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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에너미 - Public Enemi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퍼블릭 에너미. 굳이 번역하자면 '공공의 적'.
이미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여러 영화들에 비슷한 의미의 영화제목들이 붙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고, 고민해야 할 주제인 셈이다.
사실 까놓고 보자면, 정치 권력 혹은 경제 권력이 공공의 적일 때가 대부분이고,
하찮은 백성들은 늘 그들의 밥이었을 뿐이다.
역사는 늘 권력을 중심으로 쓰여지고, 올바름 역시 그 중심축은 힘을 가진 사람이 결정해 왔다.
그 안에서 정치와 윤리는 서로 갈지자를 그으며 출렁거리고,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사장되고, 매장되고, 쓰러져 사라져간다.
1930년 미국 대공황은 이런 불행한 역사의 향연장이었다.
누군가는 돈을 긁어모으고 있고, 대부분의 누군가들은 풍성한 만찬장 옆에서 쓰러져갔다.
어느 누군들 숨겨진 '공공의 적' 을 공격하는 '공공의 적' 갱스터 존을 미워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서민의 돈은 털지 않고, '은행'의 돈만 터는 착한 갱스터를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존은 그 불행한 시대를 불운함으로 일관했고, 공공의 적으로 짧은 일생을 마무리했다.
한 없이 아프기만 했던 그의 과거는 그를 불행한 역사의 틈새로 이끌었고,
사악하기 이를데 없는 금융자본권력에 총구를 들이댔다.
지금이나 예나 변함없는 금융자본.
참으로 소리소문없이 사람들을 죽게하고 사라지게 하는 놀라운 권력.
거기에 총을 들이댄다는 것은 시대를 거부하는 유일한 탈출구였을 것이다.
존은 그 시대를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죽었다.
조니 뎁은 직관과 직감에 의지하며 살았던 존의 모습을 나름대로 잘 그려냈고,
존을 체포하려던 멜빈 퍼비스를 맡았던 크리스찬 베일 역시 캐릭터가 살아있는 연기를 펼쳤다.
물론 다양한 등장인물과 늘어지는 편집이 좀 눈이 걸리기는 하지만,
실화를 영화화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겠는가?
있었던 그대로를 옮기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할뿐더러,
그렇게 했다한들 실제의 리얼리티와 애환을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