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수없는 며느리 VS 파란 눈의 시아버지
전희원 지음, 김해진 그림 / 모티브북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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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 전에 읽었다. 초판이 2004년이고 아마 그 즈음에 읽었나보다. 

다른 사람들처럼 배꼽 빠지게 읽은 건 아니지만, 그때의 나에게, 나의 어떤 태도에 도움이 되었다. 


결혼하고 나서 억울한 게 참 많았다. 저녁을 남편에게 맡긴 적도 있었는데 넘겨지지 않는 것들, 싸이클 전부를 책임지지 않으면 모를 태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왜 그 싸이클에 신경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버리고, 전 과정을 하지 않으면 모를 어떤 요구들에 화가 나는 순간들이 많았다. 어떻게 매번 새 반찬을 원할 수 있나, 끓인 찌개 두 번은 먹지 말지,라는 말이 나올 수가 있나. 어떻게 모든 재료를 갖춰서 요리하라고 할 수 있나, 어떻게 어떻게. 그런 요구를 들을 수도, 끼니에 딱 먹고 없앨만큼 찌개를 끓일 수도, 그렇다고 남은 찌개를 톡 털어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해서 '우리 집에 돼지라도 키우냐'라고 소리치거나, '제 몸뚱이만 깨끗하면 다냐, 쓰레기는! 지구는!'이라고 소리지르거나 하는 날들이 있었다. 이런 고민을 나만 하는 게 억울하고, 이런 것들에 마음쓰고 있다는 게 억울한 순간들이었다. 딱 둘 뿐인 가족에서 그게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걸 지금은 좀 더 알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요리에 대해 주방을 장악한다는 것에 대해 '좋은 거네'라고 조금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던 거 같다. 그때가 아니라 지금, 누군가 요리하는 게 싫다고, 밥 걱정하는 걸 억울해하는 말을 하면 이 책에 대해 말하게 된다. 

국제 결혼을 해서 남편과 시댁에 함께 사는 한국인 며느리다. 주방을 장악한 시아버지 덕분에 손에 물 묻힐 일도 없다. 결혼하고 억울한 게 참 많았던 그 시기에 세상 부러울 게 없어보이는 그 삶 속에 하는 불평들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김치가 없는 끼니라니, 해 주는 데로 먹어야 하다니, 참 쉽지 않겠다.  

주방을 장악하는 일이 사는 데 참 중요한 먹는 일에 대하여, 주도권을 가지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된 거다. 억울하기만 한 채로는 그 시기를 건너지 못했을 거다. 같이 살면서 조정해야 하는 주도권 가운데, 희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 와중에 나는 좀 더 요리에 자기 주장을 할 수 있게도 되었다. 지금의 나는 간이 약하다고 하면, 소금을 가져다 준다. 나는 주방의 주인이거든. 잘 먹어주면야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 내가 먹으려면 했어야 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참, 내가 꽤나 숙련된 주부라고 오해할 수도 있어서 추가해야 겠다. 나는, 내가 먹을 밥이니까,라는 마음으로 아침을 김치, 데운 찬밥, 계란후라이로 고정했다. 반찬투정은 금지되었고, 먹지 않으면 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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