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노부요시 아라키의 사진 한 장을 받았다. 유쾌하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졸렸다. 무슨 말이라도 좀 하지,라며 강요하는 사진을 분리수거했다. 말그대로 재활용 비닐백에 담았다.

 

1.

호구(糊口)

 

조바심이 입술에 침을 바른다

입을 봉해서, 입술 채로, 그대에게 배달하고 싶다는 거다

목 아래가 다 추신이라는 거다

 

-권혁웅

 

2.

그때

 

 내가 가장 처절하게 인생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

고 생각했을 때, 내가 헐떡이며 클린치한 것은 허깨

비였다 허깨비도 구슬땀을 흘렸다 내 눈두덩에, 뱃가

죽에 푸른 멍을 들였다

 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

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부러졌다

 

- 한강

 

3.

권혁웅의 시와 한강의 시를 포개어 읽는다. 상추와 깻잎을 포개듯. 그렇게 포개진 상추와 깻잎에 한 시절 또는 여전히 유효한 고유명사,하나를 얻는다.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씹어 삼킨다.

 

4.

동학농민혁명 이후 첫 번째 갑오년은 1954년, 두 번째 갑오년은 2014년이다. 실은 갑오년이 되기도 전에 나는 너일 수 없었고 너는 내가 되려고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일단 갑오년이 오기까지 기다렸다. 수운에게 묻고 싶었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디 살길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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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그늘 2014-02-2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자주..
자주..
올려 주셔요~^^

한강 시집 샀는데.. 괜찮았나요?
읽어봐야 겠어요^^

굿바이 2014-02-25 14:28   좋아요 0 | URL
어떤 시는 잘 읽히고 어떤 시는 또 그렇게 눈으로만 봤어요. 개인적인 느낌인데 한강,이라는 작가는 좀처럼 외투를 벗지 않는 작가라서 호불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여튼 구입한 시집이니 읽어보셨으면 좋겠네요.

그나저나 잘 지내시죠?

2014-02-26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니 2014-02-2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혁웅의 시집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그런 주제에 트위터에서 계정을 팔로잉을 했더니만 아이고, 이 분 하시는 말씀이 너무 어려워요. ㅋㅋ

굿바이 2014-02-26 14:42   좋아요 0 | URL
치니님 '아이고'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요 ^____________^

여튼 서울도 '아이고'소리가 절로 나오는 하늘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