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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 여자, 당신이 기다려 온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1
노엘라 (Noella)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개인이 자신의 즐거움에 몰입하는 것을 두고 옳다, 그르다, 라는 평을 하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특히 예술의 영역이라면 그런 왈가왈부가 무의미해 보인다. 예술가에게 즐거움은 자신의 재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원천일테니 말이다. 물론, 여기서 즐거움이란, 다시 말해 쾌락이란, 고통까지도 포함한 것이다. 그럼, 글은 또 어떠한가? 어떤 소재를 선택하는 일도, 그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도 글쓰는 이에게 즐거운, 그러니까 글쓰는 이도 즐겨야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독자의 입맛을 고려해 글쓰는 이의 쾌락을 거세하는 것은 무지한 처사일 수 있다. 그저 서로 잘 통하는 이들이 만나면 그만일 일이다.   

서로 잘 통하는 작가와 독자가 있다. 아마 즐거움을 느끼는 대목이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 글을 만나면 참 반갑고 설렌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좀 아쉽다. 그렇다고 나를 감동시키지 못한 글이라 매도할 일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감동적인 책으로 읽힐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글쓴이의 즐거움을 오롯이 나눌 수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물론 소개된 음악이나 그림들은 나도 아끼는 것들이라 저자의 선택에 고마움을 느꼈지만, 책의 제목으로 가늠한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여기에 소개된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려면] 작가의 감성적인 접근 방식만으로는 좀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물론, 글쓴이의 감성을 충분히 녹여낸 글쓰기 방식은, 아마 저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글쓰기 형태였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개인적인 감상평이 정보를 전달하는 부분에 비해 너무 많다 싶다. 이런 구조를 비난할 생각은 아니지만, 그랬으면 차라리 다른 형태의 책을 집필하거나, 다른 매체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여전히 위대하다고 칭송되는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위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식상한 주제들을 그 시대에는 혁명이라 부를 만한 형식과 상상력으로 풀어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모든 작품이 다 위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궁색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싶다. 대중에게 어려울 수도 있고, 낯설 수도 있는 예술을, 좀 더 쉽게 설명하고 공감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라면 좀 더 혁명적인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누가 봐도 좋은 경력을 소유한 작가에게 혁명적 글쓰기를 말하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고,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나의 무지를 탓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저 누군가의 공개된 일기를, 그것도 너무 은밀한 일기장을 읽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나는 관음증 환자가 아니다. 그러니, 타인의 일기를 보는 일에 심드렁할 수 밖에 없다. 일기라면 내 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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