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다음 생에 - 개정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선집 3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작가의 고충을 몰라서라기 보다, 실은 모르지만, 여튼 아무렇게나 내 마음대로 상상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작가는 그저 볕이 잘 드는 공원, 오래된 의자에 무심하게 앉아 술술 이야기를 떠올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에게는 그럴 수 밖에 없이 농축된 그러나 일관적이지 않은 어떤 감정들이 이미 존재하고, 그런 감정 덩어리를 만든 부조리한 사건들을 이미 경험했을 것이고, 그 사건들 속에서 자신의 나약함과 나약함에 상응하는 괴물을 만났을 것이다. 그다음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쓰고, 스스로 혹은 타인을 통해 절망하고, 그럼에도 잠시 의기양양해져서 거듭 쓰기를 반복하지 않았을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을 읽으며 나는 잠시 그런 공상에 젖었다. 물론 맥락은 없지만 그런 공상에는 작가의 작품을 영화로 한 <태양은 가득히_Plein Soleil,1960>가 있었고, 거의 동시에 알랭드롱의 눈빛과 푸른 지중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으로 돌아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어쩌면 다음생에_Not in this Life, Maybe the Next>는 열한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들을 읽다보면 그녀의 작품에는 사르트르나 까뮈 또는 포크너의 그림자들이 아지랭이처럼 어른거린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선함에 대한, 합리성에 대한 조롱들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독자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부조리한 그리고 앞으로도 쭉- 부조리할 가능성이 농후한 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일일까. 어이없고 분노하지만 견디고, 미화하고, 이해시키고, 희망하는 일로 일관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아니면 조롱하고, 대들고, 버티고, 때로는 펀치를 날리는 것이 최소한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받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아니다. 선택을 하라면 후자로 하겠다. 물론 내 경우에는 말이다.   

열한 편의 단편 중<단추>,<우연한 특종>,<애완동물 공동묘지>,<어쩌면 다음생에>,<나는 남들만큼 유능하지 못해>등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단추>라는 작품은 행복했던 부부에게 다운증후군인 아들이 태어나고, 그 후 아내는 온전히 아들에게 헌신적인 삶을 살지만 남편은 자신의 불합리한 운명에 분노하고 절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느 밤 주인공은 자신의 아들과 신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의 한 사내를 살해하고, 사내의 옷을 여미던 단추 하나를 전리품처럼 뜯어온다. 이후 주인공은 아들을 힐끔거리고 수근대는 사람들과 마주할 때 그 단추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불편한 현실을 견딘다. 이러한 주인공의 어처구니없는 행동, 살인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현실이라면 마땅히 댓가를 치뤄야 할 행동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분노와 절망에 대해서라면 나는 오히려 부인의 행동보다 남편의 행동이 훨씬 쉽게 이해되었다.     <애완동물 공동묘지>는 죽은 애완동물을 박제로 만들어 정원에 두는 아내, 그 으스스한 취향을 강요당하던 남편이 어느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취향이었던 사랑했던 옛 애인의 모습을 한 마네킹을 정원에 들여놓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 행동으로 부부는 파국을 맞지만 취향을 강제하는 아내에게 고스란히 자신의 취향을 돌려주는 발랄한(?) 복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의 얄밉지만 정당한 비아냥이 잘 들어난다.     <나는 남들만큼 유능하지 못해>는 현대인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강박적인 집착을 매우 건조하게 그러나 재치있게 풀어낸 단편이었다. 읽는 내내 나와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아 머쓱하고 서글펐다. 끊임없이 비교당하거나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그렇기에 덤으로 우울하고 불행해지는 삶을 한 남자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 잘 조명하고 있다. 시작은 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이웃남자의 행동들을 관찰한 주인공이 자신은 창틀의 페인트칠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참으로 서늘하다. 

책은 시작과 끝을 고민한 흔적이 없다. 그것은 작가가 정녕 고민없이 꾸역꾸역 밀어넣었던 무엇인가를 배설함으로써 혼자만의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이 아니다. 실존으로서의 인간의 모습들을 가감없이 드러냄으로써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 있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굉장한 용기이자 노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떤 교훈이나 감동을 의도하지 않는 자세, 인위적으로 지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해피앤드를 끌어내지 않는 진중함, 이것이 오히려 인간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요 통감이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시작과 끝을 고민한 흔적이 없는 작가의 글이 더 아프고 쓸쓸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니 2011-03-16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나겠습니다. 읽어야짐.

굿바이 2011-03-17 11:04   좋아요 0 | URL
치니님,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저도 어느 부분은 매우 합리적이려고 노력하지만 인간이라는 것이 그닥....
여튼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