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 기행 1 -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편 유럽 도시 기행 1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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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의 유시민의 약진이 반갑다. 이제 여행기까지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독서, 여행 등 다양한 글감을 주제로 자기만의 글을 뽑아내는 유시민의 역동을 환영한다. 비록 나와 정치적·사상적 입장은 다르지만 글쟁이로서 수준 있는 역량을 갖춘 그를 나는 결코 멀리하지 않는다. 그의 글은 대중적이되 가볍지 않고 잡학적이되 산만하지 않다. 지식에 품격이 있고 감칠맛도 난다. 무엇보다 쉽고 재미있게 쓰는 건 그의 가장 큰 무기다. 좀 안다고 거들먹거리지도 않는다. 내가 그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중단한다고 선언한 이래 유시민은 '작가' 혹은 '지식인'으로 불려왔다. 최근 노무현 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세간으로부터 정치 중단의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그는 정치보다 집필과 강연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내가 아는 한 우리 시대 지식인 중 젊은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그의 책을 읽고 그의 강연을 들으며 그의 유튜브 방송을 시청한다는 게 이를 방증한다. 지식의 외연이 넓고 거대 담론을 대중적 언어로 뽑아내는 내공이 탁월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몰리고 관심을 가진다. 정치 재개 가능성만으로 지식인 유시민의 존재감이 재단돼서는 곤란하다.

 

유시민이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 여행을 주제로 한 에세이다. 신간 『유럽 도시 기행 1』은 작가 유시민의 유럽 여행기다. 각기 다른 시기에 유럽 흥망성쇠의 공간적 배경이 되었던 아네테, 로마, 이스탄불, 파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네 도시는 워낙 유명해서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의 세계적, 역사적 아이콘들이다. 작가는 특유의 박식한 지식과 정제된 주관, 실제적 경험을 보태 흥미로운 도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 에세이로 읽히지 않는다. 관광 안내서는 더욱 아니며 단순한 인문학 기행에 머물지도 않는다.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객관)과 작가 스스로 체험하며 느낀 감상(주관)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도시의 모든 것은 '텍스트(text)'일 뿐, 도시의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해 '콘텍스트(context)'를 파악해야 한다"라는 작가의 말은 이 책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건축과 여행, 역사와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작가의 이 책이 가볍지 않고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콘텍스트주의', 즉 외연과 현상에 앞서 맥락과 본질을 주목하는 작가 고유의 진지한 감상 덕분이다.

 

작가가 선택한 유럽의 네 도시는 역사적으로 유럽의 각 시대를 전면에서 대표한 곳들이다. 헬레니즘이라는 서구 문명의 한 축을 담당했던 그리스의 아테네를 가장 우선으로 꼽았다. 오래전 모든 길은 이곳으로 통한다 했지만 '이탈리아 최악의 도시'로 소개한 로마는 그 두 번째다. 1453년 동로마를 멸망시킨 오스만튀르크의 영광이 담긴, 하지만 '다양성을 잃어버린 국제도시' 이스탄불이 그다음이다. '인류 문명의 최전선'으로 작가의 긍정이 유독 돋보이는 파리가 마지막이다. 작가는 특유의 달필로 각 도시의 역사성과 그것을 읽어내는 작가적 주관을 잘 풀어낸다.

 

이 책이 힘이 있는 건 네 도시에 대한 객관적 서술과 실제 여행 중 추출한 작가의 현장성이 적절한 비율로 배합되었다는 점이다. 마라톤과 살라미스로 대변되는 고대 아테네의 황금기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아크로폴리스 야경을 즐기는 만찬을 소개한다. 로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 카이사르의 삶을 얘기하면서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얹는다. 이스탄불 곳곳에 있는 궁전과 박물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서술하면서 '터키 커피'의 정수가 어떤 것인지를 놓치지 않는다. 파리에서는 나폴레옹의 영웅담을 논하는 동시에 루브르에 대해 '들어가도 들어가지 않아도 후회할 박물관'이라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이러한 객관과 주관의 황금률이 독자로 하여금 책 읽는 맛을 배가시킨다.

 

특히 파리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인상적이다. 작가는 "지구촌의 문화수도를 정한다면 망설임 없이 파리를 선택하겠다"라 하고, "호모 사피엔스가 도달한 문명의 최고봉을 보여주는 도시"라 상찬하며 프랑스 파리에 대한 애착을 요란스럽게 뿜어낸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나는 작가의 견해에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도시 자체가 이쁘고 고풍스러워서 품격 있는 도시가 되는 건 아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시민의 수준이 도시의 급을 결정한다. 나는 파리 시민들, 엄밀히 말해 프랑스 국민의 우수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파리는 위대한 도시다. 하지만 그 위대함의 이면에 추악함과 경박성, 그리고 오욕의 디테일이 묻어 있다는 걸 부인하기 힘들다. 자국의 월드컵 우승 축하잔치에서 거리 상점에 불을 지르고 약탈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숭고한 문화재(에투알 개선문)를 훼손시키는 등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광기 어린 시민이 과연 세계 문화수도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는 토론이 필요한 주제다.

 

서평을 정리하자.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 유시민의 약진이 반갑고 즐겁다. 유시민은 정치라는 외연을 벗었을 때 더 빛나는 지식인이다. 사람마다 자기에 맞는 옷이 있고 어울리지 않는 옷이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유시민에게는 정치보다는 글과 강의가 더 잘 어울린다. 여행이라는 테마까지 외연을 넓히며 작가적 활동을 이어나가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반대편의 칭찬은 더욱 힘이 있다. 유시민의 신간 『유럽 도시 기행 1』은 이러한 내 칭찬의 최신판이다. 돈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이어서 출간될 2권은 빈, 프라하, 부다페스트, 드레스덴을 다룬다고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정치색을 버리고 캐주얼하게 읽는다면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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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바캉스 에디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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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쓴 에세이는 다르다. 결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다. 수필가가 소설가보다 글발이 못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소설은 허구의 세계를 완전히 새로 창작해야 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에세이는 다르다. 에세이에서 중요한 건 창조나 전개가 아닌 일상의 포착이다. 삶 속에서 촉촉한 글감을 추출해내는 능력이야말로 읽을 만한 에세이가 씌어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김영하라는 이름을 오랜만에 만났다. 김연수와 함께 한국문학을 책임질 투톱의 젊은 작가로 불렸던 그다. '작가론'을 주제로 무명의 평론가와 피곤한 토론을 하다 논쟁이 되자 모든 걸 접고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오랜 침묵이 있었고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그가 쓴 소설의 원작이 영화로 개봉되고 모 예능에서 온갖 잡지식을 늘어놓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나와는 거리가 있는 얘기였다. 개인적으로 TV를 보지 않을뿐더러 일차적으로 작가는 작품으로 만나고 평가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갑다.

 

『여행의 이유』는 김영하의 최신 에세이다. 직업 소설가로서 그가 경험하고 관조한 여행에 대한 사색을 담았다. 두껍지 않은 책 속에는 소설가 김영하가 여행을 통해 만난 사람과 겪은 체험을 통해 얻은 다양한 사유가 잘 녹아 있다. 소설가답게 짧은 에세이에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내공이 탁월하다. 기계적이고 외연적인 의미로서가 아닌 본질 그 자체로서의 여행의 내적 성질을 깊이 탐색한다. 여행을 통해 뽑아낸 다양한 삶적, 작가적, 철학적 고뇌가 웅숭깊게 읽힌다.

 

책은 작가가 중국 여행에서 추방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후 대학 시절 때 우연찮게 간 중국 여행을 소개하며 계획대로 흘러가는 완벽한 여행보다 매끄럽지 않은 실패한 여행이 본질적으로는 더 성공한 여행이라고 얘기한다. 과연 소설가 다운 글의 시작이요 메시지의 제시다. 여행의 궁극이 결국 현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완벽한 스케줄에 의해 오차 없이 흘러가는 것보다 끊임없는 변수의 연속선상에서 오직 '지금 여기'에 몰입하는 것을 강조하는 메시지가 아름답다. 작가에게 여행은 존재에 대한 인식이자 응시인 것이다.

 

여행에세이면서도 다른 여러 책들에 관한 인용과 해설이 많이 소개된다. 가끔은 북에세이가 아닐까 할 정도로 작가는 책 소개를 무한히 쏟아낸다. 하지만 과하지 않다. 오히려 '여행의 이유'라는 책 제목과 좋은 궁합을 이룬다. 여행을 통한 경험과 여행에 대한 저자의 주관이 과거 자신이 읽은 여러 고전들의 일면과 자연스럽게 포개어지는 것이다. 특히 책 말미에 여행을 소설과 비교한 대목은 인상적이다. 여행이 일상의 부재라면 소설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현실과 다른 작동 방식의 시간성이 발휘되고, 인간과 세계에 관한 집중력을 고양시키며, 분명한 시작과 끝이 존재하고, 타 관점에서 우주를 천착하게 하며, 언젠가는 반드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소설과 여행의 유사성을 탐색하는 작가의 사유가 흥미롭다.

 

작가는 여행의 의미를 깊고 넓게 풀이한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으로 여행을 정의한다. 결국 소설가 김영하의 여행론은 "나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천착할 수 있는 동기가 된다"라는 여행작가 오소희의 견해와 완벽히 일치한다. 곧 여행은 나 자신을 떠나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임을 일깨우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자각 혹은 대비라는 관점에서 결국 여행은 인간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기회와 가능성을 제시한다.

 

최근 여행 에세이가 봇물 터지듯이 출간되고 있다. 1인당 GDP 3만 불에 도달한 대한민국의 현재상은 앞만 보고 달려온 과거의 무시무시한 속도를 소급해서 제어하려는 듯 여기저기서 힐링에 대한 갈망을 표출 중이다. 여행은 그 최전선이다. 서점에 한 섹션을 할당해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는 여행 도서의 방대한 양이 이를 방증한다. 이 가운데 옥석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다. 바로 여기에 김영하의 신간 『여행의 이유』의 위치가 있다. 간결하고 묵직한 방식으로 '여행의 이유'에 대해 특유의 감성적 달필로 써 내려간 이 작은 에세이를 쉼이 필요한 모든 독자에게 추천한다. 역시 김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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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 김일성이 일으킨
강규형 외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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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파랑 출판사에서 시의적절한 책을 출간했다.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은 강규형 명지대 교수를 위시한 총 5인의 공저자가 6·25 전쟁에 대해 강론한 글들을 엮은 책이다. 공저자 5인의 이력만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책 내용은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기조에서 6·25 전쟁의 성격을 생동감 있게 풀이한다. 많지 않은 분량 가운데 당시의 참혹한 사진과 여러 수치들을 인용하며 6·25 전쟁의 객관적 민낯을 서술한다.

 

   책 제목에 주목하자. 제목의 구조를 살펴보면 '김일성이 일으킨'이라는 형용구가 '6·25 전쟁'을 수식하고 있다. 김일성이 6·25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을까 마는 사실 이삼십 대 젊은이들로부터 6·25 전쟁은 점차 잊힌 역사가 되어 가고 있다. 6·25 전쟁의 귀책성, 파괴성, 내밀성 에 대해 이해가 결핍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그저 애매하고 말랑하게 '민족상잔의 비극' 정도로만 수렴하고 있는 인상이다. 김대중 정부 때 발병한 북한 정권을 바라보는 사글사글한 증상이 전염병처럼 옮은 것 같다.

 

   6·25 전쟁은 김일성의 발의를 소련의 스탈린이 승인하고 중국의 모택동이 지원한 국제 전쟁이다. 트루먼의 미국은 한반도의 자유를 위해 15개국의 연합군과 함께 이 땅을 지켰다. 자유를 위해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희생됐고 민간인 또한 수백만 명이 사망했다. 6·25 전쟁은 3차 세계대전을 막은 전쟁이자 그것을 대체한 전쟁이었다. 수호해야 할 가치는 '자유'였다. 자유를 지켜낸 자와 지켜내지 못한 자의 차이가 얼마나 대극적인지 6·25 전쟁 이후의 남과 북의 역사,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통해 명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6·25 전쟁이 갖는 내·외재적 의미를 깊이 통찰하고,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며, 감사해야 할 것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한편 이 책의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지나치게 적은 분량과 공저자 5인이 집필했다고 보기 민망한 수준의 기본적인 내용에 아쉬움이 남는다. 완독하는 데 30분이 걸리지 않을 정도로 얇은 두께다. 책 두께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큰 글씨체와 적잖이 수록된 사진들을 감안하면 본래 100페이지가 채 되지 않을 정도의 분량이다. 또한 5인의 공저자가 무색할 정도로 내용이 단조롭고 일차원적이다. 각 공저자들의 개성과 문체가 하나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책값도 문제다. 도서정가제 이후 나는 출판사가 합리적인 책값을 설정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주장해왔다. 6·25 전쟁이 전 세대에 걸쳐 깊이 공부하고 끊임없이 반추해야 할 주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짤막한 팸플릿 수준의 책으로 11,500원을 받는다는 건 부당하다.

 

   서평을 정리하자. 6·25 전쟁은 소련, 중국(당시 중국공산당), 북한의 철저한 사전 모의와 은밀한 계획에 의해 발발한 침략전쟁이다. 1995년에 공개된 옐친 문서(스탈린 문서)는 6·25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공산 3국이 얼마나 내밀하고 악랄하게 준비했는지를 적나라하게 알려주었다. 6·25 전쟁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밑줄이다. 공산권의 침공에 맞서 이 땅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을 치른 선배 세대들과 연합군 참전용사들의 용기에 깊은 경외를 표한다. 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이 책은 이에 대한 짧은 팸플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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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셀의 서양철학사. 이 어마무시한 책을 다시 집어 들기로 했다. 철학사에 대한 개인적인 지적 열정이 이 수고로움의 본질이겠지만 과히 오랜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는 점이 내 선택을 부추겼다. 금번 개정판은 작아졌으나 두꺼워졌다. 직관적으로 참 이쁘게 생겼다. 철학 책 같지 않게 디자인한 을유문화사의 미적 감각에 박수를 보낸다. 또한 손때가 타지 않게 깔끔한 비닐로 포장해 서점에 진열해놓은 교보문고의 센스도 흐뭇하다.

 

   러셀과 나는 애증의 관계다. 사실 러셀만큼 많은 저작을 남긴 지식인은 드물다. 일평생 78권의 책을 남겼을 정도로 그의 지적 열정은 대단했다. 특히 나는 과거 2008년 네이버후드 어워드 시상식에서 그의 말을 인용해 수상소감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는 고백과 러셀의 명언을 인용한 것 사이에 큰 정신적 오류가 발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몹시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후일 반추해보건대 멋진 수상소감이었다. 요컨대 그 유명한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은 러셀의 말이자 나 다윗의 것이었다.

 

   평생 기독교를 조롱하고 무정부주의자로 살아온 그의 삶이 내게 올곧게 보일 리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그를 인정하는 건, 그의 케임브리지 대학 동년배들의 지적 허영, 즉 리턴 스트레이치, 존 메이너드 케인스, 레너드 울프 등이 뒤섞여 온갖 불필요한 담론을 쌓았던 '블룸즈버리 그룹'의 핵심이 되기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또한 기독교를 비판하는 논증의 수준이 과거의 철학자들, 즉 포이어바흐나 니체에 비해 보다 세련되고 정갈했다는 점이다. 관념과 이성의 세계에 함몰되지 않고 실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주목한 그의 지성을 나는 일견 높이 평가한다.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호불호가 완전히 갈리는 책이다. 하지만 재미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책이다.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겠지만 그 유명한 힐쉬베르거나 램프레히트의 것도 재미와 박력 면에서는 러셀의 것에 못 미친다. 물론 바로 이 지점에 세간의 호불호가 존재한다. "철학사가 주관과 흥미의 영역이냐"라는 무거운 문제에 부딪히는 것이다. 이에 모든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러셀의 서양철학사』에 빠져 보겠다. 자세한 것은 후일 서평으로 갈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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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 심윤경 장편소설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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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심윤경이다. 한국소설도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준 작가는 많지 않다. 나에게 그 최전선은 박민규와 김애란이다. 그다음으로 김별아와 권지예가 있다. 그리고 심윤경이 있다. 나는 10년 전 출간된 연작소설 『서라벌 사람들』을 통해 그녀가 한국 소설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문학적 진화를 이뤄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후 소급해서 읽은 장편소설 『달의 제단』과 『이현의 연애』를 통해 단 번에 심윤경의 포로가 되었다.

 

소설가 심윤경이 일곱 번째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신간 『설이』는 성장소설이다. 그의 처녀작 『나의 아름다운 정원』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만 당시 못다 쓴 성장소설의 보완 혹은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일정 부분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소설은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 '설이'의 성장을 테마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만 주목하지는 않는다. 한 아이의 성장과정을 통해 발견되는 한국 사회의 들끓는 교육열과 경쟁의식, 그것이 발산해내는 잘못된 가족의 모습과 비인간성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관통한다. 마치 소설판 '스카이 캐슬'이라 할 정도로 신랄하다. '좋은 대학'에 대한 전 국가적·전 가족적 로망에 함몰된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을 소설가 심윤경은 초등학생의 순수한 눈을 통해 가감 없이 고발한다.

 

소설은 함박눈이 내리는 새해 아침 보육원의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설이가 열세 살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다. 설이를 구조한 보육원 원장은 설이가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훌륭한 교육뿐이라 믿고 우리나라 최고 부유층의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초등학교로 전학시킨다. 설이는 세 번의 입양과 파양을 당하고 함묵증(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 내면의 병)을 갖고 있지만 자존감 만큼은 허물어지지 않은 ‘되바라진’ 아이로 성장한다. 그 바탕에는 보육원 ‘이모’의 조건 없는 사랑이 있다. 설이가 흠잡을 데 없는 가정처럼 생각했던 시현이네 집에 들어가 살아보고 나서 얻은 전회와 같은 후회와 깨달음은 흥미롭다.

 

소설의 각 인물은 작가가 말하려는 각각의 캐릭터성을 잘 표상한다. 특히 설이의 이모는 친부모나 친이모가 아니면서도 계산 없는 따뜻한 가족애를 부어주는 진정한 사랑의 정수를 상징한다. 비록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서 대단한 선물과 지원을 해줄 형편은 못 되지만 소소하고 일상적인 테두리 안에서 설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그녀의 사랑이야말로 자식을 향한 부모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반추하게 한다. 설이가 그토록 흠모하고 부러워했던 시현네 집에서의 가족에 관한 경험은 이모의 조건 없는 사랑과 대비되면서 부모의 역할과 가족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웅숭깊게 질문하게 한다.

 

소설에서 시현의 아빠, 즉 '곽은태 선생'은 가장 모순적인 인물이다. 그는 잘 나가는 소아청소년과 원장으로서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병을 잘 다스리는 최고의 의사다. 돈도 많고 이쁜 아내를 두었고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성공한 중년 남자의 표상처럼 보인다. 설이는 이모와 함께 병원에 갈 때마다 곽 선생의 팬이 되어 그를 흠모하고 그를 아빠로 둔 시현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설이가 그의 집에서 목격한 가족의 내막은 밖에서 자신이 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곽 선생의 실상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오직 공부 외에는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이상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설이는 곽 선생에게 질문한다. "시현에게 왜 그러셨어요?" 이에 대한 곽 선생의 답변은 우리 시대 모든 부모들이 겪는 모순과 고민을 함의하고 있다. "내 아이니까"

 

단언하건대 대한민국은 '스카이 캐슬'이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가장 단단한 권력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이 학벌의 권위에 종속되어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자기 자식을 올곧고 자유롭게 키운다는 건 어마어마한 도전이다. 작가 심윤경 자신도 소설 출간을 기념한 기자간담회에서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사촌기 자녀의 격렬한 갈등기를 겪느라 6년간 글을 쓰지 못했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소설가 이전에 현실 부모로서 녹록지 않은 일상의 고충을 털어놓은 것이다. 자식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5살 아이에게 영어와 한문을 주입시키고, 이곳저곳으로 수없이 이사를 다니고, 아빠의 무관심을 미덕으로 여기고, 수백만 원대의 사교육을 집행하는 이 정신 나간 광기의 현상이 과연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라는 숭고한 가치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일까.

 

소설은 부모의 욕망으로 들끓는 용광로와 같은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즉 부모로서 자식에게 부어줘야 할 것들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새삼 성찰하게 한다. 설이의 이모는 이 작가적 질문의 소설 속 현현이다.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주어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예뻐하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이모의 모습은 행복한 가족과 부모의 이기심 사이에 존재하는 복잡다단한 함수관계에 경종을 울리는 메신저라 할 수 있다. 결국 작가는 본질적으로 그 어떤 욕망과 이기심도 들어서지 않아야 할 가족의 원형, 참 부모의 진정한 자격, 즉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잘 짜여진 구성, 재미있는 이야기, 예쁜 문체, 쉽게 넘어가는 호흡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소설이다. 심윤경의 소설은 모든 작품이 살아있는 개별적인 완결성으로 깔끔한 뒷맛을 남기는 힘이 있다. 개인적으로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더욱 농밀하고 밀접한 시선으로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자녀교육'과 '부모사랑' 사이의 난해한 방정식을 정면으로 관통하고 있는 소설이다. 결코 녹록지 않은 외부의 도전 가운데 자식을 키우는 이 땅의 모든 부모들에게 이 소설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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