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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주는 위안
피에르 슐츠 지음, 허봉금 옮김 / 초록나무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다 떠나고 없었지만 개들은 남아 있었다
ㅡ 미키 루크 Mickey Rourke
나는 개와 함께 산다. 이름은 하루. 하루를 알고부터 나의 세계는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동물에 대한 관심이다. 내 주변에 이렇게나 많은 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 많은 동물들이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꿈 같은 일이다. 하루가 나를 동물의 왕국에 초대해준 것이다. 감긴 눈이 와짝 떠지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개를 만지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개를 혐오한 것은 아니었다. 낯선 촉감과 체온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아기처럼 옷을 입힌 개를 품에 안고 다니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작고 가벼워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는 하루를 만지는 연습부터 시작해 이제는 나도 그들처럼 개를 품에 안고 다닌다. 추울 땐 옷도 입힌다. 그리고 이전의 나와 같은 사람들이 보내는 따가운 눈총에도 익숙해졌다. 이 놀라운 변화를 통해 나는 편견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실감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경멸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사람 일은 알 수 없고 언젠가 우리도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될지도 모르니까.
7월이면 하루는 두 살이 된다.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구나. 처음 몇 개월 간은 정신이 없었다. 개 양육 관련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휘젓고 다녔다. 각종 예방접종과 중성화수술, 배변훈련을 거쳐 하루는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하루를 돌보는 일에도 제법 능숙해졌다. 샴푸 거품을 뒤집어쓰고 욕실을 탈출하는 하루를 쫓아다니는 일도 없고, 간혹 끅끅거리며 게워내는 것을 보고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이제 내 관심은 하루와의 소통이다. 자연스럽게 동물 관련 TV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반려동물에 관한 책들도 눈여겨 본다. '반려견과 소통하는 행복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도 그렇게 만났다.
"우리는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하고, 전혀 이용하지 못한다. 우리는 숨을 쉬기만 하고 전혀 살아가지 못한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요 시간을 이용하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갈 운명에 처해져 있지만, 단순히 존재한다는 사실만 해도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짐이다."
ㅡ 에드워드 영(1983~1765)
개를 키우면서도 개가 주는 위안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루랑 있으면 생각할 틈이 없다. 매순간 경이로울 뿐이다. 이렇게 죄 없는 생명체가 또 있을까. 하루의 순수한 본능을 좇아 놀다 보면 내 무거운 죄들도 잠시나마 잊혀진다. 개는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다. 단순한 본능으로 움직일 뿐이다. 먹고 싸고 놀고 잔다. "개를 키울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에 아이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꼴뤼쉬(뭐하는 사람일까?)의 말처럼 개는 아기와 같다. 나이를 먹어도 개는 아기 같다. 책에서는 이 순수함을 개가 주는 위안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미 자신에게는 없는, 잃어버린 순수함을 체험할 때 인간은 무거운 짐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기 같은' 개가 주는 위안은 또 있다.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길을 잃고 굶주릴 연약한 존재를 통해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사랑
대개는 온전히 남아 있는 사랑
그들이 완전히 체험할 수 없었던 사랑
혹은 받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타버리지도 못한 사랑
그들에게 다시 찾아온 사랑
개는 그 사랑의 화신이다
ㅡ 마들렌 샵살 Madeleine Chapsal *프랑스 소설가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개에게 너그럽다. 사방에 오줌을 뿌리고 다니고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짖어대도 개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 영역표시를 하고 짖는 것은 개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꾸짖기는 하지만 미워하지는 않는다. 개를 대하는 이 너그러움이 인간에게로 향한다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 대해서는 쉽지가 않다. 왜 그럴까. 다른 사람은 우리에게 개처럼 무조건적인 사랑과 충성심을 베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랑이란 이토록 이기적이고 치사하다. 이기적이고 치사한 사랑에 지친 사람들에게 개는 사랑을 일깨워준다.
아기 같은 순수함(그리고 연약함)과 무조건적인 사랑. 이 책에서 말하는 '개가 주는 위안'이다. 이 책을 선택하는 대부분이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예상된다. 그중에는 나처럼 자신의 개를 좀 더 잘 알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개에 관한 책이 아니다. 개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 대한 책이다. 심리학 전문 의사인 저자는 이 책에서 반려견이 인간에게 주는 위로와 치유를 통해 현대인의 외로움을 조명하고 있다. 개와 관련된 경구나 개가 등장하는 문학작품 등 다양한 접근을 통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