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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매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5월
평점 :
품절
미리 밝히는 바, 나는 고종석교의 신도다.
무슨 이유로 이런 음험한 소리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 맘,이라고 말하리라.
여하간 그는, 그의 소설, [제망매] 일부분을 흉내 내자면, 일천구백구십오년 이후, 나에게 세상사를 조근조근, 또박또박, 치우침 없이, 일러준 스승이었고, 부스럼 일고 생채기 난 마음을 다독여 주는 은혜로운 분이었다. 그러니 물고기 몇 마리와 빵 몇 조각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다소 판타지 영화같은 사건은 보여주시지 않았으나, 그의 메세지는, 그의 글을 읽고 그를 흉내내며 폼을 잡았던 나에게, 별다른 매력은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던 나에게, 선배들과 동기들의 관심을 쏠리게 하는 밑천이 되었으니, 이것이 인간의 의한 인간의 구원아니겠는가. 모든 것이 그의 덕이며, 그의 은총은 그렇게 깊었다.
따라서 나는 그의 글을 거의 빼놓지 않고 다 읽었다. 책이건 신문이건 매체를 가리지 않고, 그의 글에 담긴 뜻을 알아 듣던 못 알아 듣던 그건 중요한게 아닌지라, 그저 신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묵묵히 수행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일천구백구십칠년에 구입한 그의 소설 [제망매]를 무려 십년이나 묵혔다 비로소 꺼내 들었다.
나는 왜, 어찌하여,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던 것일까. 발가락을 까닥거리며 곰곰히 숙고한 결과, 나는 그의 글이 소설과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미덥지 않은 편견 비슷한 것이 있었고, 말 그대로 편견이었던 생각은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나는 혹시라도 그에게 실망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발상이었다. 그럼 이제 새삼 그 두려움이 사라진 것일까. 아니다. 첫 장을 젖힐 때 까지도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다만 배짱이 좀 붙었을 뿐이다. '네 생각대로 해, 그게 답이야' 정도!
[제망매]는 내 불안을 냅다 걷어냈다고 하기에는 부족했지만, 그렇다고 불안해질 이유도 없었다. 특히, 단편 [사십세]는 내게 특별하기까지 했다. 그 속내를 밝힐 수는 없지만, 그가 나를 들여다 볼 수 있으면 뭔 말인지 알 것이다. 아마 그는 뭔 말인지 알 것이다.
몸이 튼튼해지려면 음식을 가려 먹지 말아야 한다. 옳은 말이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라고 하려니 좀 거슬리는 부분이 있지만 이번 경우라면 옳은 말이다.
소설 [재망매]는 인문학적 소양과 재기 넘치는 문장들이 빛을 발하는, 세상을 향한 그의 안쓰러운 애정이 마구 드러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에밀 시오랑이 몽실몽실 떠오르는, 찾기 쉽지 않은 소설이다. 그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소설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따라서 나는, 일천구백구십오년 이후로 꾸준히 이어온 신앙을 앞으로도 굳게 지킬 것이다. 당분간, 쫌 오래, 나는 고종석교를 배교하지 않을 듯 싶다. 경험한 바에 의하면 배교는 아프고 또 힘들다. 사족이지만 나는 그것을 김훈에게서 배웠다.
(아끼는 후배가 고종석에게 반했다고 한다. 일천구백구십오년 생각이 났다. 아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