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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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유시민의 고전리뷰집 『청춘의 독서』가 리커버에디션으로 출간됐다. 내용은 그대로 두고 커버 디자인만 바꾼 신장판이다. 정계를 떠나 작가가 본업이 된 후부터 유시민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끼치는 그의 영향력은 결코 녹록지 않다. 정치적 외연을 벗고 저술과 강연으로 자신의 본실력을 굴곡없이 전달한 게 소위 '유시민 현상'의 원동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여러 방송을 통해 그의 지력은 더욱 재조명받고 있다. 그간 정치성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그의 지적 내공이 대중적으로 널리 공유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지식인도 연예인 못지않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풍토를 만든다는 점에서 유시민의 존재는 소중하다. 이에 2009년 출간 이후 지금까지 17만 권 이상 팔린 그의 스테디셀러 『청춘의 독서』를 재리뷰하고자 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좋은 책은 항상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변화하게 한다. 책이 세계를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변혁의 동기를 부여하고 고취한다. 인류사에 기록된 수많은 고전들을 보라. 그것들은 인간을 탐구하고 시대를 조명하며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한 시대 공동체 구성원의 지적 화두를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고전에는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것이 없는 텍스트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고전은 뜨겁다.

   우리는 고전을 통해 인간의 당위적 가치와 그 시대의 고민에 직면할 수 있게 된다. 대작가(대저자)의 혼과 숨결은 텍스트 곳곳에서 독자의 머리와 가슴을 진동시킨다. 고전은 입증된 텍스트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욱 지난한 시간의 검증과정을 누적하며 그 입증을 단단히 쌓는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길이 멀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고전을 통해 참된 길이 무엇인지를 교훈받고 도전받는다.

   '지식소매상'임을 자처하는 우리시대 대표 진보 지식인 유시민은 『청춘의 독서』를 통해 바로 고전을 얘기한다. 저자 자신이 청춘시절에 읽고 감동한 고전 중 14편을 선정하여 독자에게 소개한다. 저자가 전하는 14편의 고전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찬란한 명저들이다. 저자는 저작마다 담긴 웅숭깊은 가치와 다양한 시대성에 대해 수준높은 식견과 진지한 자세로 리뷰한다.

   유시민은 역시 진보다. 훌륭한 명저였지만 서슬퍼런 정권의 감시때문에 공개적으로 읽기가 힘들었던 희대의 금서들을 리스트 위에 올려놓았다.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불과 이십오 년 전만 해도 금서로 분류되어 제도권으로부터 핍박을 받은 작품들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이 과거에 비해 확실히 '좋은 시대'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만개한 세상이 됐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전환시대의 논리』를 숨어서 읽고, 『공산당 선언』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남산에 끌려가는 시대는 종말했다. "젊은 시절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서 빛나는 금서들을 탐독했다"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을 통해 진실이 역사를 어떻게 압도해왔는지를 새삼 반추한다.

   이 책의 가치는 다양성에 있다. 인간, 역사, 철학, 정치, 사회, 과학에 이르기까지 인류를 다채로운 관점과 방법으로 관류해온 여러 고전을 선택했다. 도스토옙스키에서 카(E. H. Carr)에 이르기까지 세기의 천재들이 뿜어낸 텍스트는 한결같이 역동적이고 찬란하다. 고전을 집필한 거인들은 항상 새로운 것으로써 기존 사상과 관습을 들추어보려고 했다. 용기가 있었고 끊임없이 고민했으며 깊이 통찰했다. 그리고 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생산했고 재창조했다. 이러한 고전작품의 혁신적 정신은 항시 시대성의 전복과 맞물려 발생해왔다.

   고전이 지닌 태동적인 진보성은 저자의 성향을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선술한 바와 같이 유시민은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명징한 진보주의자다.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정치적 선탠과 신념은 기존의 것을 바꾸고자 하는 데에 많은 부분 닿아 있다. 이러한 그의 진보적 색채는 시대 안에서 시대를 혁신해온 고전의 특질과 일맥상통한다. 난 믿는다. 모든 고전은 태생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수주의자인 나에게 '고전의 진보'가 뿜어내는 생기(生氣)는 언제나 도전이다. 이념의 대립을 넘어선 '검증된 지적 대화'라는 점에서 고전을 관통하면서 보수와 진보는 화해한다.

   저자는 각 고전 속에 살아 숨쉬는 여러 맥락을 소개한다. 기존 해설서와는 다른 저자만의 시각과 사유로 추출해낸 해석이 인상적이다. 젊은 시절 날카로운 첫키스와 같은 책 《죄와 벌》을 통해 평범한 다수가 갖는 강력한 힘과 선한 수단과 목적 사이의 인과관계를 사유했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지식인으로서의 의무를 배웠고, 《공산당 선언》을 읽으며 혁명의 가치와 매력에 경도되었다. 《맹자》에서 진정한 보수守가 무엇인지를 알았고, 《사기》를 통해 권력의 단면과 정치의 속성을 배웠다. 《진보와 빈곤》을 읽고 문명과 빈곤의 함수관계를 학습했고,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개안(眼)을 일으켰다. 물론 그의 주관과 해석에 내가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다.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은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편이다. 이 소설은 개인과 언론 사이의 무서운 구조적 관계에 대해 묘파한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카타리나와 신문사 '차이퉁'의 대립은 당시 독일에서 작가 자신과 일간지 <빌트>와의 대결구도를 그대로 상징한다. 판매부수 400만 부로 독일 내 1위 신문 <빌트>는 논조가 매우 보수적이며 때로는 극우적일 때도 있다. 하지만 많이 팔린다고 해서 '일등 신문'이 되는 건 아니다. 비록 <빌트>보다 판매량이 많진 않지만 품격 있고 사회적 영향력을 갖춘 다른 신문들이 균형감 있고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한국적 현실을 대조한다.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빌트'로 점령당한, 다수가 '일등 신문'이라고 부르고 읽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에 빠져 있는 한국 언론시장의 세태에 한숨을 짓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공급받는 정보와 진실은 일차적으로 미디어의 프레임을 통해 가공된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영향으로 종이신문의 권위가 예전 같지는 않다. 그러나 언론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신문의 헤드라인이 가진 거대한 폭력을 고발하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유시민이 어떤 생각과 마음에서 읽었을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주지하다시피 그와 나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스탠스를 달리 한다. 엄밀히 말해 개인과 사회를 바라보는 근본인식에 큰 차이가 있다. 자기자신을 스스로 '자유주의자(liberalist)'로 규정하는 것만 동일할 뿐 그는 상당히 왼쪽에, 나는 굉장히 오른쪽에 서 있다. 그럼에도 내가 그와 그의 텍스트를 즐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식인으로서의 실력을 그가 갖추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시민의 거의 모든 저작들을 탐독해왔다. 저자와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소위 나는 '유빠'인 것이다. 그의 책(언어)은 한결같이 쉽고 시의적이며 재미있다. 어렵고 민감한 사안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다는 건 지식인으로서 최고의 내공이다. 그의 책과 강연과 방송이 대중으로부터 환영받는 이유다.

   '다윗의 서재'를 자주 찾는 분이라면 유시민에 대한 내 견해가 상당히 안온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감지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정치적 견해와 사상적 맥락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까고 보자는 스탠스는 곤란하다. 예컨대 나는 꼴통보수이면서도 완전한 공산주의자 에릭 홉스봄을 좋아했다. 그의 내공(내용이 아닌 내공 그 자체)과 태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유시민 또한 마찬가지다. 지식인에 대한 평가는 입체적이어야 한다. 유시민을 향한 내 따뜻한 시선은 바로 그 기준에 닿아 있다. 한국 보수에 유시민만한 지식인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의 고전리뷰집 『청춘의 독서』를 아낌없이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그의 저작 중 최고로 꼽는다. 돈이 아깝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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