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탐>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책탐 - 넘쳐도 되는 욕심
김경집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의 들머리에서 작가는 "분석과 비판보다는 함께 느끼고 나눌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고 적고 있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현학적인 학자들이 넘치는 세태에서 이는 갸륵하고 또 갸륵한 마음이고 실천이다. 하여 그의 표현대로, 부지런히 서점을 돌아다니며 서가에 꽂힌 보석들을 찾아내는 '등뼈 찾기 순례'에 기꺼이 동참하리라는 마음으로 나는 책과 마주앉았다.   

책은 크게 네 개의 꼭지, 희망, 정의, 정체성, 창의적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시 주제에 부합하는 책들로 소분되어 있다. 이 주제만을 보더라도 작가의 성향이나 품성을 대략 읽을 수 있다. 또한, 작가는'등뼈 찾기 순례'를 통해 이 시대의 희망과 정의, 우리의 정체성 그리고 미래를 위한 창의적 생각들을 공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의 노력이 결실맺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작가가 소개한 책들 중 어떤 책들은 이미 읽었고, 어떤 책들은 애써 외면했었고, 어떤 책들은 초면이었다. 소개된 작품의 호불호를 떠나,작가가 아니었다면 영영 몰랐을 책들을 소개받는 일은 큰 즐거움이다. 또한 감사할 일이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평가에 무조건 동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그가 소개한 책들 중 두서너 권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그리고 그것을 소개하는 작가의 생각에는 동감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희망'이라는 주제로 묶인 책들이 그렇고, '정의'라는 주제로 분류된 책들이 그랬다. 다행스럽게도 작가가 살아생전에 내 글을 읽을 일이 없을것임으로 나는 지금 한없이 용감할 수 있다.  

작가는 '노먼 베쑨'과 '체 게바라'를 소개하며 이념이 아닌 실천을 말하고 싶어했다.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통해 인간에게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우고, '조지프 E.스티글리츠'의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 '카를 알브레히트 이멜'의[세계화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에서는 정의가 왜 필요한지 역설하고 싶어했다. '마리아 블루멘크루'의 [히말라야를 넘는 아이들]을 보며 아직도 제국주의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려고 했고,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워든]이나 '스콧니어링'의 자서전을 들려주며 우리가 어찌 살아야 하는지를 같이 고민하고자 했다. 나는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도 동감한다. 그런데,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작가가 안타까운 것일까. 학자로서 스승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작가가 왜 이리 순진하게 느껴지고 답답하기조차 한것일까.  

인간만이 희망,이라고 말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 이 말을 할 때, 이 말이 그의 마지막 말인지, 그가 처음 꺼내는 말인지, 그가 두려워서 하는 말인지 따져본다. 세상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으로 치열하게 싸우고, 사랑하고, 울었고, 끌어안았던 사람의 마지막 말이라면 나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운이 없게도 그런 이들을 쉽게 볼 수 없었다. 그저 세상을 향해 목울대를 울리거나, 정직한 근본주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인간만이 희망이다,를 들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 답답함의 이유를 알겠다. 작가가 한없이 착하고 정직한 근본주의자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이를 어째.  

그렇지만 나는 작가도, 이 책도, 그리고 이 책에 소개된 어떤 책에도 딴지를 걸 마음이 없다. 그리고 양서를 찾아 기꺼이 세상에 알려준 작가의 노력에도 감사한다. 출판계에 얼마나 많은 지충이 서식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적어도 여기 소개된 책들은 나무의 죽음을 욕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부디 이 좋은 책들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뜻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책 속에 길이 있지는 않지만, 책 한권이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아직은 믿는 그러나 정작 식탐밖에 남지 않은 나는, 여기서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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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0-01-08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간만이 희망,이라고 말하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 이 말을 할 때, 이 말이 그의 마지막 말인지, 그가 처음 꺼내는 말인지, 그가 두려워서 하는 말인지 따져본다."
햐. 대단하신 굿바이님.
제일 후자인 나를 간파하신. 하하

굿바이 2010-01-08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동우님은 전자가 아닐까요? 제 깜냥으로는 전자일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신부님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무진장 괴롭혔던 적이 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여튼 중간 과정은 생략하고 그때, 신부님이 "그래도 인간이 희망이란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그 문장을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멀쩡한 사람되기는 틀린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