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삶에 가장 기본이 되는 건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일이다. 최근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옥중서신으로 불리는 신약성서의 네 성경을 필사하는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필자의 와이프도 밤마다 두 아이를 재운 후 열심히 성경을 쓰고 있다. 얼마나 은혜롭고 감사한 일인가.

   그러나 필자가 이번달에 특별히 탐독하고 있는 성경은 옥중서신이 배치된 신약이 아니라 구약의 한복판에 있는 열왕기서다. 금월에는 열왕기상·하를 낱낱이 파헤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열왕기서는 솔로몬 때부터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최후 주전 586년까지, 약 400년 동안 유다와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42명의 왕들, 북방 이스라엘의 19명, 남방 유다의 23명과 12명의 선지자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다룬다. 아합, 시드기야 같은 쓰레기 같은 군주들이 많았지만, 요시야나 히스기야 같은 거룩하고 탁월한 지도자들도 있었다.

   열왕기상·하는 시작과 끝을 극단적으로 대조한다. 시작은 다윗이 세운 광대한 나라에서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여 찬란한 성전을 건축하고,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광활한 영토를 장악하여, 이스라엘 왕국 역사상 최고의 영광을 누리는 장면이다. 반면 열왕기의 끝은 성전이 훼파되고, 나라가 멸망하고, 왕이 두 눈이 뽑혀 백성들과 함께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한 장면이다. 400년이 채 안 되는 이스라엘-유다 왕국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 중심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극단적이고도 진지하게 해부한다.

   열왕기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역사를 서로 지그재그로 비교하면서 기록하는 형식을 취한다. 즉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 기사를 동시대 유다 왕들의 통치 기사의 배경 아래서 볼 수 있게 했다. 전반적으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왕들은 대부분 악했다. 특히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누가 하나님을 더 열받게 할까 내기하는 수준으로 우상숭배와 악행만을 일삼은 역사였다. 한결같이 전부 쓰레기들이다. 그러나 남유다의 경우에는 의외로 선한 왕들이 많이 나왔다. 열왕기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두 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한 민족의 역사로 기술한 것이다.

   필자가 이 시점에서 열왕기서를 탐구하려고 한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 작금의 한국정치가 가진 심각한 병적증세를 목도하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된 리더십의 본질을 강구하기 위함이다. 둘째 가정에서는 가장으로, 교회에서는 집사와 회장으로, 회사에서는 과장이라는 직급으로 위치한 내 책임의식을 점검하면서 올바른 리더자가 되기 위한 하나님중심주의적 방법론을 천착하기 위함이다. 요컨대 현재의 나와 우리를 진단하고 부재와 굴곡에 직면한 내·외재적 리더십의 위기를 극복하기를 소원하는 탐구상의 여정인 것이다.

   열왕기서는 솔로몬의 치세로 시작된다. 고백컨대 필자는 솔로몬을 정말 싫어한다. 솔로몬에 대한 필자의 비호감은 다소 각별한 데가 있다. 성경을 읽으면서 솔로몬만큼 필자를 짜증나게 한 인물도 없다. 솔로몬의 죄가 집대성된 열왕기상 11장에 이르러서는 화를 참지 못해 펜으로 성경책의 일부분을 후벼 판 적도 있다. 일부 사람들이 솔로몬의 위대성을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인정하지 못하겠다. 위대한 지혜도, 거대한 성전 건축도,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솔로몬으로부터 나온 게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였지 솔로몬이 잘나서 누린 게 아니라는 얘기다. 솔로몬이 뭐가 그리 위대하단 말인가.

   솔로몬은 열왕기상·하에서 가장 핵심적 모형이 되는 인물이다. 집권 초반기에 그토록 지혜롭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었다가 후반기로 가면서 심하게 타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솔로몬이 타락하게 된 가장 실제적인 배경은 결국 여자 문제였다. 인류 역사는 권력, 돈, 섹스 ― 이 세가지가 항시 한 셋트로 작동한다는 것을 명징히 보여준다. 하나에 걸리면 다른 두 개가 붙어 오는데, 처음엔 그것이 특권 같지만 나중엔 무서운 독이 되어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솔로몬은 이방 왕비들을 많이 들였고, 그들을 위해 이방 신당을 짓고, 노예제도와 무거운 세금 부과로 백성을 힘들게 했다. 솔로몬의 집권 후반기는 하나님의 분노를 얼마나 끌어올릴까 궁리하는 악의 퍼포먼스와 같다. 솔로몬의 리더십은 후세 왕들이 답습하는 악행 패턴으로 굳어 버려서 두고두고 하나님을 노엽게 한다.

   필자가 솔로몬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가 권력, 부, 여자 ― 로 연결되는, 소위 문명사적 유구성을 띤 남자의 약점을 과히 입체적으로 포괄하여 죄악의 불길을 타올린 데 있다. 솔로몬의 모습에서 나는 현대사회가 직면한 가장 실제적이고 악질적인 죄의 형태를 직시한다. 솔로몬의 죄는 죄악이 관영한 이 시대에 모든 남자들에게 열려있는 어두운 고민과 유혹의 본성적 패착이다. 하나님중심주의의 삶에 대한 현란한 일탈이요 치졸한 반역이며 기괴한 공격이다. 남자의 가장 약한 아킬레스건 가운데 부분적이고 일시적으로, 그러나 치명적으로 내면화된 추악한 죄의 형상이 솔로몬의 우상숭배의 인과관계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필자가 솔로몬을 싫어하는 이유다.

   아! 솔로몬! 최소한 솔로몬과 같은 리더는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의 말대로 인간사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이다. 우리 정치의 모습에서, 가끔은 필자 자신의 모습에서 솔로몬의 모습을 본다. 그럴 때마다 소름이 돋고 전율을 느낀다. 땅을 치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와 필자 자신의 리더십 속에서 솔로몬의 방식이 사라지고 다윗의 방법이 세워져야 한다. 솔로몬은 아버지를 잘 만났다. 그는 아버지 다윗 왕의 발꿈치 때만도 따라오지 못했다. 다윗과 솔로몬 ― 두 사람의 리더십의 궁극적인 대조는 차후 별도의 지면을 통해 논설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사실 솔로몬을 까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텍스트가 필요하다.

   작금의 국가적 혼란과 필자 자신의 위치를 바라보며 진정한 리더십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사유한다. 솔로몬의 리더십은 곤란하다. 다윗의 왕권이 세워져야 한다. 국가, 사회, 가족 등 모든 인간 공동체의 리더십은 하나님 왕권의 파생품이다. 바로 이 지점에 열왕기서가 주는 교훈이 있다. 필자가 열왕기서를 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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