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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 ㅣ 역사 인물 찾기 15
김형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잠꼬대하는 것 같더니 훌쩍 담을 넘어버린 사람.
그와 그나마 한 시대를 잠깐이라도 살았던 것이 영광이 되면서도,
보다 더 가깝게 가지 못했던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800여 쪽에 이르는 평전의 곳곳을 채우는 그의 열정과 사랑.
그의 마음을 평전에 담아 놓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떠나는 사람 누구나가 몇 글자라도 남기는 것은 아니니까.
시대와 불화를 겪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꿈꾸던 미래를
문 목사님은 이미 살았던 것은 아닐까.
여섯 번의 감옥살이는 대표적인 시대와의 불화이겠지만,
그는 그 안에서도 행복했다.
배신과 타협의 계절. 혹은 심사숙고의 시절들을 겪으면서
급격하게 돌아선 우리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테제를 원하지만,
우리들의 테제는 나 자신을 위해 이기적인 것 말고는 남지 않았다.
문 목사님이라면 이때를 어떻게 살아가셨을까?
그 분이 남긴 발자국 속에 오늘의 하루하루가 숨 쉬고 있지만,
나는 그분과 함께 호흡하지 못한다.
무엇이 바른 길인지를 찾는 아직 정신적 방황기에 여전히 놓여 있다.
벌써 움직여야 할 땐데, 벌써 행동해야 할 땐데.
아니, 아니다.
문 목사님도 수십년의 고민과 단련을 통해 기다려 오셨다.
아직도 시간은 남아 있다.
조금 더 묵상할 시간, 조금 더 괴로워할 시간, 조금 더 농익을 시간.
마음 속 깊숙이 더욱 풍성해지자, 더욱 풍부해지자.
문 목사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심양에서 남한을 거쳐 북한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었던 그 길들을
우리가 따라 갈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