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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선택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7
윌리엄 스타이런 지음, 한정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2월
평점 :
" Sed tantum dic verbo et sanabitur anima mea "
여주인공 소피의 독백은 참혹했다. 폴란드인이었던 그녀가,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광기에 휩쓸려 아우슈비츠로 흘러들어간 경위와 그곳에서 겪은 일들은 이미 세상에 드러난 일들이지만, 드러난 것들의 이면은 여전히 부패하고 있는 오물처럼 조금만 들쑤셔도 참기 힘들 만큼 역겨운 것들이었다. 그 역겨움은 소피의 선택이 부도덕했다고 느꼈기에 올라온 욕지기가 결코 아니다. 인간의 나약함과 욕망. 나약함과 욕망을 따라다니는 사악함이 가져다 주는 구토다.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하지만 인정하기 싫기에, 동감하지만 외면하고 싶기에 치받히는 메스꺼움.
결국 브루클린에도, 소피를 위한 마지막 비상구는 없었다. 그녀가 자리잡은 바다 건너 브루클린의 분홍방도 아우슈비츠의 기억들을 치유하지 못했고, 그녀가 기적처럼 만난 네이선은 미치광이자 약물중독자였기 때문에, 심지어 소피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녀를 간신히 도망친 기억 속으로 개처럼 다시 끌고 들어간다. 미국이라는 땅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은 유대인인 네이선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소피를 향해, 네가 어떻게 생지옥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는지, "운트 디...에스에스 매트헨....슈프라흐트...더티 위딘슈바인!(그리고...친위대 계집년....말해....더러운 유대인 돼지!)" 라고 소리치며,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경위에 대해 끊임없이 추궁하고, 욕하고, 구타를 가한다. 소피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이자인 동시에 나치의 정책에 동조했고, 반유대자주의자임을 증명하려 애썼다는 의미에서 가해자이기도 하기에, 더군다나 네이선을 사랑한다고 믿었기에, 네이선의 오줌 세례까지도 참아내며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는 때로는 거짓을 때로는 진실을 고백한다. 과연 네이선은 소피의 살아남음을, 살아남고자 했던 욕망을, 살기위해 포기해야 했던 윤리나 정의를, 발가벗겨진 자의 나약함을 향해 발길질을 할 수 있는 무슨 권리같은 것이 주어진 사람이었을까. 인간에게 프로그래밍 된 생존의 욕구에 침 뱉을 수 있는 자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모를 일이다.
1,000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의외로 쉽게 읽힌다. 이유를 들자면 첫째는 주인공들의 설정에 있다. 소피는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학살은 면했지만, 죽음과 맞바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네이선은 총명하고 매력적이지만 미치광이며, 소피를 사랑하면서도 소피를 지독히 학대하는 유대인이다. 스팅고는 노예제도를 부당하게 여기지만 할아버지가 노예를 판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 지망생이다. 작가는 이렇듯 등장 인물들의 상황을 통해 이상으로서의 삶과 실존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비웃고(?) 있다. 둘째는 나치의 인종 청소와 관련한 역사적 지식과 다양한 문학 작품들의 소개가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경우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지만, 다른 독자들의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다. 셋째는 1940~50년대 미국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넷째는 인간의 욕망을 쓸데없는 기준으로 제단하지도 평가하지도 않는 작가의 자세에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 대목이 이 책을, 심지어 병원에 누워서, 그것도 뇌수막염을 앓으면서도 단숨에 읽게 한 동력이었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은 가혹했지만 다행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불행이 돌연히 관대해져, 불행이 어둠을 인정해버리거나, 상념으로만 존재하는 세상의 찬란한 빛을 은근슬쩍 끼워주려 하면 안된다. 고통의 근원은 내 안에 있고, 그로 인해 힘을 얻는 불행도 내 안에 있다. 은폐되 있는 그것들을 형이상학적인 무엇으로 환원하려는 것 보다, 고통과 불행을 통해 나를 그리고 삶을 깨닫는 것이 살아있는 것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게 되고, 이런 대답을 들을 수 밖에 없다.
질문 : "아우슈비츠에서, 신은 어디 있었는가?"
대답 : "인간은 어디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