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좀 하겠다는데
위리 지음 / SUPERCM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불치병에 대한 치료약 개발에 성공한 세계적인 과학자 앨런킴.

한국 굴지의 그룹 성화그룹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성과를 이룬 그에게

국가는 자신을 낳아 준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발휘해 달라고 채근하고

장학금을 댄 성화그룹에서는 자신들을 위해 일하라고 강요하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은혜를 갚으라는 말인데 앨런킴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스스로 배신자가 되겠다고.

그러나 자신의 권력을 위해 앨런킴을 놓칠 수 없는 대통령과

자신의 돈으로 키운 인재를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성화그룹 회장의 욕망은

앨런킴을 그대로 놓아줄 수 없고 그래서 이 황당하고도 통쾌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떤 이유로든 조국을 배신해서는 안된다는 세뇌를 우리 보다 강하게 하는 나라가 있을까?

조국의 부름에는 어떤 이유로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강한 정서적 유대감이다.

아무리 많은 공헌을 해도 대표팀 은퇴시에 있었던 박지성에 대한 비난만 봐도 그렇다.

하물며 그 가치가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것이라면 비난의 강도는 짐작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라도 배신을 하겠다고 덤비는 앨런킴의 모습은 무모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를 배신자로 몰아넣는 치밀한 언론 조작의 모습을 보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그저 소설에 나올 수 있는 과장된 비약이라고 치부하면 될까? 현실은 그렇치 않다고?

NO!!! 이 소설에 나오는 언론 조작의 모습은 너무도 현실과 닮아있어 씁쓸하고 기가찬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정보에 대한 비판은 사라진 사회에 살고있다.

누군가 그 정보의 흐름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한다면 조작은 너무도 쉽다.

실제로 우리는 '마녀사냥'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여론의 오판을 흔하게 접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 소설의 첫번째 타겟은 윤동일 기자로 대변되는 죽어버린 언론이 되어 버렸다.

앨런킴은 끝까지 윤동일 기자를 밀어부쳐 스스로 되살아난 언론으로 돌아가게 하였지만

우리는 지금의 죽어버린 언론을 과연 어떻게 살려내야 할 것인가? 답답했고 씁쓸했다.

 

겉으로는 국가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그 속내는 개인의 권력에 있는 정치권의 모습도 씁쓸하다.

언제나 있어왔다는 말로 위로를 삼고 살아가기에는 정치권과 재벌의 유착은 화병이 날 지경이다.

대한민국이 삼성공화국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삼성의 돈으로 공부하고 삼성에서 지원받아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정부의 요직에 앉아있지 않은가?

그들이 과연 결정적인 순간에 국민을 위한 결정을 할까? 삼성을 위한 결정을 하게 될까?

우리는 이미 그 더러운 돈의 힘을 수없이 많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소설에 나오는 성화그룹의 모습은 삼성으로 대변되는 삐뚤어진 대한민국 재벌가의 모습과 똑같다.

소설이어서 과장된 부분이 있지 않냐고? NO!!! 내가 겪어본 40년 세월에서 결코 과장이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편리한 명칭으로 자신들을 방어하고 애국심을 명분으로 국민들을 협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검은 속내는 국민들이 모르지 않음을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국민들의 정치 혐오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파리처럼 꼬이는 정치꾼들.

소설의 두번째 타겟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자신들을 위한 정치에 정신을 놓아버린 정치꾼들이다.

 

우리 사회의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이렇게 작아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결국 자본주의이다.

세계사에 유래없는 광속성장의 그늘에서 우리는 정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특히나 돈에 있어서는 더욱.

성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기엔 재벌가들에 대한 특혜과 비리는 우리 사회를 완전히 병들게 만들었다.

그 모습 그대로 돈에 권력이 꼬이고 돈에 언론이 조작되면서 이제 우리 사회는 냄새로 넘쳐나지 않은가?

병들대로 병들고 썩을대로 썩어버린 우리사회의 오늘의 모습에서 가장 큰 원인제공자는 바로 재벌이다.

언제나 선진국을 꿈꾸지만 선진국에는 없는 재벌가라는 특권세력을 점점 키워주고 먹여주는 정권.

그런 정권의 보호속에 나눔이나 분배에는 전혀 관심없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이전투구하는 재벌들.

국민들은 재벌의 해체와 경제의 민주화를 열망하는데 그저 딴나라 이야기하듯 정치꾼들만 돌보는 재벌들.

소설의 세번째 타겟을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병폐의 근원이 되어버린 썩어버린 재벌세력들이다.

 

소설이 문제점만 부각하고 말았다면 아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언론, 정치꾼, 재벌로 이어지는 강력한 네트워크의 힘 앞에서 당당히 맞서는 개인을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개인이 가진 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싸움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싸움을 보는 것만도 즐겁다.

나 같은 개인은 절대로 할 수 없는 통쾌한 말과 행동들을 대신해 주는 앨런킴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결국 나 같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처럼 그들을 욕하며 뒷담화를 하는 것이 전부일 수 밖에 없지만

이렇게 소설로라도 그들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길 수 있다면 앨런킴의 싸움을 응원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개인의 투쟁과 거기서 얻어내는 작은 승리라는 소설의 공식은 다소 진부하지만

그렇게라도 대리만족을 느껴야 이 더럽고 힘든 세상을 조금 더 견디고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참 좋다.

뭔가 답답하고 미쳐버릴 것 같은 세상에 나 대신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앨런킴의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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