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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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갑내기 방송인 허지웅에 대해 나는 여러차례 신랄하게 비판해왔다. 편견에 빠진 무지, 자본주의에 대한 몰이해, 짓까부는식의 소통방식, 나이에 걸맞지 않은 훈계조의 언행 등은 그가 가진 비호감스러운 개성들이다. 정치적 사안뿐 아니라 절반의 찬반을 가진 무거운 주제에 대해 자기 말이 절대적 진리인양 질타하는 그의 어법은 그야말로 밥맛이다. 

   허지웅의 말을 가만히 듣다 보면 내용과 실력은 갖추지 못한 채 이미지로 뜬 전형적인 군상이라는 느낌을 받곤 한다. 어떻게 해서 방송에 자주 출연하게 됐는지 모르겠으나, 지식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헛똑똑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근 면접방식으로 토론하는 공중파의 모프로그램에서 대선후보 패널로 출연한 이재명 시장에게 넉다운 당하는 그의 모습은 꼴불견 그 자체였다. 면접관이 후보를 심문해야 하는데 논리와 지력이 딸리니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기고 주장하는가. 핏대는 왜 세우는가. 무지는 태도 때문에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허지웅은 그 대표적인 예다.

   허지웅이 신간을 냈다. '한겨례'와 '씨네21'에 기고한 글에 새 글을 보탰다. 나는 이미 그의 전작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읽고 "대책없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시끄러운 소리"라고 혹평한 바 있다. 그는 전작에서 진지한 여러 사안에 대해 정통좌파식 억양으로 "자본주의(시장경제) 자체가 인간의 삶을 억압하는 기제"라는 싱거운 논리를 줄기차게 쏟아냈다. 그의 신간 『나의 친애하는 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시기와 소재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간 이런저런 사건을 거치면서 논리와 태도의 변화가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의 신간을 집어들었지만 역시나 였다. 

   허지웅의 에세이 『나의 친애하는 적』은 전작 『버티는 삶에 관하여』의 2부이다. 내가 볼 땐 그렇다. 소재와 내용은 다르지만 난잡한 구조와 가벼운 맥락은 동일하다. 논조와 태도 또한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제목 '나의 친애하는 적'은 훼이크다. 제목만을 보자면 자신의 안티에게 온화한 제스쳐를 취하거나 지금까지 대중으로부터 누적되어온 오해의 담론들을 진지하게 탐색할 것이라는 기대를 자아낸다. 하지만 책 내용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다. 달라진 것 없고 새로운 내용도 없다. 전작의 수준 딱 거기에 정지해 있다. 문학동네 정도의 출판사가 왜 이런 책을 출간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평소 저자는 선배세대에 대해 뜨악한 입장을 자주 표출해왔다. 논란이 된 <국제시장> 발언도 그 연장선상이다. 이 책에서도 그 경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저자는 아버지로부터 등록금 요청을 거절당한 일과 스물두 살 아르바이트 당시 믿었던 부장에게 월급을 뜯긴 일을 글감으로 삼아 책에 소개한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좋은 어른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최악의 어른이 늘 갱신되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이해할 수 있다. 감정과 인식은 기본적으로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잊고 있는 게 있다. 사람과의 관계는 철저히 상대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가 좋은 어른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상대 어른은 좋은 청년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내가 상처받았다는 것은 거꾸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과 동의어다. 사람 간의 문제를 타자만의 문제로 넘기는 그의 오해가 불편하다. 그에게 "이 세상에 좋은 어른은 많다"는 내 경험적 신념을 강요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굳이 조언한다면, 한나 아렌트가 역설한 '악의 평범성'을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책의 뒷부분에서는 최근 불거진 주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말한다. 국정교과서, 세월호, 최순실 게이트, 촛불 시위, 대통령 탄핵 등 마치 고양이가 생선을 만난 것처럼 호들갑이다. 책의 말미는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며 끝맺는다. 선배세대가 흘린 피와 땀을 모욕해온 그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을 고민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아랫세대를 위한 따뜻한 세상은 윗세대가 물려준 유산을 겸허히 수용하는 것에서부터 만들어진다고 나는 믿는다. 

   책은 전체적으로 가볍고 조잡하다. 균형감각과 목적의식이 결여된 수준 낮은 에세이의 전형을 보여준다. 영화리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 외에는 전체적인 맥락과 무관한 여러 잡문을 보탰다. 타 매체와 블로그의 글을 짜집기해 이런저런 잡문으로 엮은 난삽한 에세이를 15,000원이나 받는다는 건 불편하다. 저자의 허영인지 출판사의 오만인지는 모르겠으되, 종국적으로 내 지갑이 회개할 일이다. 


   한 문단 더 보태겠다. 저자에게 충고한다. 작가와 방송인은 공인이다. 공인은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산다. 대중을 의식해서 헛소리하는 건 문제지만 대중을 무시하며 개소리하는 것도 문제다. 공부가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잘 모르면서 떠드는 무식이 가장 큰 문제다. 무거운 주제에 대해 가볍게 툭툭 던지는 경박한 태도도 문제다. 본인의 경험만으로 선험적 명제를 도출하지 말라. 자신의 프로필을 '글쓰는 허지웅입니다'라고 제시했다면, 무겁고 진지한 주제에 대해 깊이 공부한 뒤 겸손히 말하고 겸허히 쓰라. 그것이 '어른스러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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