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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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텍스트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시보다 산문이 좋은 이유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시의 구조가 가진 불명확한 압축에 묘한 결핍과 피로를 가진다고나 할까. 요컨대 나에게 시는 피곤한 세계다.

   물론 시는 위대하다. 시인이 되지 못해 소설 쓰고 소설가가 되지 못해 평론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는 언어의 정점인 동시에 언어를 넘어선 세계다. 시인은 최정상의 글쟁이인 것이다. 시인이 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초라하게 관조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던 소설가들이 있다. 톨스토이도 그랬고 공지영도 그랬다. 시는 넘사벽의 세계인 것이다.

   시는 좋아하지 않지만 시인이 쓴 산문은 좋아한다. 산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에 '시인이 쓴 산문'이라는 역설적인 기대감을 무의식적으로 전제한다. 그리고 실상 시인이 쓴 산문은 달랐다. 유려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핵심적인 낱말로 문장을 구성했다. 연이어지는 짤막한 문장들로 삶과 인간과 우주에 관한 중요한 토막들을 웅변했다. 시인의 시는 별로였지만 시인의 산문은 아름다웠다. 내 수준이 딱 거기까지다.

   류시화의 신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시인이 쓴 산문집이다. 여러 삶의 단편들을 시인의 언어로 담았다. 작가는 총 51편의 산문 속에 삶과 인간에 대한 내적 담론을 녹여냈다. 시인 특유의 울림과 시선이 잘 담겨 있다. 주로 여행을 통해 추출한 여러 삶적 디테일이 문장 속에 오롯이 녹아 있다. 과히 아름다운 글의 향연이다. 독자만 즐겁다.

   수록 산문 중 상당의 글들은 이미 페이스북에서 여러 독자들에게 소개한 바 있다. '퀘렌시아', '찻잔 속 파리', '혼자 걷는 길은 없다', '마음은 이야기꾼', '장소는 쉽게 속살을 보여 주지 않는다' 등의 글들이 그렇다. 특히 표제작인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의 내용 중에는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라는 명문장을 담아 작가 자신의 인생철학을 오롯하게 드러냈다. 
 
   작가는 글감의 주된 소재를 여행에서 얻은 듯하다. 수록 산문의 절반 이상이 여행에서의 경험 혹은 여행이 준 깨달음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마다 이어지는 인도여행에서의 경험은 책 곳곳에 빼곡히 들어서 있다. 작가에게 인도는 특별한 시공간이다. 그에게 인도는 명상의 나라이자 깨달음의 공간이며 시적 창작이 만개하는 곳이다. 작가 자신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장소를 사랑할 수 있는 건 여행자 자신이 그곳의 혼에 닿았기 때문이다. 장소의 혼에 다가간 작가의 고결한 사랑이 정갈한 글을 낳았다. 아름다운 피드백이다.

   문학평론가 로자(필명) 이현우는 시와 소설은 존재론적으로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소설은 일상성에 대한 예찬이다. 하지만 시는 일상을 충돌하고 거부한다. 말랑말랑한 일상의 디테일을 시의 언어가 수렴할 수 있다는 건  애초에 불가하다는 것이다. 시와 소설의 세계는 완전 분리되어 있고 서로를 완전 배반한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운명적 고립이자 위대한 고독이다. 작가가 항시 일상을 떠나 여행길 위에서 삶과 인간을 천착한 데에는 이러한 시적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오롯한 자기반영이었을 것이다.

   서평을 정리하자. 시인의 산문은 달랐다. 미사여구를 배제한 절제의 언어가 아름답다. 형용사와 부사를 자제한 담백한 문장이 인상적이다. 언어의 낭비없이 진정성과 메시지를 동시에 담았다. 수월하게 읽히면서도 적정량의 무게는 잃지 않았다. "내가 묻고 삶이 답하다"라는 매혹적인 문구로 띠지를 두르고 있는 류시화의 신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를 지난한 일상에 지친 이 시대 모든 피로한 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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