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청하, 1986)도 나에게 너무 가까이 와 있다. 그의 글들의 상당수는 남이 읽은 것들을 조금씩 변형해서 재조립한 것들이어서 깊이가 부족하다. 섬세한 문장이 때로 그것을 덮어주지만 다 성공하고 있지는 않다. 그가 치열하게 싸우지 않아서 그렇다. 하나의 예외는 있는데, 그것은 그가 황지우를 비판할 때이다. 그것은 그의 무의식이 황지우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음을 입증한다. 그가 황지우에 대해 그의 시의 극렬성은 "위장의 극렬성이다"라고 말할 때, 그 진술은 크게 울린다. 그런 유의 치열성이 다른 글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 그의 약점이다. 그럴 때 그는 완전주의자가 아니라 타협주의자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가 자신은 독학자라는 것을 고백하는 서문은 아름답다. 그는 역시 시인이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64페이지에 실린 글이다. 장석주의 최근작 <마흔의 서재>를 읽고 불편했던 마음이 저것이었구나,싶다. 가려운 곳을 저리 시원하게 긁어 주시다니. 그나저나 왕십리에 눈 온다. 큰 대자로 뻗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