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상에 관한 이런저런 상념을 두서없이 남긴다.

1.  19대 대통령 취임
   새 대통령이 취임했다. 시의성 때문인지 국민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나라의 진보주의 담론을 대중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신임 대통령에게 국민들은 녹록지 않은 기대를 보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나는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진보'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꽉 막힌 보수꼴통인 내가 그의 정책과 이념을 지지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취임 초기의 여러 신선한 모습에 박수를 아끼고 싶지는 않다. 철학과 진영이 다르다고 해서 잘한 것에 대해 무조건 비판하려는 태도는 부당하다. 지지 여부를 떠나 지금은 힘을 실어주고 격려해줄 때다. 부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2. 이기주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의 에세이 <언어의 온도>를 읽고 있다. 베스트셀러 1위에서 쉽사리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간 눈에 띄는 신작이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작가 특유의 따뜻한 위로의 문장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외연을 계속해서 확대해가고 있는 듯하다. 가벼운 맥락의 힐링서적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이기주의 에세이는 신선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최근 말과 글로 인해 상처와 권태를 가진 내 자신의 현재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나의 한계를 유독 많이 느끼는 요즘이다. 나 자신을 비워야 할 때다. 이기주의 말대로, 비우는 행위는 뭔가를 덜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움은 자신을 내려놓은 것이며 자기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어 주는 것이다.

3. 책 추천
   아끼는 교회 후배가 연애와 결혼을 준비하며 읽어야 할 책을 추천해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간만에 서재를 훑었다. 책장 빼곡하게 들어선 책들을 살피며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사랑을 책임진다는 것.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것. 이것들은 그야말로 어렵고 험난한 길이다. 추할 때도 있고 고독할 때도 있다. 그러나 기적의 길이기도 하다. 이 고차함수의 길을 묵묵하게 관통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삶과 사랑과 사람은 동의어'라는 진리에 자신의 현존을 맡길 수 있게 된다. 부디 후배녀석이 뜨겁게 사랑하며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4. 육아
   최근 둘째를 많이 혼냈다. 둘째 특유의 심통기질이 최극단의 지점에 도달한 듯하다. 엄마와도 매일 전쟁을 치른다. 훈육은 엄마의 영역이지만 가끔 아이가 도를 넘어설 때에는 참지 못하고 개입하곤 한다. 인내가 부족했다. 부끄럽다. 물론 두 딸이 너무 예쁘다. 하지만 어떨 때는 한없이 밉기도 하다. 아이는 정말 내 맘대로 크지 않는다. 육아와 훈육은 부모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이미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으나 현실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난 아직 멀었다. 부족한 아빠다.

5. 구분선
   최근 객관과 주관의 철학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이 사람 저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사실과 주관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설정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어떤 사안에 대해 자기만의 주관과 견해를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사실관계 자체를 부정해서는 곤란하다. 명확한 사실을 자신의 주관적 구성물로 대체하는 사람과 대화할 때는 몹시 불편하다. 그들은 사실에 관한 명확한 텍스트를 제시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 한나 아렌트 식의 '악의 평범성'은 특별한 곳에 있지 않다. 우리 주변 곳곳에 내밀한 방식으로 숨어 있다.

   베이컨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을 기각한 논거는 바로 대전제의 오류였다. 대전제가 잘못되면 과정과 결론은 공히 거짓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건 좋은 것이다. 다양성에 대한 관용은 우리사회가 밝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것이 '구분선'을 인정하지 않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에릭 홉스봄의 말대로 사실과 허구를 가르는 명백한 구분선은 존재한다. 개인이 분출하는 모든 형태의 다양성도 바로 이 구분선 위에서 출발할 수 있어야 한다. 의견은 자유롭되 사실은 신성한 것이다. 고민은, 그 구분선을 지적하는 순간 관계의 균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부분이다.

6. 진정한 남자
   "진정한 남자는 열등감을 갖지 않습니다" 라디오에서 전여옥 작가의 말이 흘러나온다. 정치인은 정치를 그만둘 때 비로소 철이 드는 것 같다. 전여옥도 그렇고 유시민도 그렇고 현실정치를 그만두고 작가라는 지식인의 본업으로 복귀하면서 내공과 매력을 더욱 찬연하게 뿜어내는 듯하다. 한때 거침없는 독설로 주변에 생채기를 많이 남긴 전여옥의 말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혹적인 명언이다. 그렇다. 열등감은 남자의 본성과 양립하지 않는다. 결코 함께 설 수 없다. 형편없는 남자만이 열등감을 가진다. 남자는, 아니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열등하지 않다.

7. 고전 원서
   외국고전을 읽다 보면 작품과 문장이 너무 좋아서 그 나라 언어를 배우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원서로 읽고 싶은 욕망이 샘솟음치는 것이다. 대표적 언어가 독일어와 러시아어다. 나에게 독일은 괴테의 나라고 러시아는 톨스토이의 나라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독일어 원서로 <안나 카레리나>를 러시아 원서로 읽을 수 있다면, 딱 한 번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 인간의 타락이여. 바벨탑의 비극이여. 나의 무지함이여. 천성의 게으름이여.

8. 인간의 품격
   "품질은 결코 유행을 타지 않는다" 문화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의 말이다. 이 말을 인간에게 적용해서 다음과 같이 패러디해볼 수 있겠다. "인격은 결코 유행을 타지 않는다" 그렇다. 사람의 품격이란, 과거와 오늘이 없고 보수와 진보가 없다. 인격의 시제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훌륭한 인격은 신(神)을 닮아가는 거룩한 여정 위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거추장스러운 형용수사로 정의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생이란, 선하고 겸손하게,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다.

9. 독서 권태
   요새 들어서 책읽기에 흥미를 잃고 있다. 책읽기에 권태가 생기니 자연스럽게 글쓰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간 많은 책을 읽어왔다고 자부하지만 독서를 통해 얻는 앎과 지혜는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생각이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지식이 있다. 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깎이고 떨어져 나가는 지식도 많다. 나이가 들수록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는 깨달음에 봉착하곤 한다. 그럴수록 책더미에서 해방되는 것이 참 지혜를 알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책과 나 자신 사이의 적절한 긴장관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책과 지식을 떠나 사람과 신앙을 돌아보자.

  
   삶은 고되지만 참으로 역동적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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