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이기주의 에세이 <언어의 온도>가 또다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수십 주 째 베스트셀러에 우뚝 서 있다. 도무지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간 눈에 띄는 신작이 없던 이유도 있지만 작가 특유의 따뜻한 문장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외연을 확대해간 것으로 보인다. 언어의 홍수 속에서 말과 글의 범람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건넨다.

   평소 자기계발서를 위시하여 소위 '힐링서적'에 거리를 두는 편이다. IMF 이후 국내 서점가는 위로와 멘토를 중심으로 한 힐링문학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서점 중앙에 군을 형성하여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정도다. 읽어 보면 대부분 내용과 얼개가 도긴개긴이다. 개별성을 고려하지 않은 저자만의 기준과 실질적인 의미를 갖지 못하는 합리주의로 쓰여진 말랑말랑한 얘기들뿐이다. <언어의 온도>는 그런 책들과 궤와 결을 달리 한다. 작가 이기주는 뜬구름 잡는 달콤한 소리에서 벗어나 언어의 일상성과 인문성을 대중적인 수준에서 잘 녹여냈다. 

   언어에도 온도가 있을까. 이에 대한 작가는 답은 단호하다. 분명 '있다'는 것이다. <언어의 온도>는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라는 명확한 선언으로 책 표지의 전면을 장식한다. 수천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역설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언어적 존재'라는 명제에도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사회적 맥락은 대부분 언어를 통해 채워지기 때문이다. 기쁨과 슬픔, 상처와 번민, 기대와 실망 등 인간이 향유하는 거의 모든 정서적 소용돌이는 서로 간의 말과 글을 통해 발생한다. 따뜻한 언어가 사람 사이를 안온하게 하고 차가운 언어가 사람 사이를 냉랭하게 한다. 사회는 곧 언어인 것이다.

   언어에는 힘이 있다. 기독교는 신神이 세상을 언어(말씀)로 창조했다고 선언한다. 빛이 있으라, 했더니 빛이 생겼다. 나사로야 일어나라, 했더니 죽은 사람이 깨어났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신성에 기인한 것이다. 인간은 언어의 힘을 신으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렇기에 인간의 언어에도 신성적 힘과 능력이 내재해 있다. 언어가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킨다. 반면 언어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주변을 어둡게도 한다. 즉 언어는 그 내밀성 속에 빛과 어둠을 동시에 공유하고 있으며 인간세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수렴하고 있다. 그야말로 인간은 호모로퀜스(Homo loquens)다.

   작가는 여러 지식과 경험을 통해 추출한 사유로 자신의 언어학을 풀이한다. 일상의 편린이나 한 편의 영화, 혹은 다양한 간접경험을 소재로 해서 '언어'라는 매개로써 독자의 가슴을 관통한다. 아주 작은 일상의 순간, 좀 더 큰 시간의 흐름, 더 크게는 한 사람이 가진 삶의 폭과 같은 것들을 통해 보편적 이해와 공감대를 추출한다. 각론에서 뽑아내는 총론의 메시지가 가볍지 않고 각 장이 총체적으로 '언어의 격格'이라는 큰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통합된다는 점에서 작가의 단단한 내공이 느껴진다. 

   작가는 '언어의 온도'를 말하기 위해 적확한 '언어의 무게'를 찾았다.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다. 특유의 냄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개성이 강한 문장들도 아니다. 불필요하게 화려한 덧칠을 하지 않았다. 허세와 겉멋이 없는 진솔한 문장이 인상적이다. 무색무취의 공명적 힘이 있다. 과하지 않고 군더더기없는 문장을 이쁜 디자인으로 두른 작은 책에 담았다. 그렇기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많은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책이 됐다. 힐링서적에도 '격格'이란 게 존재한다. 두서없이 마구 갈겨쓴 여느 에세이들과는 격을 달리 한다. 주제를 잡고 일관되게 쓴 작가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잘 쓴 책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이례적인 호평 속에는 앞으로 비평의 시각을 변화하고자 하는 내 의지가 담겨 있다. 내 비평의 현존을 진지하게 탐색한다. 베스트셀러에 대해 보다 아량있는 스탠스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기존에는 베스트셀러에 옥석을 구분하는 예리한 칼날을 먼저 들이댔다. 위대한 고전의 존재성을 기준으로 하여 현재의 책들을 재단하려고 했다. 돌아보건대 불필요한 짓이었다. 요즈음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유시민의 말대로 "베스트셀러는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베스트셀러인 것"이다. 많이 팔리는 책은 이유가 있다. 동시대 대중으로부터 공감과 사랑을 받는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힘과 능력이다. 그래서 말하겠다.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를 아낌없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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