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와 우상 - 전원책의 정치 비판
전원책 지음 / 부래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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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원책의 신간 <잡초와 우상>을 힘들게 읽었다. 어렵지도 않은 책을 힘들게 읽은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재미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오류가 어떻고 정치인의 위선이 어떻고 하는 등의 공염불과 같은 얘기를 어마어마한 분량의 각주와 함께 지난하게 설명한다. 현실적으로 크게 와 닿지 않는 정치학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따분한 내용을 왜 글감으로 삼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마저도 자기만의 매력적인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어 따분한 글을 읽어야 하는 독자만 곤욕이다.

   사실 그간 출간된 몇 안 되는 전원책의 책들은 한결같이 무료하고 재미없다. 재미없는 주제를 더욱 재미없게 쓰는 게 전원책표 필력의 현주소다. 과거 시인으로 데뷔했다던 그의 시적詩人 유전자는 온데간데없다. 정치 관련 책을 재미로 보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치만큼 뜨겁고 재미있는 주제가 어디 있나. 예컨대 강준만의 책들은 한결같이 재미있지 않나. 지나친 비교평가일 수 있으나 그의 텍스트 생산능력이 [썰전]에서 겨루는 유시민의 절반만 되었더라도 형편없이 재미없는 책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식인 전원책에 대한 내 견해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입장이다. 긍정은 그가 내세우는 보수적 가치에 대한 오롯한 공감에 있고, 부정은 깊이있는 지식의 발굴 노력과 그것을 축적하여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데 힘을 쏟기 보다 우선 목소리 높여 상대에게 일갈하고 보자는 꼰대식 태도에 대한 불만에 있다. 흥분하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고 본인의 주장에 탄력이 붙는 건 아니다. 진보·보수, 니편·내편을 떠나 솔직히 그가 유시민의 토론 상대가 되는가. 그나마 유시민에게 버티기라도 하려면 논리적 맥락과 이성적 차분함을 잃지 않으면 안 된다. 

   지식인으로서 전원책의 고질적인 한계는 책을 많이 읽은 건 알겠는데 그 지력의 발산이 타자적 언어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데 있다. 예컨대 이번 신간에서도 '그의 언어'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어마어마한 각주는 저자의 성실한 인용표기로 볼 수 있지만 반면 그의 텍스트가 타자적 지식의 병렬적인 나열에 함몰되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내공있는 지식인의 언어는 'output' 되기 전에 자기 언어로 치환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 다음에 논리적이고 평이한 보편의 언어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그가 한국 보수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한다면 여러 담론에 대해 자기만의 매력적인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는 한계는 참으로 아쉽다.

   대북관계, 복지정책, 병역제도, 노사문제 등 우리사회의 여러 이슈에 대해 나는 전원책과 같은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여태까지 그가 미디어에서 보여준 내·외면적 아우라는 제법 강렬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존재가 한국 보수의 자산으로 수렴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를 변혁하는 지식인의 종국적인 역할이 활발한 집필활동을 통해 지적 자산을 남기는 것이라고 했을 때 전원책의 책과 글은 아쉬워도 너무 아쉽다.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칼 마르크스는 인류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선동집 <공산당 선언>을 집필했고, 버트런드 러셀은 살아생전에 발군의 필력으로 68권이라는 기념비적 저작들을 남겼다.

   작금의 한국 보수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보수가 '수구' 혹은 '꼴통'과 등치된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일베'를 보수의 한 분파로 인식하는가 하면 '성추행'과 '부정부패'를 한국 보수의 독특한 특질로 규정하는 이들도 있다. 서점가에서는 보수적 담론은 거의 팔리지 않는다.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읽은 대학생은 거의 없고 로버트 노직의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라는 책은 있는지조차 모른다. 미국에서는 거의 팔리지 않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200만 부 이상 팔린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지식의 편향은 마치 정의의 문제인양 프레임되고 있어 더욱 암울하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지식인의 책이 일반독자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쉽고 안타깝다.

   그는 여러 강연에서 유독 좌파 지식인들에 대한 예민한 감정을 표출해왔다. 예컨대 마르크스, 러셀, 프로이트, 사르트르 등 그가 두들겨 깐 사상가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의 표적이 됐던 지식인들은 일관되게 어마어마한 저작을 남긴 불세출의 필력가들이다. 그들을 깔 시간에 자신의 텍스트 수준은 어떤지 냉정하게 돌아보는 소크라테스적 이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전원책에 대한 나의 이러한 냉소는 그가 한국 보수계의 소중한 보석이라고 생각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애정의 독설인 것이다. 제발 책 좀 매력적으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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