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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어른아이에게
김난도 지음 / 오우아 / 2012년 8월
평점 :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이은 김난도 교수의 신작 에세이입니다. 정식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저는 가제본을 읽었습니다. 가제본은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는 표제를 달고 있습니다. 확정된 제목은 아니라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이보다 어울리는 제목은 없는 것 같습니다. "흔들리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존재로 성숙해가는 과정(51쪽)"에 있는 '어른아이'의 시련과 좌절,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 책의 취지와 마침맞다는 생각. 책의 내용을 모르는 이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그래요. 어른 구실 참 어렵습니다. 미처 어른이 되기도 전에 어른의 짐을 지고 뒤흔들리는 어른아이들이 많습니다.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당신은, 어른입니까?
어른이란 인간발달의 특정 '시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삶의 흔들림을 스스로 잡아나가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엉망으로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고요. (프롤로그, 중에서)
빨리 서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난도 교수가 학생들에게 자주 듣는 말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이십대를 지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저 역시 이십대 때에는 서른이 되면 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 서른이 되고 보니 막막합니다. 완전히 끝장내기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쉽지 않은 어정쩡한 나이가 서른이더군요. 끊임없이 쏟아지는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서적들이 '서른'의 고초를 다루고 있는 것만 보아도 서른은 만만찮은 고비인 것이 분명합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발밑에 진하게 붙어 있는 그림자를 볼 때, 이런 생각을 한다. 빛이 밝으면 누구에게나 밟고 버텨야 하는 그림자가 생기는 법이라고. 잔뜩 흐린 날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인생의 빛줄기가 환희처럼 쏟아져내리는 밝은 대낮에 음영이 더욱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것이라고. 그 그림자, 필연이라고. (63,64쪽)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기본적으로 대학생 독자를 위한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어른' 혹은 '어른이 되어가는 어른아이들'을 위한" 책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20대 후반 이후" 독자층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지요.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김난도 교수는 '어른아이'들이 겪는 사회적, 정신적 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조언과 격려를 보내고 있습니다.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제자에게 쓴 편지글이나, 그에게 조언을 구해왔던 젊은이의 글을 소개하기도 하는데요. 그들의 고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삼십대라면 직간접적으로 겪어봤을 법한 것들이지요. 직장생활의 환멸, 현실과 이상(理想)의 괴리, 너무 빨리 지워진 '어른'의 책임 등.
옆자리에서
오늘 하루 번 것을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있다
소주 마시는
두 젊은이
벌써 지아비이고 아비로다
고은, 「순간의 꽃」
그들의 고민은 우리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던 어른들이 있었고요. 요즘 TV에서도 유명인들의 멘토링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화려한 성공을 거둔 이들에게도 실패와 좌절로 점철된 과거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련을 거쳐왔던 것입니다. 정상에 우뚝 선 그들의 인간적인 약점과 상처, 실패의 경험은 그 자체로 우리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합니다. 트루스토리, 진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그런 귀한 이야기를 얻어 듣겠습니까. 그들의 이야기가 주는 중요한 교훈은 삶에서 시련은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시련의 굴레란 숙명이다. 다만 그 운명을 '미워도 다시 한번' 사랑하는 것만이 시련을 체념하지 않고 감당하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그토록 힘겨운 운명의 굴레에도 불구하고, 내 삶은 소중하며 나는 그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65쪽)
삼십대를 지나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른은 '성숙해 나가는 과정' 아닐까요. 이 말은 곧, "시련의 굴레란 숙명"이라는 말과도 상통합니다. 사십대, 오십대가 되어도 우리의 시련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시련을 피하려고만 하면 성장하기 어렵겠죠. 어른이 될 수 없겠죠. 죽을 만큼 힘들어도 내 삶, 나의 운명은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이 책을 통해 김난도 교수가 들려주는 조언을 한 문장으로 줄일 수도 있겠는데요. 아모르파티 Amor Fati .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여기 어른이 되는 해답이 있습니다.
무심히 펼친 책이었습니다. 이런 책들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나, 하고요. (빌어먹을 오만과 편견!)그런데 뜻밖의 공감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김난도 교수의 멘토링, 즉 조언에서 진정이 느껴집니다. 괜찮다. 다 지나간다. 청춘의 시련을 거쳐온 자, 그리고 성찰해 온 자의 온유함이 어깨를 툭툭 다독입니다. 언어의 홍수 시대라 하죠. 말만 번지르르한, 뜬구름 잡는 책들이 넘쳐나는데요.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