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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윤대녕의 <대설주의보>를 읽는 봄이다. 몇일 전 아프다는 핑계로 휴가를 내고 서점에 들렀다. 여느 때와 다르게 윤대녕의 소설이 꽂혀있는 언저리에서 소변이 마려운 것 처럼 초조해졌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책을 집었다. 어떤 이유로 저자의 서명이 들어간 책이 서가에 꽂혀있는지 모르겠지만. 2010, 봄, 윤대녕, 붉은 인영印影이 책장, 거기에 있었다. 툭툭 털면 철 지난 봄이 소리없이 쏟아질 것 같았다. 지나칠 수 없었다. 만나야 할 것들은 만나야 한다. 그리고 그 댓가로 오래 막막해야 한다. 그런데 정녕 우리가 언제, 우리가 정말, 결이 다른 공기를 알아차리고 그 어쩔 수 없음에 불안하고 주춤했던가. 대답할 수 없는 나는 얼마의 돈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대설주의보>를 읽는다.
일곱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녀가 수연으로 불리건 수경으로 불리건, 그가 윤수로 불리건 연수로 불리건, 어떤 추억을 지니고 있건 상관없이 동일한 인물처럼 느껴졌다. 상황도 다르고 인물도 다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뭐랄까 결핍이라면 결핍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고, 절름발이라면 절름발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고, 죄의식이라면 또 죄의식이라고 불릴 수 있을 그것들이 모두 다 한 곳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빠르지 않게 가끔 쉬어가면서 한 곳으로. 그 흐름에 올라타 말문이 막히게 하는 것들을 우연이라 해야 하는지, 흉터가 흉터를 알아보는 순간이라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녕 우리가 언제, 우리가 정말, 찰나이지만 말문이 막혔던 순간들을 인정하고 속임수일지도 모르는 무엇을 믿어보기는 했을까. 대답할 수 없는 나는 네 번째 단편으로 실린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의 한 대목을 그저 옮겨 적는다. 이어 카페에 딸려 있는 다락방에서 그녀와 나는 도둑질하듯 사랑을 나눴다.(p.133)
책의 처음을 여는 단편<보리>의 주인공 수경은 어리석기 때문이에요, 가난하기 때문이에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무섭기 때문에(p.25) 가끔이라도 매달려 울 수 있는 태산 같은 남자가 필요해요(p.25) 라고 말한다. 가끔이라도. 그래, 다른 건 모르겠는데, 가끔이라도,라는 말, 그말은 절박하다는 말을 에돌아가기도 한다. 성미정시인은 가끔 불어온다는 모자를 벗기는 바람,이라는 것이 있다고 그녀의 시에 썼는데, 그 바람은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라 모자를 벗고 싶은 날에 꼭 불어와야만 했던 바람이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럼에도 살다보니 덤으로 알아지는 것들이 있는데, 그렇게 매달려 운다고 무엇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가끔이 공활한 날들을 내처 걸어가게 할 수는 있다. 모두 다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정녕 우리가 언제, 우리가 정말, 서로에게 가끔이라도 매달려 울 수 있는 태산이 되어 주었던가. 대답할 수 없는 나는 <보리>의 한 대목을 그저 옮겨 적는다. 그게 누구든 과일과 칼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리라. (p.18)
어떤 기억들은 아득할 때가 있다. 그리 오래 된 기억도 아닌데 말이다. 바람을 맞아, 비에 젖어, 눈에 쌓여 그렇게 아득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둘러 희미해지는 것들을 부러 붙들 필요는 없다. 그런데 정녕 우리가 언제, 우리가 정말 하염없이 눈 내리던 그 밤들에 서로가 서로에게 기쁘고 아프게 상춘곡을 불러주기는 했었던가. 대답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저 이 모든 헛생각들을 아무 죄의식 없이 쓰고 있는 까닭은, 봄밤이고, 윤대녕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