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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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10페이지 4번째 줄. [당신은 그렇소?]라는 물음에, 그 물음이 무엇이었는지와 무관하게, 나는 [그렇소]라고 답했다. 그렇다고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라고 말하는 주인공을 흉내낸 것은 아니다. 어느덧 나는 불편해진 모든 것들에 대해 단답형으로 그것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한껏 풍기며 대꾸해 주시는 시니컬한 귀차니즘 환자가 된 셈이다. 그러니 누가 뭘 물어본들 적어도 대답 만큼은 주인공 스트릭랜드 만큼 아무렇지도 않게 툭~뱉어놓을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좀 더 서사적으로 표현하자면 살기 위해 나의 달을 수장시킨 셈이다. 

그러니 달을 잃은 나는, 작가가 보여주려 한 고갱의 삶 혹은 유사 고갱의 모습에 이제는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분명 20년 전쯤에는 그 뜨거움에 덩달아 뜨거워졌고 흡사 스트로브와 같은 자세로 스트릭랜드의 삶에 자발적 헌신 내지는 뜨거운 찬사를 보냈고 더 나아가 특정한 행위들을 비난하기 보다 무엇이 그를 말 달리게 하는지 그 내면을 들여다 보고자 했었는데 그 꺼지지 않는 무모한 열정과 인내 그리고 호기심은 다 어디로 가고 이제는 그저 나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것들에 [안녕~]을 고하니 참으로 세월이 약인지 독인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의 주인공이 천재 화가였는지 아니면 그저 난해하거나 괴이한 화가였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철저하게 이기적일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고맙다. 물론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그 모든 예술적 위업이 달성되었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누가 누구에게 빚지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스트릭랜드의 천진한 이기심을 탓하는 것은 [뭐 묻은 뭐가 뭐 묻은 뭐에게]흘리는 눈흘김이 아니겠는가. 

나의 달은 어느 강 속에 잠겼지만 그 빛을 다 잃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순도 높은 예술적 욕망에 사로잡힌 그들 앞에서 여전히 조금은 서성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단언컨데 그들을 사랑할 수는 없다. 첫째는 귀찮고 둘째는 다시 강 속에 빠진 달을 잡으려 허둥대다 어느 오라비처럼 유명을 달리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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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니마미 2009-07-30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굿바이님 드디어 마감날 하루 앞두고 원고 접수 해주셨습니다
짝짝짝...
바쁜 일 겹칠 때 이런 거 겹치면 애초 가졌던 기대와 즐거움도 사라지게 마련이거늘
그래도 올려주셨네요. 책읽는 부족들, 글이면 글, 매너면 매너 부족함을 찾을 수가 없어요

대개의 공통된 의견이 스트릭랜드의 달이 예전과 달리 느껴진다는 거였는데..
저는 어느 분 독후감의 댓글에도 썼지만
오히려 스트릭랜드처럼 살 수 없었고
그렇게 모든 걸 버릴 만큼 내부에서 올라오는 정열이 없는 자신을 들여다 보니까
이제야말로 스트릭랜드에게 눈흘기는 게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을 돌아봐도 볼 거 없고
앞으로 기대할 것도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어, 어쩌면 나도 이렇게 살고 싶었던 때가 있었지
하는 생각이 철없던 때의 낭만으로 여겨지는 건 아닐까요?
살아보니 알겠거든요
이 몸의 달은 그리 높이 뜨지도 밝지도 않고
늘 구름낀 하늘 저 편에서 빛 한 번 제대로 못 내는 것 같아서요.

부족들 중 맨 처음의 독후감도 박수 받지만
마지막 독후감이기에 다시 한 번 박수 크게 쳐 드립니다.

박슴도치 2009-07-30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굿바이님 안녕하세요. 이제서야 안부를 남기네요.
실은 모임 참여하고 RSS 리더에 부족민들 블로그 저장하면서 두세번씩은 들렸는데
이제서야 안부를 남기니 궁색한 손끝이 부끄럽습니다.

세상의 맛을 조금 본 사람들에게는 스트릭랜드가 곱게 보이지 않는가봅니다.
저는 광기로 치부해버린 그 예술혼(?)이 십년 이십년이 흘른 뒤에는 어떻게 재평가 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제 여름다운 날씨가 찾아오니 변덕이 다시 발동하여 선선했던 어제가 그립습니다.
늦은 시간이지만 잠시 쉬며 더운 날씨에 지친 심신에게 휴식이라는 포상은 어떠신지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굿바이 2009-07-31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니마미님

꼴찌하고 박수 받기는 초등학교 달리기 시합 이후로 처음입니다^^
그래도 좋다고 웃고 있습니다.

책을 덮고도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남는 것은 저 역시 저를 위해서만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솔직하지도 못하니 불편하고 또 불편합니다.

굿바이 2009-07-3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슴도치님

그렇죠. 곱게 보이지는 않죠. 그런데도 여전히 뭔가 부럽기는 하단 말입니다.
여전히 쓸데없고 근거없는 피해의식들이 제게 남아 있나 봅니다.

워낙 추운거 싫어 하는 사람인데도 오늘은 좀 덥다 싶습니다.
저녁에 맥주나 마셔볼까 합니다^^

민정 2009-07-31 23:0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언니 나두 맥주 한잔~

웽스북스 2009-08-01 10:20   좋아요 0 | URL
어제 그 행운은 제가 잡았지롱요 ㅋㅋ

민정 2009-07-3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에게는 있었는지 있었을는지도 모르는 미미한 달의 존재이므로 일단 모른척 해두고,
언니가 묻어버린, 아니면 강에 빠트린 그 달이 어쩐지 새삼스럽게 아쉬워져서 입맛만 쩝쩝.

그렇지만 또다시 생각하면 지상세계에 언니가 있어서 만나게 된 것이니
그또한 나에게는 좋은 일... ㅎㅎㅎ

나는 이래도 저래도 좋으니 그냥 맥주나 한 잔 얻어먹고 즐기렵니다~

심샛별 2009-08-01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올라오는 독후감을 읽을 때마다 책을 새로 꺼내서 읽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요?
굿바이님의 달을 보고 갑니다.

굿바이 2009-08-02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정! 한국에 오면 맥주는 "짝"으로 사줄 수 있으니 걱정마시오^^
물론 그때까지 내가 강변에 살면 안주로 한강의 야경도 제공할 수 있소.
그러니 오시오^^
참으로 보고싶소~


굿바이 2009-08-02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샛별님!
이번 민음사 책 읽기가 저도 신납니다. 아마 다음 책도 예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재미들이 쏠쏠할 것 같고, 다른 분들의 리뷰도 흥미로우리라 짐작됩니다.


동우 2009-08-05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굿바이님의 저 진솔한 고백.
옛'나'의 달에 대한 달뜸의 헛됨에 고개를 주억거리시면서 또한 '달'에의 열정이 아쉬운..
하하, 굿바이님.
그러합니다. 이 시절 뉘라 달 잡으려 강에 뛰어 들겠어요.
그러나 굿바이님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 선명하고 아름답습니다.

굿바이 2009-08-10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왠지 동우님은 강에 뛰어 들었던 분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서울 하늘 죽입니다!

후니마미 2009-09-27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9월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명절 리듬을 타야 하니
장에 가서 이것 저것 먹을 거리도 사야 하고
선물도 사야 하는 저희로서는 맘부터 서둘러지는 시간이 되었네요

그런데도 추장인고로, 9월 마감에 앞서 독후감 올리시라
피켓 들고 나타났습니다
굿바이님께서는 이번 9월에 어떠셨는지?
책 읽을 시간이 하나도 없어서 넙치는 읽다가 말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이번 달의 주제는 넙치를 잡아먹자 쪽이니까
그리고 그 잡아 먹는 방법이 뼈까지 오드득 잘 씹어서 먹자가 아니고
요걸 회를 쳐봐 구워봐 는 칼 든 자의 오만과
뭐 이렇게 생긴 것을 고기라고 이름을 달았냐 라는 등
독자로서의 자만심과 독자로서의 권력을 마음껏 부려보는 쪽에서
잡아 먹자 이니까
맛없어서 못 먹었다 이런 단 한 줄의 독후감도 촌철살인의 문장이 되는 바

** 알아서 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