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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쪽으로 가라 ㅣ 김소진 문학전집 5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평점 :
호불호가 분명해지는 일이 내심 거림칙하였으나 그 수위를 조절할 사이도 없이 그렇게 정말 나는 호불호가 명확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유연한 외피를 갖고 있어야만 '삶'이던 '앎'이던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 어찌 이렇게 딱딱해져 버렸을까. 위기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위기에 몰린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는 생경한 구호만큼 극적으로 선을 그었던 몇 몇의 작가들을 다시 읽기로 했고 그 처음을'김소진'과 함께 하기로 했다. 그가 나의 첫 손님이 된 이유는 무담시 쳐놓은 멍청한 경계에 그가 가장 가깝게 걸쳐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의 소설[바람 부는 쪽으로 가라]는 짧은 소설들의 모음집이다. 인물과 배경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작가의 일부를 짐작할 수 있건데 그는 [좋은 사람]이었을 것 같다. 좋은 사람!이라고 내가 그를 평가하는 이유는 왠지 그는 '앎'과 '삶'이 크게 어긋나지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 살고 그리 글 쓰는 일이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수없이 지켜 봤기에 작가의 의지와 노력이 고왔다.
사는 일이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나는 일이자 고통을 견디는 일이 되어 버린, 그래서 버티기를 잘 하기 위해 세속적인 위로들과 쉽게 결탁해 버린 오늘, 작가의 위로는 세속적인 위로들에 맞서기에는 힘이 없어 보이고, 세속적인 위로의 '대안'이 될 수도 없을 것 같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작동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아마 '좋은 사람'이 옮기고 증폭시킬 수 있는 '두근두근 에너지'가 아닐까 싶다.
바람 부는 쪽이 어디인지 알아 버린 그래서 미련하게 덧문을 닫은 내게 잠시나마 어렴풋이 덧문이 없던 시절을 사유하게 만든 작가의 책 한 권. 고마운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