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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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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의 초호화 맨션에서 부부가 살해됩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그 자리에 있던 세 사람의 증언과 범인 자신의 자백을 받고 니시자키 마사토를 체포합니다. 니시자키는 10년형을 선고 받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묻혀진 사건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요. 비밀의 중심에는 네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10년 전 사건 현장에 있던 세 사람의 증인과 한 명의 범인. 그들의 이름은 모두 이니셜 N.

 

 

 

                      N 을     위 하 여

 

 

 

   

      살인 사건을 둘러싼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글쎄요. 전형적인 추리 소설의 요소를 제대로 충족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아요. 대부분의 추리 소설이 사건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데 반해 이 소설은 인물의 심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반전이라는 것도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진행되고요. 반전을 위한 반전을 노린 것 같지도 않아요. 전형적인 추리 소설의 반전을 기대하는 분이라면 실망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무늬만 추리 소설이라는 것이지요.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야미스(イヤミス)' 소설의 전형이라고 하는데요. '꺼림칙하고 묘한 기분이 드는 미스터리'의 준말이라는 '이야미스'는 "추리 소설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트릭이나 추리보다는 심리 묘사 중심이며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로테스크하다는 특징"을 갖는다고 합니다.

 

 

    네 사랑의 증거는 생각보다 더 아름답네.

     피부가 가무잡잡했던 그 남자에게는 검붉은 얼룩 같은 자국밖에 남지 않았는데, 너의 새하얀 피부에는 새빨간 무늬가 돋아나. 이것 좀 봐, 하트 모양이잖아. 네 온몸을 사랑의 증거로 메워 주면, 네 사랑이 진짜라는 걸 믿어줄게. (본문 중에서)

 

 

 

     네 사람의 독백으로 채워지는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을 따르는데요. 이들의 이야기에서 살인 사건만큼이나 놀라운 상처와 욕망이 드러나게 됩니다. 얽히고설킨 이들, N(들)의 관계는 비정상적인 유년기의 트라우마와 뒤틀린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이들의 사랑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그들이 사랑이라 주장하는 이상한 희생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미나토 가나에는 이 소설을 사랑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한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애정결핍증의 다양한 양상을 한데 모아놓은 듯하다고 할까. 그들의 사랑은 애정을 갈구하는 무서운 집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걸 사랑이랄 수는 없지. 굳이 말하자면 자기애랄까. (본문 중에서)

 

 

      미나토 가나에는 몇몇 인물 - 스기시타와 나루세, 그리고 니시자키-의 과거 트라우마를 통해 이들의 기이한 사랑을 해명합니다. 기괴한 그들의 이야기는 밋밋한 반전을 상쇄할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소설가 지망생 니시자키의 소설 <작열하는 새>가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요. 다소 어설픈 감이 없지 않지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만은 잘 살린 것 같습니다. 근데 그로테스크는 그로테스크고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전반적으로 산만하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사랑'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궁극의 사랑은 죄를 공유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책을 덮고 한참 지난 지금까지 N의 정체를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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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어른아이에게
김난도 지음 / 오우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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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이은 김난도 교수의 신작 에세이입니다. 정식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저는 가제본을 읽었습니다. 가제본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는 표제를 달고 있습니다. 확정된 제목은 아니라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이보다 어울리는 제목은 없는 것 같습니다. "흔들리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존재로 성숙해가는 과정(51쪽)"에 있는 '어른아이'의 시련과 좌절,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 책의 취지와 마침맞다는 생각. 책의 내용을 모르는 이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그래요. 어른 구실 참 어렵습니다. 미처 어른이 되기도 전에 어른의 짐을 지고 뒤흔들리는 어른아이들이 많습니다.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당신은, 어른입니까?

 

    어른이란 인간발달의 특정 '시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삶의 흔들림을 스스로 잡아나가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엉망으로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요. (프롤로그, 중에서)

 

 

       빨리 서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난도 교수가 학생들에게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이십대를 지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저 역시 이십대 때에는 서른이 되면 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서른이 되고 보니 막막합니다. 완전히 끝장내기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쉽지 않은 어정쩡한 나이가 서른이더군요. 끊임없이 쏟아지는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서적들이 '서른'의 고초를 다루고 있는 것만 보아도 서른은 만만찮은 고비인 것이 분명합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발밑에 진하게 붙어 있는 그림자를 볼 때, 이런 생각을 한다. 빛이 밝으면 누구에게나 밟고 버텨야 하는 그림자가 생기는 법이라고. 잔뜩 흐린 날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인생의 빛줄기가 환희처럼 쏟아져내리는 밝은 대낮에 음영이 더욱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것이라고. 그 그림자, 필연이라고. (63,64쪽)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기본적으로 대학생 독자를 위한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어른' 혹은 '어른이 되어가는 어른아이들'을 위한" 책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20대 후반 이후" 독자층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지요.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김난도 교수는 '어른아이'들이 겪는 사회적, 정신적 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과 격려를 보내고 있습니다.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제자에게 쓴 편지글이나, 그에게 조언을 구해왔던 젊은이의 글을 소개하기도 하는데요. 그들의 고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삼십대라면 직간접적으로 겪어봤을 법한 것들이지요. 직장생활의 환멸, 현실과 이상(理想)의 괴리, 너무 빨리 지워진 '어른'의 책임 등.

 

                     옆자리에서

               오늘 하루 번 것을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있다

 

                        소주 마시는

                            두 젊은이

  벌써 지아비이고 아비로다

 

 

             고은, 「순간의 꽃」

 

 

 

       그들의 고민은 우리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던 어른들이 있었고요. 요즘 TV에서도 유명인들의 멘토링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화려한 성공을 거둔 이들에게도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과거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련을 거쳐왔던 것입니다. 정상에 우뚝 선 그들의 인간적인 약점과 상처, 실패의 경험은 그 자체로 우리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합니다. 트루스토리, 진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그런 귀한 이야기를 얻어 듣겠습니까. 그들의 이야기가 주는 중요한 교훈은 삶에서 시련은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시련의 굴레란 숙명이다. 다만 그 운명을 '미워도 다시 한번' 사랑하는 것만이 시련을 체념하지 않고 감당하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그토록 힘겨운 운명의 굴레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소중하며 나는 그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65쪽)

 

      삼십대를 지나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른은 '성숙해 나가는 과정' 아닐까요. 이 말은 곧, "시련의 굴레란 숙명"이라는 말과도 상통합니다. 사십대, 오십대가 되어도 우리의 시련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시련을 피하려고만 하면 성장하기 어렵겠죠. 어른이 될 수 없겠죠. 죽을 만큼 힘들어도 내 삶, 나의 운명은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이 책을 통해 김난도 교수가 들려주는 조언을 한 문장으로 줄일 수도 있겠는데요. 아모르파티 Amor Fati .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여기 어른이 되는 해답이 있습니다. 

 

       무심히 펼친 책이었습니다. 이런 책들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하고요. (빌어먹을 오만과 편견!)그런데 뜻밖의 공감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김난도 교수의 멘토링, 즉 조언에서 진정이 느껴집니다. 괜찮다. 다 지나간다. 청춘의 시련을 거쳐온 자, 그리고 성찰해 온 자의 온유함이 어깨를 툭툭 다독입니다. 언어의 홍수 시대라 하죠. 말만 번지르르한, 뜬구름 잡는 책들이 넘쳐나는데요.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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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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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윤동주, 「또 다른 고향」 중에서

 

 

 

 

 

 

     1944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희생자는 형무소에서 악명 높은 간수 스기야마 도잔. 외부 침입의 흔적은 없습니다. 사건의 실마리는 형무소 내에 있는 것이지요. 풋내기 간수 유이치에게 사건을 조사하라는 상부의 명이 내려집니다. 몇 가지 의문점을 파헤치던 유이치는 스기야마의 죽음을 둘러싼 놀라운 비밀의 터널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래. 너나 나나 이 더러운 곳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파고 있지. 방향은 다르지만, 길은 여러 개일수록 좋겠지. 도달하기 어려운 목적지라면 더더욱 말이야. 네 말대로 두 개의 터널 중 어느 쪽이 우릴 구원하는 길이 될지는 모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터널이 날 구원해 주기를 바라는 것뿐일 거야.' 나는 두 개의 터널이 각자의 방식대로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기를 기도했어. 누구도 말은 안 했지만 우린 그 기원으로 비밀을 영원히 봉인시켰어."(본문 중에서)

     

 

      《바람의 화원》, 《뿌리깊은 나무》의 작가 이정명이 내놓은 이번 소설 역시 추리소설의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참혹한 시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지요. 작가는 능숙한 솜씨로 독자를 기만하면서 터널 중심부로 이끌어 갑니다. 어둡고 음습한 터널의 분위기가 슬슬 지루해질 즈음, 잡힐 듯 말 듯,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나는 이가 있는데요. 수줍은 듯 엷은 미소를 물고 있는 스물아홉 청년. 시인 윤동주입니다. 교토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윤동주는 1943년 독립운동 혐의(개정 치안유지법 제5조 위반)로 2년 형을 언도받고 1944년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됩니다. 《별을 스치는 바람》은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 1944년부터 그 이듬해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일 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탈출하고 싶었어요."
"어디로?"
"글 속으로, 수많은 잠언과 아름다운 문장들 속으로!" (본문 중에서)

 

 

 

      폭력과 증오로 얼룩진 황폐한 형무소에서 '죄수'와 '간수'의 역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전쟁의 광기와 바이러스처럼 퍼진 불안. 참혹한 시대의 폭력에 갇혔다는 점에서 그들 모두 희생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무소의 간수 스기야마와 유이치가 그 진실을 입증하는 역할을 합니다. 악마로 불리던 스기야마의 짐승 같은 포악함이나 유이치의 냉소적 무관심 모두 현실을 지탱하기 위한 본능적 방어였던 것입니다. 이들 역시 전쟁의 광기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무력한 인간, 죄수와 다름 없는 신세였습니다. 이들을 구원하는 것은 책,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시인 윤동주가 있습니다. "문신처럼 미소를 입에 물"고 있는 조선인 죄수의 순수함짐승 같은 삶에 길들여진 스기야마의 마음을 뒤흔들어요. 이 소설의 숨은 매력은 여기 있습니다. 죄수와 간수, 희생자와 가해자, 일본인과 조선인의 신분을 뛰어넘는 인간적 교류. 간수이자 검열관이었던 스기야마와 시인 윤동주를 이어준 것은 악몽과도 같은 시대적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바람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문장들"은 그들의 은밀하고 아늑한 피난처가 되어주었습니다.

 


      나는 유령처럼 투명해지고 싶었다. 그렇게 되어서라도 이 지옥 같은 형무소를 벗어나고 싶었다. 나의 영혼을 위로할 유일한 방법은 무언가를 읽는 것뿐이었고, 검열실은 내가 도망칠 유일한 장소였다. 책과 엽서를 읽는 순간만큼은 참혹한 시대의 폭력에 멍든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본문 중에서)

 

 

 

       소설 곳곳 윤동주의 시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저 먼 시대, 1944년의 춥고 황폐한 형무소로부터 날아온 엽서를 읽는 심정으로 읽었습니다. 이야기의 진실에 매료되기 시작한 일본인 검열관의 감미로운 초조함이, 고향을 그리는 조선인 죄수의 그리움이 스며 있는 그 아름다운 문장들은 별처럼 깜박이고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건 살아 있는 거야. 더럽고, 참혹하고, 지옥 같은 이 세상에 살아남는 거지. 천사처럼 순수하고, 영웅처럼 용감하게 죽기보다는 악마처럼 악하고 야수처럼 비열하게라도 살아남아야 해. 악마처럼 간악하게 살아남아야 천사처럼 착하게 죽을 수 있으니까. 살아남아야 더러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고, 악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위안받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본문 중에서)

 

 

 

 

       무엇보다도 소설의 흥미, 또는 의미를 더하는 것은 윤동주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진 허구적 인물이라 보다 색다른 매력을 가집니다. 히라누마 도주. 죄수 645번. 윤동주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이미지와는 또 다른 면모를 만날 수 있는데요. 인간 윤동주의 무력(無力)과 절망, 그리고 교활함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인간 윤동주는 무력하지만, 시인 윤동주는 힘이 셉니다. 그의 시는 죽음과도 같은 형무소의 빛이었고 피난처였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문장은 우리 마음에 살아 있습니다. 인간 윤동주는 죽었지만, 시인 윤동주는 영원히 살아남을 것입니다. 소설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결국 그것 아닐까.

 

 

                                                                              *  2006년 8월 28일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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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말하기엔 너무 끈적끈적한 계절인가요. 뭐, 말 안해도 사랑은 항상 그 자리에. 바로 당신 앞에, 그리고 당신 뒤에도. "전 지구를 통틀어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는 사이먼 밴 부이의 소설집입니다. 열아홉 편의 소설을 싣고 있는 이 소설집에서 작가는 사랑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사랑의 추억을 그리는 서늘한 시간의 온도. 그 시간의 그늘이 이 여름, 자꾸 녹아내리고 있는 우리를 붙들어 주기를.

 

 

 

 

 

 

 

 

 


     필립 K. 딕의 소설책 한 권이 책꽂이에 꽂혀 있습니다. 책의 앞부분 몇 쪽만을 읽다 덮은 채입니다. SF 장르에 대한 낯설음 때문이었을까요. 그뿐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뭔가 기묘한 세계에 막 들어선 듯한... 그러니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행성에 불시착한 듯한 설렘과 불안 섞인 기분이 조금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모 작가께서 필립 K. 딕의 소설을 강력추천하시기에 읽어보려던 참이었는데... 그랬었죠. 제목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이 책은 필립 K. 딕 걸작선 아홉 번째 책인데요. 필립 K. 딕 작품세계로 들어가는 입문서라는 평이 있군요. 아무래도 이 책 먼저 읽어봐야 할 것 같군요!

 

 

 

 

 

 

 

 

 

 

 

     세상의 얼룩과 그늘을 특유의 발랄한 문장으로 환하게 밝히는 김애란 작가의 따끈따끈... 아니, 씨원한~ 신작입니다. 작가의 팬으로서 무척 반갑습니다. 제목과 표지의 느낌도 마음에 들고요. 무조건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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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 있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 몸과 마음, 언어와 신체, 건강과 치유에 대한 한 회의주의자의 추적기
팀 파크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백년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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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건강 서적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습니다. 건강 서적이라 하면 전문적인 건강 지식을 기대하실 텐데요.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겠네요. 전문적인 건강 정보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건강 관련 서적이 맞습니다. 전립선 통증에 시달리는 오십대 남성의 치유 과정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전립선 통증에 시달리는 오십대 남성은 저자 자신이고요. 요즘에 엄마들 임신하면 태교 일기라는 것 쓰던데요. 몸과 마음의 치유 과정을 꾸밈없이 기록하고 있는 이 책 역시 일종의 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치유 일기 정도로 이름 붙일 수 있을까요. 병원 가서 검사 받고 약 먹으면 될 일이지 무슨 치유 일기. 생명이 위중한 병도 아니고. 그러실 분도 있겠지만 상황은 조금 복잡합니다. 저자를 괴롭히는 통증은 심인성(心因性)이기 때문이지요. 의학적인 기준으로는 정상, 아주 말짱하다는 것. 일상을 위협할 정도의 통증은 나아질 기미는 커녕 심해지기만 하는데 말입니다. 정밀검사 결과(지극히 정상) 앞에서 저자, 팀 파크스는 희비가 엇갈립니다. 어쨌든 '정상'이라는 것에는 안도하는데요. 반면 절망합니다. 병을 알아야 치료를 할 텐데, 자신의 통증을 의사도 설명하지 못하니까요. 의학적으로 '정상'이라는 낙인이 찍힌 팀은 주변과도 괴리됩니다. 분명히 존재하는 그 통증을 설명할 수도 보여줄 수도 없으니까요. 주변과 괴리된 팀은 자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병을 앓는 나, 마음과 육체로 이루어진 나는 누구인가.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에 대해 실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정체불명의 통증'이 끝없이 환기시키고 있었던 것이지요. 내가 누구지. 정체를 밝혀줘. 자신과의 깊은 교류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늘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구루 콜먼은 어느 날 저녁 담화 때 우리에게 말했다. "내가 어떤 식으로 나 자신의 괴로움의 원인이 되고 있는지." (본문 중에서)

 

 

       책의 전반부는 전립선, 요도, 음경, 방광, 괄약근 등에 이르는 신체적인 언어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뒤로 갈수록 그 흐름이 정신적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신뢰해 마지않던 과학은 자신의 통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냥 정상이라는 말만 되풀이하지요. 심지어 한 의사는 팀에게 자신의 마음에 귀기울이라는 식의 충언을 덧붙이기도 해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를 신뢰해 온 팀은 혼란에 빠집니다. 평생 통증을 안고 살아갈 것인가. 어릴 적부터 불신하고 경멸해 온 세계 - 비합리와 비현실의 세계, 이른바 아버지의 세계 - 에서 답을 찾아볼 것인가. 목사였던 아버지와 독실한 신도였던 어머니의 비현실적인 신앙으로부터 쫓기듯 멀어졌는데, 이제 와서 다시 비현실의 영역에 의지한다는 것은 자존심과도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나에게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아니, 어떤 식으로든 가만히 있는 것이 늘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 티머시!" 어머니의 목소리. 나는 교회 신도석에서 어머니 옆에 앉아 몸을 꿈틀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설교하는 동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왜 나는 늘 나의 문제들이 아버지의 설교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상상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일까?). 아버지가 길게 기도를 할 때는 더 심했다. 나는 기도가 싫었다. 나는 교회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고, 가만히 무릎을 꿇고 있을 수도 없었다. "파크스!" 분필 한 조각이 내 뺨 옆을 빠르게 날아갔다. 학교였다. "안달 좀 하지 마. 가만히 앉아 있어!" 행복한 시절이었다. 선생이 아이한테 분필을 던질 수 있다니. (...) 나중에 커서는 강연, 회의, 독서회, 교수회의 자리가 그랬다. 나는 가만히 앉아 동료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다른 작가가 낭독하는 동안에 안절부절못했다. (본문 중에서)

 

 

       통증은 자존심보다 강했습니다. 마침내 팀은 이른바 정신의 영역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명상이지요. 명상.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다른 것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법을 배우는 것. 별 거 없다고요? 단 5분만 가만히 앉아 있는 것에만 집중해 보세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지요. 안팎의 소음들. 다른 사람들 목소리,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 생각. 생각. 또 생각. 생각 말자는 생각. 생각 말자는 생각도 하지 말자는 생각.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 팀은 명상을 에고 중심적인 삶을 부수는 "복잡한 철거 작업"에 비유합니다. 오랫동안 꽉 붙들고 있던 것들이 천천히 하나씩 해체될 때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이 부분에서는 명상 서적으로 둔갑합니다. 썩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상당히 구체적이고 솔직한 명상 체험을 쓰고 있어요. 어떤 부분은 상당히 실감적이어서 함께 명상에 빠져드는 기분마저 들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매혹적이었고요.

 

 

    말은 존재한 적이 없는 궁전을 짓는다. 허공에. 순수한 정신적 재료로. 정말 주의하라! 어디에서 진짜가 시작되고 끝이 나는지, 도대체 언제 말할 수 있을까? (...) 언어는 궁전을 짓고, 그것이 해체되면 그 위에 다른 궁전을 짓는다. 말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팀 파크스. 저자는 작가입니다. 그의 통증처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정체가 애매한 이 책에서 팀은 자신의 통증과 관련하여 다양한 문학, 예술 작품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그냥 어쩌다 인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책 전반에 걸쳐 흐름을 같이 하고 있어요. 특히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통증이 시작된 시점부터 명상, 치유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명상을 시작하고부터 팀이 언어의 불확실성과 비현실성을 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딛고 선 세계 역시 집착으로 지어진 불확실城이라는 것을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립선이니 요도니 방광 타령만 했다면. . . 생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끝까지 읽기 힘들었을 거예요. 아. 전문 건강 지식을 기대하고 책을 펼친 분들에게는 이 책이 끔찍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네요. 이 책 정체가 뭐야? 책 읽다 말고 표지 한 번 보고 저자 프로필 한 번 보고... 결국 책을 덮게 될지도. 몸과 마음 언어와 신체 건강과 치유에 대한 한 회의주의자의 추적기. 책에 달린 부제인데요. 뭐, 부제를 봐도 크게 와닿지는 않으실 것 같아요. 읽기 전에는 아무리 말해도. 제목이나 표지 그림도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 아닐까 노파심이 드는데요. 이상한 책 아닙니다. 아니고요. 읽기에 따라서는 참 잡스럽다 느낄 수도 있지만요. 생각하기 따라서는 당신과 나, 우리 삶이라는 것도 잡스러운 것 아닌가요. 동의 못하는 사람 이 책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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