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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령 Day Dream 3
사키 오쿠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3권까지 본 지금, 이 작품에 대한 제 느낌이 아직까지도 동일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게 여겨집니다. 음.... 분명히 또, 미묘하게 틀린데도 말이죠. 그러한, 여전히 종잡을 수 없다는 막연함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외형적으론 도시 괴담의 장르를 택하고 그 뒤에 오오츠카 에이지 스타일의 냉소적인 시선과 음모론을 깔면서 여유와 개그 코드로 SM을 위시한 풍속업계 에피소드들을 보여주고 있는 이 물건은 그냥, 이렇게 설명만 하면 지금까지 줄기차게 나왔던 그 장르의 그 물건들과 별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매너리즘의 함정이 작품을 얼마나 깎아먹게 되는 것인지 잘 알고 있겠죠. 그에 대한 우려의 결과로 작품은 그러한 코드들의 경계에서 느슨하게 걸쳐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주인공인 미사키는 영매인 동시에 쿨한 성깔을 보유한 SM클럽의 여왕님이고 그녀의 조력자이자 공무원인 소이치로는 꽤 괜찮은(엄청난은 아닌) 격투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유령만 나오면 정신이 나가는 중증 혼령 공포증. 전자쪽들의 특징이 스테레오 타입의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면 후자쪽 모습들은 그에 대한 도주의 틈을 열어놓습니다. 그리고 주목할만한 것이라면 이제 3권씩이나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제대로 설명이 가능한 캐릭터는 아직 이정도뿐이라는 겁니다. 이건 스토리 작가의 머뭇거림일까요, 아님 부러 열어놓는 수비전일까요.

그렇지만 상당히 재밌습니다. 괴담물이 기본으로 제공해주는 소재적 흥미와 동시에 동일 장르가 가지는 매너리즘에서 탈피하려는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랄까요. 아직까지는 아슬아슬해 보이는 줄타기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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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마스터 X 3
안노 모요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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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의 앨리스, 나오양은 자신이 '무수한 연애 서적과 드라마, 영화를 섭렵'했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이 중2에 이미 '연애의 도'(세상에나)를 터득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나는 것이지만 그녀는 이성애적 세계관에 입각한 자신의 상대가 가지는 생리적인 욕구마저 이해 못하고 방황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조숙한 척을 해봤자 그녀는 어립니다.

시기적으로 하나의 경계가 되는 중2(2차 성징기, 혹은 사춘기. 이야기는 chapter14에서 끝을 맺게 됩니다.) 라는 나이에 이미 알 걸 다 알아버린 세리카나 알 걸 다 알아버릴 예정인 유리나나 계획적으로 사랑이 아닌 관계를 지속시키는 타케다나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그녀의 부모 등등 그녀 주위의 모든, 사랑 비스무리한 것을 하는 인물들은 그녀보다 조금, 더 늙어버린 셈이죠.

하지만 나오를 포함하는 모든 인물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나오가 중2라는 시점에서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성숙도와 더 차이가 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얼마 안되는 가족관계임에도 불구하고(사실,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회의는 안노 모요코 만화의 특징이라고 봅니다. 대부분은 깡그리 무시되고 나온다 해도 그것은 기존 질서에 대한 일탈과 예외라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장치로써 기능하죠) 부단히 얽히고 섥힌 그들 모두는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자신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또 발견하기에 바쁘죠. 그들의 사랑은 후회를 동반하며 반복되고 교차되길 계속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매번 깨달으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죠. 그 관계와 에피소드들 속에는 발전이라는 게 없습니다. 아니, 어찌보면 사랑이란 것에 있어 그것은 우스운 개념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세 권으로 완결되는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캐릭터들이 풍부하게 살아있습니다. 다만 나오 동생 꼬마와 나오 할아버지 영감이 진실의 수호자인 동시에 그토록 대민 피해가 없는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끝까지 자리하는 가족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인지요. 안개 속의 미궁처럼 되어버린 관계와 나레이션들 속에서 답을 내려고 했던 작가에게 그들의 존재, 그들의 목소리는 정답을 피한 최선의 답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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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노래 7
토우메 케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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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메 케이는 그저 그림만으로 좋아하게 만든 작가였다. 흑철을 처음 봤을 때, 그의 그림은 유화의 진한 선과 만화체가 선사하는 만화다움이라는 분위기, 그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어중간하다고밖엔 볼 수 없는, 작품에 대한 어색함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작가에게서 자신의 작품을 어색해 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토우메 케이는 그 기간이 좀 긴 편이었다.

초기작인 '제로'는 그 결과가 상당히 보기 안 좋게 나타난 경우였고 '흑철'은 옴니버스식이라는 호흡 고르기로 그런 함정을 가까스로 피해가고 있었다. 그의 작품이 대부분 비극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녀의 그런 태도는 작가가 가진 어둠이 작품에서 비교적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작가 자신이 작품 속에 빠져 들지 못 할 이유를 제공해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그녀가 장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 4권이 나올지 모를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와 더불어 그녀의 작품 세계를 말해줄 또 하나의 축이 될 이 만화의 제목은 '양의 노래'이다.

'양의 노래'는 흑백으로 인쇄되는 만화가 잿빛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걸 가르쳐주는 작품이다. 모노톤이라는 효과의 극단적인 추구가 아름다움이라는 경지에까지 이른 '다중 인격 탐정 사이코'의 화려함과는 정반대로 이 작품은 그녀의 화풍이 그래왔듯 투박하고 거칠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여느 작품에서보다도 잿빛이라는 인상을 준다. 흑백이 아닌 잿빛.

그것은 이야기에 의한 결과일 것이다. 토우메 케이는 여전히 겉 돌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그런 작가의 태도가 여기선 되려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흡혈귀라는 이제는 진부해진 소재, 답답하고 신경질적인 캐릭터들, 그런 그들을 엮어주는 정과 원초적 관계라는 고전적인 이유. 일족을 통해 내려온 흡혈이라는 병과 남매간의 유사 근친상간적 에로티시즘, 그리고 그들과 그 주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줄기차게 묘사되는 이 작품에서 모든 인물들은 머뭇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행동에 대한 머뭇거림이다. 자신들이 취하고픈, 그러니, 욕구라 불러야 마땅할 행동에 대한 머뭇거림. 의도했든 아니든 대단히 금욕적인 만화가 되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밑에서 욕망은 꿈틀거리고 있다. 억지로 덮어진 에로티시즘. 그리고 그 금욕과 답답함은 앞서 말한 작가의 그 겉도는 태도에 의해 증폭된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만화는 흑백의 분명함보다는 잿빛의 탁함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그 잿빛이야말로 이 작품이 창조해낸 미덕이라 할 수 있겠으니 내내 세라복과 기모노 사이에서 입는 옷이 결정되는 치즈나에게 드리워진 억제된 매력처럼 작품은 그 답답스러움과 억제된 감정으로 독자를 마조히즘적 쾌감의 경지로까지 몰아간다. 꾸준히 보여지는 남매간의 갈등은 4권의 폭발이 있을 때까지 끈질기게도 억눌려지고 이것은 진정 토우메 케이가 작품에 갖는 어중간한 태도의 승리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 결말이 났다. 단행본으로는 7권을 겨우 채운 느릿한 호흡과 두텁고 짙은 잿빛의 매혹을 가진 이야기가 6년 반만에 그 끝을 맺은 것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비극은 차곡차곡 진행되고 마지막, 예상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그 모양을 드러낸다. 너무 슬픈 노래라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처럼 조용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그렇게 조용하게, 잃어버린 기억이 되어 시간 속으로 스며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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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실로 2019-01-20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빨 죽이시네요.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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