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 있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 몸과 마음, 언어와 신체, 건강과 치유에 대한 한 회의주의자의 추적기
팀 파크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백년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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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건강 서적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습니다. 건강 서적이라 하면 전문적인 건강 지식을 기대하실 텐데요.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겠네요. 전문적인 건강 정보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건강 관련 서적이 맞습니다. 전립선 통증에 시달리는 오십대 남성의 치유 과정을 그리고 있으니까요. 전립선 통증에 시달리는 오십대 남성은 저자 자신이고요. 요즘에 엄마들 임신하면 태교 일기라는 것 쓰던데요. 몸과 마음의 치유 과정을 꾸밈없이 기록하고 있는 이 책 역시 일종의 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치유 일기 정도로 이름 붙일 수 있을까요. 병원 가서 검사 받고 약 먹으면 될 일이지 무슨 치유 일기. 생명이 위중한 병도 아니고. 그러실 분도 있겠지만 상황은 조금 복잡합니다. 저자를 괴롭히는 통증은 심인성(心因性)이기 때문이지요. 의학적인 기준으로는 정상, 아주 말짱하다는 것. 일상을 위협할 정도의 통증은 나아질 기미는 커녕 심해지기만 하는데 말입니다. 정밀검사 결과(지극히 정상) 앞에서 저자, 팀 파크스는 희비가 엇갈립니다. 어쨌든 '정상'이라는 것에는 안도하는데요. 반면 절망합니다. 병을 알아야 치료를 할 텐데, 자신의 통증을 의사도 설명하지 못하니까요. 의학적으로 '정상'이라는 낙인이 찍힌 팀은 주변과도 괴리됩니다. 분명히 존재하는 그 통증을 설명할 수도 보여줄 수도 없으니까요. 주변과 괴리된 팀은 자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병을 앓는 나, 마음과 육체로 이루어진 나는 누구인가.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에 대해 실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정체불명의 통증'이 끝없이 환기시키고 있었던 것이지요. 내가 누구지. 정체를 밝혀줘. 자신과의 깊은 교류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늘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구루 콜먼은 어느 날 저녁 담화 때 우리에게 말했다. "내가 어떤 식으로 나 자신의 괴로움의 원인이 되고 있는지." (본문 중에서)

 

 

       책의 전반부는 전립선, 요도, 음경, 방광, 괄약근 등에 이르는 신체적인 언어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뒤로 갈수록 그 흐름이 정신적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신뢰해 마지않던 과학은 자신의 통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냥 정상이라는 말만 되풀이하지요. 심지어 한 의사는 팀에게 자신의 마음에 귀기울이라는 식의 충언을 덧붙이기도 해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를 신뢰해 온 팀은 혼란에 빠집니다. 평생 통증을 안고 살아갈 것인가. 어릴 적부터 불신하고 경멸해 온 세계 - 비합리와 비현실의 세계, 이른바 아버지의 세계 - 에서 답을 찾아볼 것인가. 목사였던 아버지와 독실한 신도였던 어머니의 비현실적인 신앙으로부터 쫓기듯 멀어졌는데, 이제 와서 다시 비현실의 영역에 의지한다는 것은 자존심과도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나에게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아니, 어떤 식으로든 가만히 있는 것이 늘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 티머시!" 어머니의 목소리. 나는 교회 신도석에서 어머니 옆에 앉아 몸을 꿈틀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설교하는 동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왜 나는 늘 나의 문제들이 아버지의 설교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상상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일까?). 아버지가 길게 기도를 할 때는 더 심했다. 나는 기도가 싫었다. 나는 교회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고, 가만히 무릎을 꿇고 있을 수도 없었다. "파크스!" 분필 한 조각이 내 뺨 옆을 빠르게 날아갔다. 학교였다. "안달 좀 하지 마. 가만히 앉아 있어!" 행복한 시절이었다. 선생이 아이한테 분필을 던질 수 있다니. (...) 나중에 커서는 강연, 회의, 독서회, 교수회의 자리가 그랬다. 나는 가만히 앉아 동료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다른 작가가 낭독하는 동안에 안절부절못했다. (본문 중에서)

 

 

       통증은 자존심보다 강했습니다. 마침내 팀은 이른바 정신의 영역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명상이지요. 명상. 뭔가 거창해 보이지만 다른 것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법을 배우는 것. 별 거 없다고요? 단 5분만 가만히 앉아 있는 것에만 집중해 보세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지요. 안팎의 소음들. 다른 사람들 목소리,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 생각. 생각. 또 생각. 생각 말자는 생각. 생각 말자는 생각도 하지 말자는 생각.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 팀은 명상을 에고 중심적인 삶을 부수는 "복잡한 철거 작업"에 비유합니다. 오랫동안 꽉 붙들고 있던 것들이 천천히 하나씩 해체될 때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이 부분에서는 명상 서적으로 둔갑합니다. 썩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상당히 구체적이고 솔직한 명상 체험을 쓰고 있어요. 어떤 부분은 상당히 실감적이어서 함께 명상에 빠져드는 기분마저 들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매혹적이었고요.

 

 

    말은 존재한 적이 없는 궁전을 짓는다. 허공에. 순수한 정신적 재료로. 정말 주의하라! 어디에서 진짜가 시작되고 끝이 나는지, 도대체 언제 말할 수 있을까? (...) 언어는 궁전을 짓고, 그것이 해체되면 그 위에 다른 궁전을 짓는다. 말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팀 파크스. 저자는 작가입니다. 그의 통증처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정체가 애매한 이 책에서 팀은 자신의 통증과 관련하여 다양한 문학, 예술 작품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그냥 어쩌다 인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책 전반에 걸쳐 흐름을 같이 하고 있어요. 특히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통증이 시작된 시점부터 명상, 치유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명상을 시작하고부터 팀이 언어의 불확실성과 비현실성을 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딛고 선 세계 역시 집착으로 지어진 불확실城이라는 것을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립선이니 요도니 방광 타령만 했다면. . . 생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끝까지 읽기 힘들었을 거예요. 아. 전문 건강 지식을 기대하고 책을 펼친 분들에게는 이 책이 끔찍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네요. 이 책 정체가 뭐야? 책 읽다 말고 표지 한 번 보고 저자 프로필 한 번 보고... 결국 책을 덮게 될지도. 몸과 마음 언어와 신체 건강과 치유에 대한 한 회의주의자의 추적기. 책에 달린 부제인데요. 뭐, 부제를 봐도 크게 와닿지는 않으실 것 같아요. 읽기 전에는 아무리 말해도. 제목이나 표지 그림도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 아닐까 노파심이 드는데요. 이상한 책 아닙니다. 아니고요. 읽기에 따라서는 참 잡스럽다 느낄 수도 있지만요. 생각하기 따라서는 당신과 나, 우리 삶이라는 것도 잡스러운 것 아닌가요. 동의 못하는 사람 이 책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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