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주는 위안
피에르 슐츠 지음, 허봉금 옮김 / 초록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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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다 떠나고 없었지만 들은 남아 있었다

 

                   ㅡ 미키 루크 Mickey Rourke

 

 

 

 

 

 

   나는 개와 함께 산다. 이름은 하루. 하루를 알고부터 나의 세계는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동물에 대한 관심이다. 내 주변에 이렇게나 많은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 많은 동물들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꿈 같은 일이다. 하루가 나를 동물의 왕국에 초대해준 것이다. 감긴 눈이 와짝 떠지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개를 만지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개를 혐오한 것은 아니었다. 낯선 촉감과 체온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아기처럼 옷을 입힌 개를 품에 안고 다니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작고 가벼워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는 하루를 만지는 연습부터 시작해 이제는 나도 그들처럼 개를 품에 안고 다닌다. 추울 땐 옷도 입힌다. 그리고 이전의 나와 같은 사람들이 보내는 따가운 눈총에도 익숙해졌다. 이 놀라운 변화를 통해 나는 편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실감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경멸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사람 일은 알 수 없고 언젠가 우리도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될지도 모르니까.

 

 

   7월이면 하루는 두 살이 된다.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구나. 처음 몇 개월 간은 정신이 없었다. 개 양육 관련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휘젓고 다녔다. 각종 예방접종과 중성화수술, 배변훈련을 거쳐 하루는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하루를 돌보는 일에도 제법 능숙해졌다. 샴푸 거품을 뒤집어쓰고 욕실을 탈출하는 하루를 쫓아다니는 일도 없고, 간혹 끅끅거리며 게워내는 것을 보고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이제 내 관심은 하루와의 소통이다. 자연스럽게 동물 관련 TV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반려동물에 관한 책들도 눈여겨 본다. '반려견과 소통하는 행복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도 그렇게 만났다.

 

 

    "우리는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고, 전혀 이용하지 못한다. 우리는 숨을 쉬기만 하고 전혀 살아가지 못한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요 시간을 이용하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갈 운명에 처해져 있지만, 단순히 존재한다는 사실만 해도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짐이다."

 

                                                            ㅡ 에드워드 영(1983~1765)

 

 

   개를 키우면서도 개가 주는 위안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루랑 있으면 생각할 틈이 없다. 매순간 경이로울 뿐이다. 이렇게 죄 없는 생명체가 또 있을까. 하루의 순수한 본능을 좇아 놀다 보면 내 무거운 죄들도 잠시나마 잊혀진다. 개는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다. 단순한 본능으로 움직일 뿐이다. 먹고 싸고 놀고 잔다. "개를 키울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꼴뤼쉬(뭐하는 사람일까?)의 말처럼 개는 아기와 같다. 나이를 먹어도 개는 아기 같다. 책에서는 이 순수함을 개가 주는 위안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미 자신에게는 없는, 잃어버린 순수함을 체험할 때 인간은 무거운 짐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기 같은' 개가 주는 위안은 또 있다.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길을 잃고 굶주릴 연약한 존재를 통해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사랑

   대개는 온전히 남아 있는 사랑

   그들이 완전히 체험할 수 없었던 사랑

   혹은 받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타버리지도 못한 사랑

   그들에게 다시 찾아온 사랑

   개는 그 사랑의 화신이다

 

   ㅡ 마들렌 샵살 Madeleine Chapsal *프랑스 소설가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개에게 너그럽다. 사방에 오줌을 뿌리고 다니고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짖어대도 개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 영역표시를 하고 짖는 것은 개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꾸짖기는 하지만 미워하지는 않는다. 개를 대하는 이 너그러움이 인간에게로 향한다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 대해서는 쉽지가 않다. 왜 그럴까. 다른 사람은 우리에게 개처럼 무조건적인 사랑과 충성심을 베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랑이란 이토록 이기적이고 치사하다. 이기적이고 치사한 사랑에 지친 사람들에게 개는 사랑을 일깨워준다.

 

  

    아기 같은 순수함(그리고 연약함)과 무조건적인 사랑. 이 책에서 말하는 '개가 주는 위안'이다. 이 책을 선택하는 대부분이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예상된다. 그중에는 나처럼 자신의 개를 좀 더 잘 알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개에 관한 책이 아니다. 개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 대한 책이다. 심리학 전문 의사인 저자는 이 책에서 반려견이 인간에게 주는 위로와 치유를 통해 현대인의 외로움을 조명하고 있다. 개와 관련된 경구나 개가 등장하는 문학작품 등 다양한 접근을 통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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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NFF (New Face of Fiction)
찰스 유 지음, 조호근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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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해 보자. 미래의 자기 자신과 맞닥뜨린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간혹 머릿속에 그려보는, 눈 한 번 깜빡하면 사라지는 환영이 아닌 질량과 체온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나 자신과 마주... 가만, 무슨 소리 못 들었는가? 쉿.

 

 

 

    그 일이 일어날 때, 일어나는 일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나 자신을 쏜다. 지금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이 아니다. 내가 쏜 사람은 미래의 나 자신이다. 나는 그를 죽인다. 나는 미래의 나 자신을 죽인다.

 

                                                             ㅡ   본문 중에서 

  

 

   소설의 첫머리 문장이다. 내가 이 소설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SF적 상상력과는 거리가 먼 나에게 저 문장이 품고 있는 이미지는 꽤나 강렬한 것이었다. 색다른 미끼였던 셈이다. 그 유명한 영화 '매트릭스'도 안 보았던 내가, 뭣도 모르고 찰스 유의 SF세계로 뛰어든 것이다. 주인공 찰스 유는  타임머신 안에서 10년째 칩거중이다. TM-31 인격 프로그램 '태미'와 '필'이 유일한 대화상대이다. 개도 한 마리 있다. 우주에 버려진 로봇 개 '에드'이다. 그의 작은 상자 안에 생명체의 온기라고는 없다. 찰스는 그 안에서 타임머신 수리공으로 일한다. 타임머신 수리공에게는 고장난 타임머신을 수리하는 일 말고도 중요한 임무가 주어진다. 다른 시공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구출해내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시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찰스의 어머니가 그 대표적인 예로 묘사되어 있다. 과거 가장 행복했던 1시간을 무한 반복하며 살아가는 어머니 곁에는 실제로 아들도 남편도 없다. 1시간짜리 기억을 재현해내는 홀로그램이 있을 뿐이다. 평행우주론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보면 주인공이 과거의 오류를 바로잡아 현실을 뒤바꾸기도 하던데, 찰스 유의 SF세계에서 과거는 그 어떤 노력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종종 과거 시공간에 붙들리거나 길을 잃는 것이고, 그래서 타임머신 수리공이 필요한 것이다.

 

  

   '시간 여행'은 인간의 불만이 만들어낸 가장 기발한 테마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과 '후회'는 역설적이게도 현재를 작동시키는 중요한 모듈(module)이 아닌가. 찰스 유의 SF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도 '기억'과 '후회'이다. 다소 난삽한 작가의 과학적 이론을 차치하면 소설의 구성은 무척 단순하다. 소설의 시공간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타임머신 안에 있는 찰스, 타임머신 안에 있기 전의 찰스의 시간이다. 소설은 두 시공간을 교차하며 오가는 찰스를 따라가고 있다. 타임머신 안에 있기 전, 그러니까 찰스의 과거는 불행한 가족사로 얼룩져 있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발명가 아버지, 그의 좌절과 무관심으로 신경증에 걸린 어머니, 그 둘 사이에서 눈치만 보던 어린 찰스. 타임머신 안에 있는 찰스의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이 '기억'이다. 기억의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다. 찰스의 아버지는 어느 날 다른 시공간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어머니는 1시간짜리 홀로그램 안에, 아들은 작은 시간여행 상자, 그리고 아버지 역시 어딘가 다른 시간여행 상자 안에.

 


 

   모두가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타임머신이다. 단지 대부분 사람들의 타임머신은 고장나 있을 뿐이다. 

 

                                                          ㅡ  본문 중에서

 

  

    타임머신 수리공이라는 찰스의 직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서 인용한 문장에서 '타임머신'은 '기억(또는 상상력)'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는 '기억'이라는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다.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있다. 그러니까 우리 자신이 타임머신인 것이다. 때때로 이 타임머신은 우리를 옭아매고 함정에 빠뜨린다. 1시간짜리 타임 루프 안에 스스로를 가둔 찰스의 어머니처럼 같은 시간을 무한 반복하며 살기도 한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더듬어가며 과거의 경험과 화해하고 소통하는 찰스처럼 우리 모두는 타임머신 수리공이기도 하다. 삶이란 적극적으로 '극복' 하는 것도 소극적으로 '인내'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수용'하는 것이어야 한다던 황지우 시인의 말을 떠올린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는 언제나 우리에게 열려 있다. 과거와 교감할 기회는 무한하다는 말이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과거를 수용하고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아! 총소리 들었는가? 그 얘길 하고 있었지. 미래의 자신과 맞닥뜨린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생각해 봤는데, 나는 그냥 모른 체할 것 같다. 할 수 있는 것도 해야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주인공 찰스는 미래의 자신을 빵 쏘아버렸다.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황해서. 이유는 대단하지 않지만 사태는 커진다. 시공간상의 오류 때문에 그 상황을 무한 반복하게 되어버린 것. <SF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미래의 찰스가 건네준 문제 해결책이다. 찰스는 이 책을 통해 시공간상의 오류를 풀어나간다. 이 중요한 얘기를 왜 이제서야 하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글쎄, 읽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한테는 작은 에피소드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아서이다. 사실 이 에피소드를 뺀다고 하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SF 문외한의 감상이니 크게 신뢰할 것은 없다. 어쨌든 이 SF 문외한은 이 소설이 탐탁지 않다. 시공간을 교차하며 과거와 화해하고 자기 자신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라고 쓰면서도 꿈보다 해몽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이렇게 진땀 흘리며 읽은 소설은 또 처음이다. 구성이나 내용의 난삽함이 장난 아니다. 쉽고 가볍게 읽을 소설을 기대한다면 말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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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할까 - 현대 성생활의 기원과 위험한 진실
크리스토퍼 라이언 & 카실다 제타 지음, 김해식 옮김 / 행복포럼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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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은 숨을 헐떡임이 아니고, 흥분도 아니고, 영원한 열정의 약속들의 선포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 중 누구라도 우리들이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사랑 그 자체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불타 없어질 때 남는 그것이다.

 

루이 드 베르니에르 Louis de Bemieres, <코렐리의 만돌린>

 

 

 

 

 

 

 

   전세계적으로 이혼률이 무섭게 급증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떠오르는 이혼 사유 중 대표적인 것이 '성격차'이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충돌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수긍할 만하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낮고 은밀한 목소리도 들린다. 성적(sexual) 취향의 차이에서 오는 성생활의 불만이 부부관계를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역시 수긍할 만하다. 결혼이라는 것이 좋은 '감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녀가 만나 공식적으로 한 가정을 이루는 순간 '성생활의 자유'도 함께 보장되는 것이다. 물론 자기 배우자에 한해야 한다는 제약도 붙는다. 합법적으로 성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조건에는 '자유'라는 단어를 붙여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단 한 사람과만 허용한다는 제약이다. 결혼을 약속하거나 갓 결혼한 부부에게 이 조건은 제약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동안 마음껏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일은 행복하고 의미 있어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이 행복하고 유의미한 관계가 무너질까? 별로 유쾌하지 않은 물음을 던지면서 이 책은 시작된다.

 

 

  사랑하는 단 한 사람과 평생동안 성행위를 하는 것. 결혼의 가장 기본적인 이 조건이 불행의 싹이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럴리가!' 고개를 젓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특히 자기 배우자가. 성에 대한 인식이 개방적이 되었다고는 해도 그건 남의 얘기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조금 용기를 내서 자기 얘기를 남의 얘기처럼 하기도 한다. 성매매업소는 여전히 성행중이고 은밀한 장소에서 뜨거운 배신은 계속된다. 남편은 비정상적인 성애 장면을 보면서 자위를 하고 아내는 남편의 무관심에 싸늘하게 등을 돌리고 있다. 대체 무엇이 개방적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성은 은밀하고 가식적이다. '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할까'라는 질문 역시 어쩌면 가만히 덮어두고 싶었던 문제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느냐고, 어느 영화에서 순진한 청년은 조용히 항거했지만, 영화가 계속되고 그 청년이 결혼을 했다면 어땠을까. 자신이 했던 그 절망적인 부르짖음을 배우자에게서 메아리처럼 듣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절망과 불신은 다양한 결혼 문화와 가족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아니, 고쳐 말해야겠다. 다양한 결혼 문화나 가족 형태가 반드시 사랑과 결혼에 대한 불신에서 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누차 문명인의 편견을 경고했는데, 나도 어쩔 수 없이 문명인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인가 보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문화권의 결혼 문화나 가족 제도는 무척 낯설고 때때로 혐오스러우며 불편하다.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두는 일부다처제나 한 아이에게 여러 명의 아버지가 인정되는 가족 형태까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생활을 하는, 소위 미개인이라고 하는 그들의 삶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저리 살아도 될까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짐승같다. 그런데 이 책은 아니라고 한다. 일생동안 한 사람의 배우자에 성행위를 제한하는 우리의 결혼 문화야말로 인간 본능을 거스르는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냉정한 과학자들조차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해 왔다고 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점이라고 믿었던 인간의 오만은 여전하다. 그리고 이 오만은 위험하다. 아득하게 멀게 느껴지는 저 원시적인 사람들의 문화는 야만적이고 더러우며 우리의 문화는 고귀하고 이상적이라는 확신은 얼마나 우스운가. 그토록 완강하게 확신하는 이상적인 틀에서 우리는 진정 고귀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 굶주린 짐승처럼 불만에 차서 혼란스러운 발길을 어디로 옮겨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우리가 누군가와 '짝짓기'를 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짝'이 될까? (134쪽)

 



  



   쾌락을 위해 '여러' 파트너들과 성행위를 하는 동물은 인간과 매우 유사한 보노보와 인간 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문란하고 왕성한 성욕은 동물적이기보다 인간적인 것이다. 그런데 참 어렵다. 아, 그렇습니까, 하고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그러면 어째야 하나. 배우자의 본능적인 성욕을 인정하고 다른 암컷(또는 수컷)들과의 짝짓기를 허용해 주어야 하나. 골치가 아프다. 이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루이 베르니에르의 문장은 우리 결혼생활의 핵심을 집어내고 있는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뜨거운 성욕은 사라지고 마음만 남은 상태. (물론 모든 부부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결코 자연스럽지도 행복한 상태도 아닌 것 같다. 마음이라도 남은 것을 감사해야 할까. 아니면 억지스러운 노력이라도 해야 되는 걸까. 어떤 사람은 참고 어떤 사람은 집을 뛰쳐나가 다른 짝을 찾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 문명인의 성생활이야말로 가장 미개하고 저급한 것 아닌가. 알면서도, 문명인의 '고귀한!' 오만은 쉽게 가면을 벗지 않을 것 같다. 현대 결혼 관습(일부일처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의 뿌리를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위험하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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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클래식 27
조르주 상드 지음, 이재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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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바주앵에게 1826년 8월 중순, 노앙

 

p. 264
 
 

 

   잔, 넌 참 좋은 친구야. 아주 터무니없고 무분별한 한 인간을 그 불행한 운명에 내맡기지 않고, 오히려 폭풍우가 몰아치는 그 배 위로 함께 올라탔으니 말이야. 네가 날 너처럼 늘 침착하고 강인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는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솔직하게 해명하고,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해도 내 모든 생각을 네게 편지로 전할 것을 약속하마.

 


 

 

 

  

 

  쇼팽의 연인으로 더 잘 알려진 조르주 상드의 서간집이다. 평생 4만 통에 달하는 편지를 썼다고 하니 놀랍다. 방대한 양의 편지를 정리해 세상에 내놓은 이들의 열정은 더 놀랍다. 그녀의 편지는 '조르주 뤼뱅(Georges Lubin)'이라는 상드 연구가에 의해 1964년 프랑스에서 첫 출간을 시작으로 1995년 26권이 완성되었다. 준비 작업까지 포함하면 40년이 걸렸다고 한다. 지금 소개하는 번역본《편지》역시 2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고 하니 60여년의 열정과 노고가 황송하기만 하다. 읽는 내내 한 장 한 장 넘기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긴긴 열정의 세월을 이렇게 쉽게 넘겨도 될까 싶었다. 그 열정의 세월만으로도 나는 이미 감동한 것이다. 열정은 책에도 고스란히 배어있다. 책에 대한 해설과 옮긴이 인터뷰, 사진자료들을 통해 조르주 상드와 《편지》이해를 돕고 있다.

 

 

   《편지》는 프랑스 원본에 포함된 1만 8000 통의 편지 가운데 508편을 선별해 엮은 것이다.《편지 1》은 그 첫 번째 서간집이다. 조르주 상드가 열네살이던 1818년부터 1830년 스물여섯살 때까지 쓴 편지 72편이 실렸다. 어머니와 할머니를 포함하여 열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편지》에 등장하는 인물이 2000명이 넘는다고 하니 새 발의 피인 셈이다. 어머니나 오빠 등 친지에게 쓴 편지는 많지 않다. 서너 통 정도. 소녀시절이어서인지 친구 잔 바주앵에게 쓴 편지가 대부분이다. 잔 바주앵은 수녀원 기숙사 시절 동기이다. 편지 내용으로 짐작해 보면, 예의바르고 침착한 성격이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상드는 변덕스럽고 충동적이고 무분별한 성격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결함을 잘 알고 있었다. 상반된 두 친구는 자주 감정적 충돌을 일으켰던 것 같다. 잔에게 보내는 상드의 편지에는 자신의 성격적 결함을 인정하고 이해를 구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나쁜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 알아. 다만 내 마음이 선하고 정겹고 진실하다는 것을 네게 보여줄 시간을 달라는 거야. 내 행동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내 성격을 연구하면서 내 행동을 잘 살펴봐. 그러면 수많은 결점 밑으로 착한 본성이 숨겨져 있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바로 거기에 우정이 자리잡고 있어, 잔.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과오와 결점을 참아주는 거야. (...) 만약 사람들이 내 행동으로만 나를 판단하고 나를 관대하게 봐주지도 용서하지도 않는다면, 내겐 단 한명의 친구도 남지 않을 거야." (237쪽)

 

 

   상드의 변덕에 슬슬 짜증이 났다가도 이런 식의 진실한 호소를 읽게 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약해진다. 나도 모르게, 괜찮아 괜찮아, 한다. 결혼 이후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 쓴 편지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43번 편지, 일명 '고백 편지'라 불린다는 장문의 편지(무려 40쪽에 달한다)를 읽고는 또 마음이 말랑해지고 만다. 나도 모르게, 괜찮아 괜찮아, 그녀를 토닥이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 대담한 솔직성(나쁘게 말하면 뻔뻔함)이 그녀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변덕, 충동성, 불평, 침울함 등 치명적인 결함을 상쇄할 정도이니 마력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실컷 일 저질러놓고 이실직고하는 착한 아이 같은 상드를 끝내 미워할 수가 없다.

 

 

   《편지 1》에는 노앙에서의 생활이 자주 언급된다. 소녀시절과 결혼생활 대부분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열정적이고 활동적인 상드의 이미지와 달리 조용 전원생활에 대한 예찬이 대단하다. 상드의 편지에서 이러한 의외성은 자주 발견된다. 아마도 그녀의 복잡한 성격 때문인 것 같다. 편지들에서 상드는 밝고 열정적인 모습과 침울하고 고독한 이면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하지? 하는 심정이 되어 한 호흡 쉬어갈 때가 많았다. 여기 실린 편지들이 시기적으로 감성이 예민한 소녀시절과 변화가 많은 결혼생활 때 쓰여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4만여 통의 편지와 그 편지를 쓰지 않은 나머지 시간까지 생각하면 내가 읽은 몇 통의 편지로 상드를 이해하려는 것은 욕심일 것이다. 나는 지극히 작은 일부를 엿본 것 뿐이다. 그러나 파장은 크다. 한 사람의 순수한 진심이 참 고맙다. 순수한 진심을 받아줄 2000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던 조르주 상드가 부럽고.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책을 엮은 열정의 세월과 옮긴이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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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지 에디션 D(desire) 1
조세핀 하트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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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회적인 명성, 아름다운 아내와 두 아이. 스스로 '운 좋은' 인생이었다고 인정하는 '나'는 아들의 연인을 본 순간 영혼이 뒤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그의 영혼을 사로잡은 것은 '동질감'이었다. "잠깐 동안 나는 같은 부류를, 나 같은 사람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 알아보았다."(35쪽) 아들의 연인, 안나를 통해 '나'는 허울 뿐이었던 자기 삶의 실체를 들여다 본다. 세계의 규칙에 순종하며 기계적으로 움직였던 눈가림 인생. 그 안에는 열정이 빠져 있었다. 운명처럼 나타난 안나는 그 결핍된 욕망을 충족해준다. 한편 안나는 스스로도 고백하듯이 "상처 입은 사람"이다. 그녀의 세계는 '애스턴'이라는 상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애스턴은 안나의 친오빠. 안나를 향한 사랑의 고통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끔찍한 기억을 안고 있는 여자는 사랑-소유욕은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난 당신이 냉혈한처럼 말하듯 '준비해둔' 적 없어요. 일이 그냥 벌어졌어요. 마틴을 만났고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어요. 둘 중 한 사람이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관계가 더 깊어졌어요. 그런데 그때 당신은 인생의 은밀한 코너를 돌았고 내가 거기 있었어요. 이 두 가지 사건에 대해 내게는 통제권이 없었어요. 나는 마틴을 만나게 될 줄 몰랐어요. 당신을 만나게 될 줄도 몰랐고요. 하지만 내 인생의 모양을 만드는 힘들은 늘 인지해요. 그런 힘들이 알아서 움직이게 내버려두죠. 때로 그것들은 허리케인처럼 내 인생을 헤집으며 찢죠. 때로는 내 발 밑의 땅을 밀어올려서 내가 다른 땅에 서 있게 하고, 그 힘들이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삼켜버려요. 나는 지진 속에서 중심을 잡아요. 누워서 허리케인이 나를 지나가게 내버려두죠. 난 싸우지 않아요. 나중에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하죠. '아, 적어도 나한테 이게 남았구나. 그리고 그 좋은 사람 역시 살아남았구나.' 난 조용히 가슴의 돌판에 영원히 가버린 이름을 새겨요. 그런 다음 내 길을 다시 가기 시작하죠. 이제 당신과 마틴, 그리고 사실 잉그리드와 샐리까지 폭풍의 눈 속에 있어요. 그 폭풍은 내가 만든 게 아니에요. 내게 무슨 힘이 있고, 무슨 책임이 있겠어요?"(96쪽)

 

 

   고통의 경험에서 살아남은 안나는 불행한 생존자이다. 이 생존자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무감하다. 애스턴의 죽음이 자기 통제권 밖에 있었듯 다른 사람의 고통 역시 그러하다고 믿는다. 모든 일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일어난다는 위험한 합리화 속에 산다. 안나의 사랑은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세상을 쉽게 통제할 수 있었던 남자가 이 한 여자만은 통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난생 처음 겪는 황홀한 고통은 남자를 파멸로 몰아간다. 

 

 

   이 작품은 92년 루이 말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한때 큰 논란을 몰고 왔던 영화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안 봤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먼저 봤다면 이 소설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소 충격적인 이미지들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스스로 쌓아올린 편견의 벽에 막혀 작품과 제대로 소통하기 벅찼을지 모른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큰 거부감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탁월한 심리묘사 덕분이다. 잠깐 등장하는 인물 처리도 치밀하다. 스치듯 지나는 짤막한 대사에도 그들 심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과 상처를 꿰뚫는 작가의 통찰력이 놀랍다. 여기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우습다. 누구나 고유의 경험을 하고, 그것을 흡수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이질적인 존재들이 부딪치며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상처는 일상적이다. 다른 사람 존재 자체가 상처일 때도 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삶을 통제한다는 생각은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순수한 본능과 욕망을 구체화하려면 일상적인 세계, '나'의 말대로 하자면 '눈가림 인생'에서 벗어나 은밀한 세계로 숨어들 수밖에 없을까. 조심스럽게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 '눈가림'의 세계에서는 수많은 잣대와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똥을 누기 위해서 우리는 문을 잠그고 홀로 차가운 변기 위에 앉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이 작품은 약혼자의 아버지, 아들의 연인과 애정행각을 벌이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폭풍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리 단순하지 않다. 커다란 액자를 걸어놓고 매순간 다른 각도에서 관찰했던 작품 속 '나'처럼, 독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작품과 소통할 수 있다.《데미지》는 감춰져 있던 우리 안의 욕망과 맞닥뜨리게 해주는 '고통스러운 선물'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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