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자 100문 100답 - 왕초보도 100% 성공하는 100문 100답
박정수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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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권할까?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

재테크를 심도있게 공부하고 싶은 주부.

은행 예금이나 주식 외에 다른 투자처를 찾고 싶은사람.

 

저자는 자산관리를 하는 직업을 갖고 있고

보험영업에 관심이 있으며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 경험도 있다고 한다.

재테크에 관해서 전문가라 볼 수 있다.

저자는 여러 재테크 수단중에서 특히

부동산 투자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부동산 투자처로 환급성이 뛰어나고

투자비용이 많지 않으며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소형 아파트에 투자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투자는 뭐니 뭐니 해도 환금성이 중요하다.

빌라와 다세대주택 수백채를 가지고 있으면 뭐 하겠는가?

팔고 싶을때 팔 수가 없고 돈이 필요할 때 돈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올바른 투자라고 할 수있겠는가?"

 

81쪽

 

 

빌라, 다세대, 원룸 주택은 투자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환급성이라고 하는데​

소형아파트는 다른 부동산 보다도 수요가 많기에 환급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투자를 권하고 있다.

 

 

"값비싼 중대형 아파트는 계속 늘어나지만

수요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저렴한 소형 아파트는 끊임없는 수요층으로 인해

가격이 오를 확률이 높고 투자를 하기에도 제격이다."

 

90쪽

 

 

저자는 한국의 인구비율이 앞으로 1인가구나 2인가구가 대세를 이루기 때문에

중대형 아파트는 인기가 없고 소형아파트가 인기가 있을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중대형 아파트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소형아파트야 말로 수요층이 계속 확대되어

가격 상승이 기대된다고 말하고 있다.

 

 

"거대한 산업 단지가 존재하는 지방 도시,

그중에서도 직장군이 몰려 있는 지역의 소형 아파트 단지,

그 아파트 단지에서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극히 작은 아파트를 노려야 한다."

97쪽

 

소형 아파트를 고르는 노하우도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방 도시의 경우  그 도시에 거대한 산업 단지가 있어

일자리가 풍부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인구 유입이 늘어 전세 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전세 수요가 늘어야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 마련이다.

 

또한 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이가 작은 것을 고르라고 조언하고 있다.

전세가가 매매가에 바짝 추격하고 있어야

매매가격을 위로 밀어 올리기 때문이다.

또 전세가 높다는것은 그만큼 아파트가 인기가 많다는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투자금도 적게 든다.

전세를 안고 집을 산다면 투자금이 훨씬 적게 든다.

 

 

 

"물가가 오르면서 전세가가 오르기도 하지만,

요즘은 아파트 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아서

전세 공급이 가파르게

줄어드는 통에 전세가가 더욱 오를 수밖에 없다."

107쪽

 

 

요즘 은행 이자가 낮고

아파트 상승세가 예전만 못하여

많은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분위기다.

때문에 전세집을 구하기는 더욱 어렵고

전세가는 오르게 된다.

 

 

 

"주택임대사업자가 되면 재산세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고

종합부동산세는 한 푼도 안 낸다.

나중에 양도소득세도 아주 많이 줄어든다."

 

115쪽

 

아파트를 투자할 시

주택임대사업자를 시청에 가서 등록하여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를 줄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아파트 거래시 세금과 중개사수수료도 무시 할 수 없다.

 

 

 

"우리는 시세 차익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다.

내가 투자한 아파트, 내가 투자한 금융 상품에서 계속 현금이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현금 흐름을 목표로 투자하는 게 행복한 것이다."

 

140~141쪽

 

 

저자는 아파트를 시세차익을 위해 사고 팔지 말고

현금 흐름을 목표로 아파트를 매수하여 아파트 수를 늘리라고 조언하고 있다.

아파트 수를 늘려 높아지는 전세금으로 다시 재투자 하라고 한다.

 

 

 

"소형 아파트 임대 사업을 하면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에서 버성날 수 있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주인이자 자본주의 사회의 주인으로 살 수 있다."

 

275쪽

 

 

투자에 성공하여 부자가 된다면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을것이다.

투자란 돈을 잃을 수도 있고 얻을 수도 있다.

그 만큼 소중한 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를 끊임없이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돈을 얻는것도 중요하지만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한순간에 날리지 않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을 잃지 않으려면 경제, 법, 투자 등

사회전반에 관하여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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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토론 콘서트 : 한국사 -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9가지 한국사 쟁점 꿈결 토론 시리즈 5
김태훈 지음, 이창우 그림 / 꿈결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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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권할까?

 

한국사를 좋아하는 청소년.

한국사에 흥미를 갖고 있는 중학생.

토론이나 논술을 공부학고 싶은 청소년.

 

 

역사를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점들을

토론형식으로 풀어나간 책이다.

청소년에게 역사에 관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나도 의구심을 갖고 있던 테마에 대해 거론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가상의 인물들이 나와 역사적으로 상반되는 의견을 갖는 테마에 대해서

사료와 데이터를 인용하여 각자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고대 한반도 남부에 일본이 존재하였는가?

삼국 통일은 역사 발전에 기여하였는가?

발해는 우리나라의 역사인가?

고려는 원 간섭기는 식민 지배를 받던 시기였나?

조선은 임진왜란에서 승리했나?

일제의 공업화 정책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가져왔는가?

 

 

일본과의 껄끄러운 역사도 많이 다루고 있다.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과 일제의 한국 발전 기여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가 인상적이다.

또한 삼국통일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쟁점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살펴봄으로써

객관적으로 생각하는 기회를 독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한국사에서 신라의 삼국 통일은 민족의 통합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삼국 간 경쟁 과정에서 우연히 일어난

큰 의미가 업슨 사건으로 보아야 할지

상당히 의견이 분분한 주제이다.

 심지어 신라의 삼국 통일이라는 용어가 일제의 식민사관과 관련되어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에 삼국 통일이 과연 역사발전에 기여했는지 점검해 보기 위해 이 분야의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51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 하였다면 지금의 한국이 강대국이 되었을것이라고

아쉬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신라의 삼국통일은 작은나라가 살기위한 몸부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당나라 입장에서는 고구려라는 강대국은 언젠가는 정벌해야하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기에 전쟁을 피할 수 없었고​

고구려는 권력다툼으로 인한 내부의 분열이 나라가 망하는 커다란 촉진제가 되었다.

신라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건 내부결속과 외교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당나라를 위협 할 정도로 크고 강대한 나라가 아니였기에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후손인 우리가 볼때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는 다 같은 조상이라고 생각하지만

​당대 그 나라의 사람들은 나라의 국운을 걸고 치열하게 싸웠다.

​신라가 통일을 했다고 해서 그것을 우리 후대의 시각으로 비판할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라는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해 몸부림 쳤을 뿐이다.

 

 

 

"'일제의 공업화 정책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가져왔나요?'라는

주제는 일제강점기를 이해하고, 나아가 오늘날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역사적 시각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볼 수 있어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번에도 이 주제를 의미 있게 생각하는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편에서는 경제성장이라는 실체를 인정하고 당시를 새롭게 이해하자고 주장했다,

다른 편에서는 상대의 주장이 결국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인정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212쪽

 

 

일제에 의한 식민지로

일제가 한국에 경제발전을 도왔다는건

지금의 시각으로 당시를 바라본 일본인의 주장이라 생각한다.

당시에는 이미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었고

일제는 그저 전쟁준비와 수탈을 위하여

한반도에서 효율적으로 자원을 가져가기 위해

철도를 깔고 공장을 지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인의 행복과 복지를 위해

철도를 깔고 전기를 설치하고 공장을 가동했던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일본의 발전을 위해 한것이기에

그들이 한국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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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풀어쓴 도덕경 - 도는 늘 무위이지만 하지 못 할 일이 없다
노자 지음, 전재동 엮음 / 북허브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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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권할까?

 

도덕경이 평소에 궁금한 학생.

자연을 사랑하고 무위자연을 살고싶은 사람.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은사람.

 

 

저자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도덕경을 시로써 편역하는 시도를 하였다.

 

문득

성서적 입장에서 쓴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떠올랐다.

 

기독교적 시각으로

동양철학의 진수인 도덕경을 풀어 썼다니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책 내용은

시 구절로 간략하게 꾸며

읽기가 아주 편하다.

책 하단에는 원문인 한문을 같이 표기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사마천은 노자와 공자의 대화내용을 기록했는데,

노자가 공자의 교만과 야심을 꾸짖고

이에 공자가 큰 감명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6쪽

 

 

 

사마천의 사기에 노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노자는 속세를 떠나 자연속에서 도를 추구하는 사람이었고

공자는 속세에서 도를 추구하였던 사람이다.

노자와 공자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것 같다.

노자는 공자을 꾸짖었다.

 

노자는 노자대로 배울점이 있고

공자는 공자대로 배울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사랑하고 무위로서 순리를 맞게 사는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 속에서 격식을 예를 차리며 정치를 하는것도 인간세상에서는 중요하다.

 

 

 

"도덕경이 시작된 뒤로 오늘의 도덕경이 되기까지는

적어도 몇백 년이 걸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 증거로 판본을 들 수 있는데,

발견되는 판본마다 조금씩 내용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8쪽

 

 

 

현재 전해지는 불경, 성경, 논어, 도덕경 등 많은 경전들이

후대 사람에 의하여 고쳐지거나 내용이 삽입 되었을 것이다.

성인이 활동했던 시기에는 문자를 기록할 만한 기술이 없던 시절이라

정확하게 모든것을 기록할 수 없고 구전으로 많이 내려 왔을것이다.

또 그들의 말씀들이 구전 통하거나 경전을 통해

오랜세월 내려오면서

편저자에 따라 내용이 약간씩 변형이 있었을 것이다.

 

 

 

"하늘의 도(道)는 사사로운 정은 없고

언제라도 선인(善人)의 편에

서는 것이 보통이다

하나님의 뜻이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위해서

언제나 축복하는 자리에 있고

선한 살마으로 살기를

바라고 가르치신다

 

하늘의 도는 영원한 진리이고

영원히 변치 않으시니

진정 믿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天道無親 常與善人

천도무친 상여선인 "

 

268쪽

 

 

 

도덕경의 원전을 적고

그에 따른 기독교적 시각으로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이는 도덕경은 좀 아나 기독교의 문외한인 사람에게

기독교의 교리를 조금이나마 맛볼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도덕경은 무위자연의 사상을 담고 있다.

 '도는 늘 무위이지만 하지 못 할 일이 없다.'

이런 내용이 도덕경 곳곳에 뿌리내려 있다.

자연을 귀하게 여기고 자연과 하늘 그리고 도를 같은

맥락에서 전개한다.

 

노자는 언어에 대하여 심오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언어를 초월하는 사상을 무위로 설명하였다."

9쪽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진리의 세계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기란 어렵다.

단지 언어로써 그 방향을 가르켜 줄 뿐이다.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원자력발전소에 의한 방사능 누출 등

인간이 살기 힘든 환경을 인간을 만들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한 일원임을 알고

더이상 자연을 파괴하기를 멈추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 할 때이다.

 

우리가 더이상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살수 있는 생활양식을 만드는데

과학기술 역량과 자본을 집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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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다시 시작하다 - 리셋 원정대의 뉴질랜드 트레킹
박재희 지음 / 꿈의지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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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권할까?

 

트레킹을 좋아하는 중년.

여행을 좋아하는 청년.

뉴질랜드에 여행을 가고 싶은 직장인 .

삶에 지쳐 머리를 리셋하고 싶은 직장인 및 고시생.

 

 

 

삶에 지친 7명이

머리를 리셋하고

가벼운 마음을 갖고자

뉴질랜드 자연으로 트레킹을 하는 이야기다.

이름하여 리셋원정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길이래요. 밀포드 트랙."

 

빙하호수에 산이 완벽하게 비치는 사진이었다.

눈이 덮인 산 아래는 따뜻한 풀과 꽃들의 키가 컸다.

이름도 거창한 일명 남반구원정 프로젝트는 뉴질랜드의 스텔라가 보낸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되었다."

 

13쪽

 

 

저자의 친구가 뉴질랜드에서 사진을 보냈느데

뉴질랜드 경관이 담긴 사진이었다.

뉴질랜드 경관의 영화 '반지의 제왕'를 통해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졌다.

태고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보전이 잘된 뉴질랜드 자연은

트레킹을 좋아하거나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장소가 틀림없다.

 

나도 뉴질랜드의 자연은 풍문으로 들었는데

책을 펼쳐보며 뉴질랜드의 자연 경관을 보니

정말 아름답고 매혹적인 곳이었다.

 

평소 산을 동경하고 자연인의 삶을 동경하던 나로서는

뉴질랜드는 자연은 참으로 멋지고 고혹적인 곳이었다.

 

 

 

"그래 가자, 무조건,  우리 여기 가애 해!"

 

"'언젠가 한번'이라고 습관처럼 말해 왔지만

그날 우린'언젠가'는 절대로 오지 않는 날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였다.

인간의 발길을 허락한 지 백년도 채 되지 않은 원시의 땅,

태초의 길 밀포드와 루번트

그리고 마오리족의 구름 신이 산다는 아오라키 마운트 쿡으로

나기로 했다."

 

19쪽

 

 

 

산 길을 두 다리 걸으며

트레킹을 할 때는

평소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느끼지 못했던것들을

많이 느끼며 또 생각하게 된다.

도시의 번잡함에 따라

머리도 번잡하다.

 

하지만 조용한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번잡한 생각이 가라앉아

머리도 맑아진다.

무념무상으로 자연을 느끼며

오로지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발바닥의 느낌에 집중하게 된다.

 

나에게

트레킹은

무념무상으로 가는 길이다.

 

 

"1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두 다리로 걸었고,

비행기로 배로 자동차로 이동한 여정이 꽤나 길었지만.

결국 우리가 걸은 것은 길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것을 여정 끝나갈 즈음에 깨달았다."

 

23쪽

 

 

나는

다른 나라를 방문한때

공항 입국수속이 가장 긴장된다.

여권을 들고 긴 줄을 서며 기다리면서

출입국관리사무원의 예상질문을 생각해보고

그에 대한 답을 마음속으로 되내이곤 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말이다.

 

이런 초조함과 긴장감

다른 나라에 왔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뉴질랜드 입국수속은 뉴욕에 뒤지지 않을 만큼 번거롭고 까다롭다.

미국인들이 테러리슽, 마약범죄자, 불법체류자 후보 취급을 하면서

속을 뒤집는다면 여기 검색원들은 예의바르고 친절한

고집불통이라고나할까?"

45쪽

 

 

살면서

고민이 많을때는

머리를 리셋하고 싶어진다.

그럴때는

자연을 벗삼아

떠나보는건 어떨까?

대자연은

우리에게

어머니와 같아서

마음의 평화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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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거짓말 - 대마도, 그 진실은 무엇인가
서동인 지음, 이오봉 사진 / 주류성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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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권할것인가?

 

대마도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

독도에 관심이 많은 사람

한일 역사관계에 관심이 많은사람

대마도에 가보고 싶은 사람

조선통신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일본 시마네현에서 독도 조례에 대응하기 위해 부산과 창원에 대마도 조례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난 한국과 대마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것에 의아스러웠으며

대마도 역사에 관하여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후에

조선통신사.

임진왜란.

일제식민시대.

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이주의 역사.

일본의 가야, 백제, 고구려의 영향 등

한일 관계에 관심이 많아져

대마도에 꼭 가보고 싶었던 차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농사짓기가 힘든 척박한 땅을 갖고 있는 대마도는

한국에서 계속 식량을 가져와야 먹고 살 수 있는 지리적 환경을 갖고있다.

그래서 한국의 영향을 안받을 수 없는 섬이다.

 

옛 지도를 보면 대마도를 조선의 땅으로 많이 표기해 놨다.

 

고려때 대마도는 고려와 친밀한 관계였다.

고려왕도 대마도를 고려의 땅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대마도와 조선의 관계는 변화가 생겼다.

대마도와 조선의 관계가 틀어졌던것이다.

 

 

 

고려가 대마도를 지배한 확실한 근거가 있었기에

조선은 초기쿠터 대마도를'우리 땅'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고려 말 ~ 조선 초 건국 시점에 조선은 완전히 이 땅에 등을 돌렸으며,

조선 건국 세력은 그에 얽힌 자세한 사정을 숨기고 기록으로 전하지 않앗다.

아마도 혁명세력에 반대하여 대마도가 이반하였고,

스스로 이 땅의 정권과 결별한 사실을 숨겨야 했던 속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44쪽

 

 

 

대마도는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일본과 조선의 중간에서 외교의 중개적 역할을 하면서

큰 이익을 차지하였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외교문서를 조작하기도 하고

임진왜란때는 조선침공의 선봉에 서기도 하였다.

왜구들의 본거지로도 이용되었다.

 

조선은 왜구 소통을 위해 대마도를 몇 번 정벌한적이 있지만

자기의 영토로 만드려고 하진 않았다.

아마 방어도 어렵고 땅도 척박하여 사람이 살기도 힘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마도를 일본에 있어 입술과 같은 부분이라고 생각해

일본과의 완충지대로 놔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오래 전, 그것도 조선 건국 시점에서 이성계가 이미 일본 땅으로 인정하였고, 그때부터 적어도 5백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선의 땅이 아니었는데 대마도를 돌려달라는 게 말이 되는 요구인가. 조선조 5백여 년 동안 국왕과 관료들은 대마도에 많은 것을 퍼주면서 제 나라 백성들에게는 '대마도는 조선 땅'이라고 목청을 세웠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정작 일본에 대고 정식으로 대마도가 조선 땅이니 왜인들은 섬을 비우고 물러가라고 통보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앞에서 여러 차례 설명하였듯이 일본에 보내는외교문서에는 빠짐없이 대마도주를 일러 '일본국 대마주 태수'라 하였으니 '대마도가 계림에 속한 땅이었다'거나 '경상도에 예속된 섬'이라고 한 조선 국왕들의 주장은 '퍼주는 정책'에 대한 백성들의 반발을 염려하여 제 나라 백성을 속이기 위해 써먹은 대민용 멘트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유산탓에 이승만이 '대마도를 내놓으라'며 슬픈 성토를 하기까지 이르렀으니 이것이 조선정부와 국왕이 제 나라 신민을 오도하고 우민화한 거짓말의 심각한 폐혜이다.

 

399~400쪽

 

 

 

책의 제목을 '조선의 거짓말'이라고 지었는데

그 이유는 위에서 보는 봐와 같다.

조선 정는은 대마도는 계림의 땅이라고 계속 말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자기 영토에 대한 영향력 행사는 하지 않았고

오히려 외교문서에는 일본땅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민중은 계속 대마도는 조선의 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마도를 일본에게 넘겨준 밑그림이 된 것이 맥아더라인이었다.

맥아더라인은 1945년 9월27일에 선포되었다.

그 당시 공산국인 중국이 유구열도의 반황을 요구하고 있었으므로

중국과 소련의 팽창을 크게 걱정한 미국은 대마도를 유키나와(유구)와 함께

하나의 방어권 개념으로 묶어서 일본령으로 확정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16쪽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종결 후

공산당의 세력 확장을 두려원 한 미국은

일본을 지원하였고

이때 오키니와와 대마도를

일본의 영토로 확정해 주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대마도가 국제적으로 일본 땅으로 공인된 것은 1951년 7월이다.

미국의 압력에 따라 양유찬 주미대사 대마도 포기선언을 함으로써 대마도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

그러면 1945년 직후의 해방 정국에서 이 나라를 이끌었던 사람들은 대마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대부분의 한국국인들은 대마도는 한국 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대마도는 조선 땅'이라는 조선 신민들의 관념을 계승한 것이었다.

대마도가 거문도나 제주도보다도 한국 땅에서 더 가깝고,

대마도 사람들은 조선 왕조 5백 년 동안 조선인들이 가꾼 곡식과 물자를 받아서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437쪽

 

 

 

 

처음으로 한국 정부가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 것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3일째 되던 날이었다.

맥아더라인이 설정되고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 한국은 미국무부에 대마도 반황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릿지웨이를 비롯하여 워싱턴의 미국무부 관리들은 이런 요구를 무시하였다.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 방어선의 문지기로 삼았으므로 기존의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선에서

한국의 요구를 묵살하였으며, 일본은 부단히 마찰을 일으킴으로써 걸음마 단계의 한국 정부를 괴롭혔다.

 

448쪽

 

 

 

현재 일본인이 사는 대마도를

돌려 달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조선시대 오백년동안 대마도를 자신의 토로

인정하지 않고 내쳤기에 지금와서 영유권을 주장하기 힘들다.

 

 

매년 많은 한국 관광객이 대마도를 찾고 있다.

대마도는 한국에서 많은 이익을 취하는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대마도가 그간 한일 관계의 중개적 역할을 해온 이력을 가지고 있다.

조선통신사가 꼭 거쳐갔고 대마도주가 일본 에도까지 통신사 일행을 안내하였다.

이런 한일간 중간 다리 역할을 한 역사를 갖고 있기에

앞으로 한일 관계과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역할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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