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천둥의 시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피와 천둥의 시대 -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
햄프턴 시드 지음, 홍한별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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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을 떠나 매사추세스 플리머스에 청교도라 불리는 일단의 백인들이 상륙한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전혀 예측할 수도 없었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이유로 자신들이 일가를 이루었던 땅에서 내몰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미국 역사의 시작이자,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수난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이 팽창주의라고 불리는 정치적 판단의 도덕성을 스스로 검열하기도 전에, 물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정치적 판단 앞에 도덕성이라는 것이 개입될 자리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1845년 오설리반이라는 뉴욕의 젊은 편집자는 "뉴욕 모닝 뉴스"에 한 편의 논설을 실었다. 오설리번의 논설은 "매년 증가하는 수백만의 인구가 자유롭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욱 뻗어나가 신이 내려주신 대륙 전체를 차지해야" 한다였고, 이것을 미국의 "자명한 운명Manifast Destiny"이라고 규정지었다. 이 오만불손한 한 편의 논설은 미국이 멕시코령 텍사스를 병합하고, 캘리포니아를 점령하고, 끝없이 서진하는 중에 마주칠 수 밖에 없었던 원주민들을 신의 이름으로 완벽히 살육하는데 핵심적인 명분을 제공해 주었다.  

이 책 [피와 천둥의 시대]는 이렇듯 19세기, 미국의 팽창주의가 노골적으로 야욕을 드러내며 야심차게 진행한, 미국의 서부 정복과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멸족사를, 특히 "나바호"라 불렸던 원주민들과 "크리스토퍼 카슨"의 행보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 햄튼 사이즈는 크리스토퍼 카슨이라는, 적어도 미국인들에게는 영웅인 서부 사나이의 행적과 나바호 원주민들의 멸망사를 방대한 사료를 근거로 꼼꼼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기술하고 있다. 또한, 흡족한 수준은 아니라 할지라도 작가가 객관성을 잃지 않고, 원주민들의 항전과 멸망, 정복자들의 패배와 승리를 보여주려 노력한 흔적도 적지 않다. 어쩌면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정서를 감추고, 객관적으로 사실들을 나열하려는 자세가, 오히려 더 큰 조롱이었는지는 작가만이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남북전쟁이 끝나가고, 다시 미국인들과 인디언들의 영토 분쟁이 치열했던 시기, 새로운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을 멸종시키는 대신 백인 사회로부터 물리적으로 격리시키자는 것이었다. 이 개념은 인디언 전체가 절멸할 것을 우려한 인도주의적인 측면이 있었다. 그렇지만, 포장과는 달리 철저히 인종주의가 깔려 있었고, 사회경제적 비용을 고려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백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겁탈하기 이전부터 이미 원주민들은 이 땅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고, 스스로를 부양했으며, 단일신이 아닌 수많은 신들과 교감하면서 그들의 존엄을 지켜왔다. 그런 원주민들을 경계밖으로 몰아내고, 문화적 자살을 감행하게끔 만드는 것이 어찌 인도주의적이며, 더 나아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정녕 할 수만 있다면 이런 정신나간 나팔수들에게 지옥의 가장 뜨거운 불구덩이를 경험하게 하리니.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영웅이었던 크리스토퍼 카슨은 "일반명령 15호"라는 나바호 원주민들을 향한 마지막 작전을 감행한다. 이 명령은 나바호 원주민들을 집단 거주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그들을 무력화하고 항복하게 만드는 것이 골자다. 학살이라기보다는 항복이 그 목적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일궈놓은 삶의 터전을 철저히 파괴하고, 농작물에 불을 지르고, 가축을 죽여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극단의 공포와 굶주림으로 몰아넣는 행위가 학살과 무엇이 다른지 나는 알 수 없다. 물론, 서부개척 시대에 등장했던 수많은, 기독교라는 정신적 이념과 금이라는 물질적 신에 붙들린 백인들이 저질렀던 학살과 강탈에 비하면, 카슨이 실행한 "일반명령 15호"는 얼마쯤 피가 덜 흐르고, 살점이 덜 튀기는 작전이었다고 자위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전 존재와 원주민들이 가진 모든 것을 역사속에서 영원히 모욕하는 행위가 인도주의적인 처사였다고 항변한다면, 나는 더 이상 인간에 대한 희망을 갖을 이유가 없다.  

미국의 역사는 말한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디언들과의 전쟁은 종식되었으며, 그들은 안전한 집단 거주지역으로 옮겨져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적어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부분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백인 문화에 포위되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상실했다. 더 이상 그들의 푸른 산을 이야기할 수 없고, 초원 위의 버팔로를 그릴 수 없으며, 그들의 신을 존경할 수 없고, 술과 마약으로부터 자신들의 아이들을 지킬 수 없다. 미국은 총, 위스키, 성병, 돈, 기독교를 앞세워 게걸스레 서부의 모든 것들을 먹어치워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버젓이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들먹이고, 그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전 지구의 방위대 역활을 하며 배를 불리고 있다.  

시대의 나팔수 오설리번이 말한 "자명한 운명"이라는 것이 역사에 존재한다면, 진실로 바라건데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이 겪었던 "자명한 운명"이,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희생당했던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소수 민족들의 "자명한 운명이, 역사의 수레 바퀴 아래서 이제는 방향을 틀어 인종주의와 팽창주의로 무장한 모든 민족들에게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게 있어 피와 천둥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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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0-01-0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평화시대'라는 명제 앞에 숨어 있는 '피와 천둥의 시대'.
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나.
제국주의적 속성인가요?
흐음, 지금도 지구촌 어디선가에서는 '피와 천둥의 시대'를 지나고 있겠지요.

참, 굿바이님.
책읽는부족 이달의 숙제는 해를 넘기셨네요. 하하

굿바이님의 새해, 모쪼록 밝게. 하하


굿바이 2010-01-05 18:1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여전히 '피와 천둥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죠.
안다는 것은 고통이다,라고 누군가 말했었는데, 그 말이 요즘 참 절절합니다.

게으름과 밀린 일들을 핑계로 기한을 놓쳤습니다.
죽여주십시오ㅜ.ㅜ

굿바이 2010-01-05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아버지와 서부영화를 함께 보면서, 백인 총잡이들이 왠지 정의의 용사같아서
막 응원하고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영화도 한심하고 저도 한심하고 그렇습니다.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것도 바뀔 수 있다고 믿어왔던 시간들이 참 헛헛합니다.
나무의자님의 말씀처럼 이제는 분노조차 할 수 없어 저는 자해중입니다.

후니마미 2010-01-08 20:1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이 나무의자가 저랑 같은 사람인 거 아시죠? ㅎㅎ
오래전에 저도 알라딘에 흔적이 남겼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