 / 청년사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오세영이란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났던 것은 그가 빅점프에 [오세영 만화문학관]을 연재할 때의 일이었다. 트웬티 세븐이나 빅점프, 당시 만화계의 양대 축이었던 두 출판사에서 의욕적으로 내기 시작한 두 잡지의 방향성은 공통적으로 저 전설적인 성인만화잡지인 만화광장을 계승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목록에서 중견에 이른 기성 성인작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당시 흡수해야했을 젊은 성인 대중의 취향과는 유리된, 다소 고루한 면모가 보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잡지 전체적으로 작품들의 구성 및 분배 차원에서 젊고 발랄한 정신세계를 가진 작가의 기용이 아쉬웠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 안에서 그 어떤 작품보다도 살아서 빛나고 있는 것은 오세영의 만화였다.
아직 만화광장도 몰랐고 그의 이전 작업들도 몰랐던 나에게 그의 만화는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과 함께,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드래곤볼]과 [란마]와 같은 소년만화를 중심으로 한 일본 만화들이 보여주던 스타일과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이후 그에 전반적으로 물들어가던 소년잡지의 흐름, 스토리와 발상의 표절과 이현세 작화의 동어반복들이 대세처럼 꾸준하게 이어지던 대본소 스타일과도 다른,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음으로써 되려 한국인이 만든 만화라는 걸 가장 완벽하게 표현해낸 만화. 굳이 박재동의 절찬을 보지 못한 이라 하더라도 그의 그림을 보면 이 작가가 얼마나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 노작가가 70년대 한국만화계의 공장시스템 한복판에서 박봉성과 함께 같은 작가 밑에서 문하생으로 있었다는 것은 조금 놀랍고도 재밌는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결국 오세영은 공장시스템에 질려서 그 판을 떠나 극장 간판을 그리는 일로 10년 가까이 보내게 되고, 박봉성은 남아서 그 시스템의 정통파 후계자가 됐지만.
만화의 형식으로 보자면 이 작품집에서 보여지는 양상은 일종의 다이제스트식 컨버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 싶다. 단편소설 원작의 양식 자체를 존중하여 작가의 주관적 해석을 피하고 최대한 텍스트를 살려놓는 가운데 텍스트가 묘사하는 세계를 그대로 뽑아내어 그 시대와 사람들에 대한 극리얼리즘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 이것은 고전적인 만화시대를 살아온 작가가 가진 원본을 대하는 자세에 관련한 정석이라 할 수 있는 형식이며 동시에 만화를 문학에 가까운 영역에 배치시켜놓는 만화장르의 고전적 형태이기도 하다. 작품집에 실린 작품들은 주로 근현대 우리나라 소설(과 사회의)의 본격적 태동기 즈음에 발표된 단편들이 중심이 되어 작품군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격변기 와중에 새롭게 구축되는 계급과 자본, 신식문물들이 뒤엉키는 혼돈기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삶을 그려내는데는 오세영의 심지 굳은 접근법이 제격이었고 그 결과는 달리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작품 19편이 실린 이 작품집의 두께는 책장을 만족스럽게 메꿔줄 두툼한 부피를 자랑하고 있음에, 배게 대용으로 써도 충분히 만족할 법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물론 배게로 쓴다는 것이 이 압도적인 작품집에 대한 욕이 아니라 그 출중한 기능성에 대한 너그러운 찬사로 비춰지길 바라며, 이 노작가가 곧 만들어낼 [토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 또한 부풀어있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