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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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이 신간을 냈다. 꾸준하게 들려오는 그의 신간소식이 반갑다. 이제 유시민에게 '작가'라는 호칭은 낯설지 않다. 몇 년 전 공식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본업을 작가로 갈음한 그였다. 당시 자신을 작가로 불러달라고 했을 때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정서와 감회가 있었다. 이후 그는 성실한 집필과 강연으로 대중에게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어필해왔다. 그간의 비블리오그래피는 작가 유시민으로서의 안정된 아우라를 잘 담아내고 있다.

   유시민의 신간 <표현의 기술>은 글쓰기 관련 책이다. 전작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도 전업작가가 된 저자가 대중에게 글쓰는 방법론을 안내한 책이다. 이번 책은 글쓰기 자체에 관한 안내서라기보다 여러 형태의 글을 쓰면서 부딪힐 수 있는 다양한 담론에 대해 저자의 생각을 담았다. 유시민 특유의 쉽고 간결한 서술은 독자를 편안하게 자신의 논증 속으로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

   선술한 바와 같이 저자는 글쓰기와 관련해서 다양한 얘기들을 들려준다. 자기소개서, 논문, 보고서, 회의록, 비평 등 각기 다른 형태의 글들이 갖는 구조와 성격, 특징에 대해 언급하고 저자 자신만의 노하우를 여러 예시를 들어 쉽게 설명한다. 특히 글 곳곳에 배치된 공저자 정훈이의 만화는 글의 본류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유머와 풍자를 선사한다. 유시민의 글과 정훈이의 만화는 교차적으로 편집되어 독자의 가독성을 돕는다. 두 공저자의 콜라보레이션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바를 맛깔나고 입체적으로 풀어내는 '표현의 기술'이 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맑이 읽어야 한다는 저자의 조건은 합당하다. 많이 읽어야 문장 쓰는 기술을 증진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 표현할 정보, 지식, 논리, 생각 등의 다양한 글감을 무리없이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배우는 책읽기'보다 '느끼는 책읽기'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시, 소설, 에세이 등의 문학장르뿐 아니라 기사와 비평 등의 모든 형식의 글을 감상함에 있어 글쓴이의 주관과 목적을 헤아리기 위한 고민과 탐구는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순수한 독자가 되어 텍스트 속에 담긴 의미를 깊이 느끼려는 노력은 거꾸로 자신이 온전한 필자가 되었을 때 자기 글을 읽을 독자에게 유의미한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책읽기와 글쓰기의 양방향적 피드백이라는 측면에서 저자의 조언은 경청할 만하다.

   잘 읽히지 않는 난해한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에도 동의한다. 저자는 칸트의 명저 《순수이성비판》을 예시로 들어 '텍스트(text)-콘텍스트(context) 관계'에 대해 자신의 논증을 풀어낸다. 위선과 허영은 좋은 글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책읽기와 글쓰기에도 겉멋과 허세가 작용한다. 글쓰는 능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문장을 자주 다듬다 보면 글을 화려하게 쓰고 싶은 충동에 빠지곤 한다. 사유의 추출물이 아닌 현란한 기교로서의 글쓰기에 누구나 한 번쯤은 유혹받고 함몰된다. 자기자신조차 무슨 뜻인지 모를 애매한 문장으로 겉멋을 부리는 건 좋은 글쓰기가 아니다. 칸트의 명저가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저자는 글쓰기와 관련해서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다양한 담론에 대해 언급한다. 악플에 대한 입장과 태도, 표절에 관한 견해와 해석, 베스트셀러의 조건, 훌륭한 글쓰기에 전범이 될만한 작품 등 저자는 글을 쓰면서 직면하게 되는 다양한 종류의 고민에 대해 자신의 주관을 풀어낸다. 특히 7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직면해 자신의 감정을 언급한 부분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저자는 당시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누군가를 미워하게 됐다고 기술한다. 바로 그때 소설가 김형경의 에세이 <좋은 이별>을 만났고 그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고 그 길었던 여름을 견디게 됐다고 고백한다. 가슴 짠한 대목이다.

  
나는 과거의 여러 글을 통해 유시민에 대한 따뜻한 긍정을 피력한 바 있다. 다른 정치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시민을 참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지식인으로서 그가 가진 내재적 아우라에 상당 부분 동의하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렵지 않게 말한다. 또한 쉽고 간결하게 쓴다. 그의 글에서는 지적 허영심이나 과잉된 좌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예민하고 난해한 지식을 명료하게 재구성하여 대중에게 쉽고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지식인 유시민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서평을 마무리하자. 신간 <표현의 기술>은 작가 유시민의 발군의 역량이 잘 반영된 책이다. 유시민이란 이름 석자에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책이다. 글쓰기에 고민하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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