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사진에 관한 단상이다. 말 그대로 짧은 생각, 더 나아가 아무것도 모르는 이의 헛소리이며 두서도 없다. 이렇게 낮은 자세로 임하는 이유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다.
왜냐? 내 오라비는 책도 내고 초대전도 치르는 사진 작가이며, 나의 형부는 패션쇼 사진으로 투잡을 뛰는 분이다. 그러니 괜한 소리 했다가는 식구들에 의해 암매장 당할 수도 있다. 식구들 성격이 까칠하다.
에피소드 하나.
그릇을 좀 살까해서 인사동과 삼청동을 들렀다. 어느 가게였나. 눈을 시원하게 하는 물건이 있어 들어가 살피던 중이었다. 디자이너로 보이는 여자 분의 얼굴이 시무룩하다. 뭔 일인가 보고 있으니 쇼윈도에 딱 들러붙은 부부인지 연인이지, 남녀 한 쌍이 희죽거리며 사진을 연신 찍고 있었다.
디자이너는 사진 촬영을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그래도 그들은 끊임없이 찰칵 거린다.
나는 진열된 상품들을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창작품인 듯 싶다. 디자인도 색상도 참신한 것들이었다. 나는 디자이너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하고, 타인의 심사를 이유없이 긁는 그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사진을 찍지 말라는 주인의 목소리가 안들리나 싶어 그들에게 디자이너의 말을 전했다.
나 : 저... 사진을 찍지 말라는데요.
부부인지 불륜인지 연인인지 알 수 없는 둘 : 네?
나 : 사진 촬영을 하지 말아 달래요.
부부인지 불륜인지 연인인지 점점 알 수 없는 둘 : 뭐 좀 찍으면 어때서요? 사람을 찍는것도 아니잖아요?
나 : ........
부부인지 불륜인지 연인인지 이제는 갑자기 미워지기 시작한 둘 : 이거 창작품 맞아? 그러면 또 어때?
나 : .........
에피소드 둘.
운이 좋아 커피가 아주 참말로 맛나는 다방을 알고 있다. 사람이 많은 게 흠이지만 그 정도는 참아 줄 정도로 다방의 커피는 쏴하고 상큼하며 무겁지만 혀 끝을 누르지는 않는다. 뭐 한마디로 좋은 콩을 잘 볶아 얼른 사용한다고 할까.
나는 언제나 마시던 걸 주문해 달무리지는 밤을 즐기고 있는데, 옆에 앉은 부부인지 연인인지 불륜인지 모를 커플이 연신 셔터를 누른다. 밤이라서 그런지 플래쉬도 번쩍번쩍. 눈이 부시다. 집중할 수가 없다. '그래, 기억하고 싶겠지. 행복한 순간이겠지.' 나는 참았다.
내가 다방에 앉아 커피를 주문 해 자리에 앉고 또 마시는 동안, 아니 다 마실 때까지 그들의 셔터는 쉬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야외 좌석이긴 하지만 별로 경관이 훌륭한 건 아닌데, 아! 선선한 나무가 있구나. 그래도.......
남자의 얼굴을 봤다. 성형외과를 뛰쳐나온 듯 그의 코는 불안해 보였다. 나는 속으로 욕했다. '험프리 보가트는 아무나 하냐?' 여자의 얼굴을 봤다. 부창부수! 나는 또 속으로 욕했다. '오드리는 아무나 되냐?' 아무리 돈 주고 고생해서 얻은 몰골이라지만 그렇게 꼭 찍어야 쓰나. 이리 웃고 저리 웃고, 고개를 들고 고개를 틀고, 광대들도 아니고 저게 뭔 짓인지. 카메라는 얼뜻 보아도 전문가용이다. 더 우습고 안쓰러운 것은, 그들은 서로에게 집중하지 않는다. 카메라에 집중할 뿐. 그럼 그들의 관계는. 누구냐 니들?
하루 동안 만난 사람들이다. 그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저 내 눈과 마음에 거슬릴 뿐이지.
내가 태어나기도 전, 어느 봄날, 엄마와 아빠가 동산에 앉아 찍은 사진을 나는 좋아한다.
곱게 단장을 한 엄마는 참 곱다. 잘 차려입은 아빠도 참 점잖다. 누가 찍은 사진일까? 또 그 사진을 얻기 위해, 그 날 하루 두 분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 작은 사진 속에 두 분은...이럴 때 어려운 말 한 마디 해줘야 하는데, 음........아우라! 그래 아우라가 있었다. 물론 벤야민은 사진에는 아우라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그 작은 사진 속에서 고고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진이 귀하던 시절의 사진들, 나는 그것들이 좋다. 천 번을 똑같은 웃음을 지어 잘 나온 한 장을 고르는 사진 말고, '하나! 둘! 셋!'에 운명을 거는 사진이 나는 좋다.
나는 디지털 카메라가 없다. 핸드폰에 내장된 카메라도 거의 쓰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내가 간 장소들, 내가 만난 사람들을 기억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사진을 찍기 위해 경치 좋은 장소를 찾지도 않는다.
사진이 잘 나오는 각도를 찾기 위해 삐뚜룸하게 자세를 취할 줄도 모른다.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타인을 보지 않는다. 내 눈으로 그들을 보는 것이 나는 즐겁다.
그렇다고 내가 사진을 싫어한다거나 혹은 사진 찍는 사람들을 싸잡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 정도면 공해다 싶을 정도로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넘쳐나기에 하는 소리일 뿐이다.
꽃 앞에서, 바다 앞에서, 연인 앞에서, 가족 앞에서, 자신 앞에서, 그 무엇 앞에서
카메라를 잠시 꺼두자. 이것이 21세기 디지털족이 지켜야 할 새로운 예절이 아닐까 싶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