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사기 -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했는가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 이희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지난 휴가철 필독서 코너를 통해 소개한 책이다. 너무 괜찮은 책이라 다시 한 번 밀도있게 추천하고자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과학적 지식과 객관적 사실이 혼미한 형태로 굴곡되어가는 극심한 형태의 인식론적 상대주의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주의에 뿌리를 둔 포스트모더니즘의 본질을 공격한 이 책의 존재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겠다.

   작금의 시기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 부른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나 또한 관련서적을 적지 않이 읽었지만 이에 대해 명확하고 체계적인 정리는 아직까지 요원한 상태다. 주변의 책 좀 읽었다고 하는 독서꾼 가운데서도 이에 대해 자신있게 풀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심지어 철학과 현대사상을 전공한 자들 가운데서도 이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그만큼 포스트모더니즘은 광범위하고 복잡다단한 사상적 맥락을 가진다. 몇 마디 말과 몇 장의 텍스트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설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어렵다는 얘기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말 그대로 모더니즘 이후를 의미한다. 모더니즘이 리얼리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항으로 발생했다. 엄밀히 말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연속이며 부정이다. 그 본격적 태동은 모든 권위에 저항하고자 했던 프랑스 68혁명 이후의 유럽을 배경으로 한다. 마치 세계를 입체적으로 천착하는 신세계적 사조로 보이지만 실상 객관적 사실에 대한 도전으로 귀결되는 게 포스트모더니즘의 주된 특징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과학적 지식을 사회적 구성물(구축물, 작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합리주의 전통(인류의 진보, 보편적 가치, 과학적 발견, 이성에 대한 믿음 등)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경험적 검증과 동떨어진 이론적 담론에 불과하며 과학(적 지식)을 수많은 이야기, 신화, 사회적 구성물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는 인식론적·문화적 상대주의에 다름 아니다. 절대적 진리를 추구한 소크라테스가 보면 기겁할 사조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인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시공간 압축성, 즉흥성, 순간성, 파편성의 이데올로기다. 철학적으로 포스트구조주의에 뿌리를 둔다.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장 보드리야르, 질 들뢰즈 등이 이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철학자들이다. 포스트구조주의는 거대 서사를 해체하고 미시성의 담론을 제시한다. 또한 그들은 루이 알튀세르, 자크 라캉,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등의 구조주의 철학이 지닌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를 연속하면서 동시에 해체하는 사상사적 맥락에 놓여 있다.

   나는 평소 구조주의 철학서들을 읽을 때마다 심각한 짜증을 발산하곤 했다. 지독하게 난해하고 난잡한 그들의 텍스트를 읽어내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라캉의 저작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데리다의 것도 마찬가지였다. 읽어도 읽어도 미궁 속으로 빠져들 뿐이었다. 철학이나 심리학, 정신분석학을 전공하지 않은 내 지력의 수준을 한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뒤늦게 깨달았다. 구조주의는 심오한 학문적 무게를 지닌 경이로운 철학이 아니었다는 것을. <순수이성비판>의 칸트적 난해성과는 성격이 달랐다. 무언가 있기 때문에 난해한 게 아니라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난해한 것이었다.

   <지적 사기>는 포스트모더니즘 진영의 목소리가 왜 난해할 수밖에 없는지 명쾌하게 설명한다. 공저자 엘런 소칼과 장 브리크몽은 이 책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 진영에 수류탄을 투척했다. 라캉과 보드리야르를 위시한 프랑스 현대 철학의 지적 남용과 학문적 허영을 다양한 논증으로 고발한다. 화려하고 난해한 수식어로 도배가 되어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은 대부분 철학자 자신이 만들어낸 창작물이며 과학적으로 반증되지 않는 허구적 수사에 불과하다고 일침한다. 사유의 부재를 은폐할 목적으로 난해하게 꾸며진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통쾌한 고발이 아닐 수 없다.

   진리는 단순하다. 거짓말은 화려하고 매혹적이다. 반면 참말은 엉성하다. 독일 사상의 투박성을 유려한 언어로 각색하여 대중적인 호소력을 확보한 게 프랑스 철학의 특징이다. 예컨대 실존주의도 그랬다.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보기 좋게 포장한 게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아니었던가. 진지함과 난해함은 동의어가 아니다. 사상의 깊이와 무게는 무조건적 난해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허약한 콘덴츠를 난해하고 위압적인 수사로 포장하여 독자를 압박하려는 그들의 내밀한 속셈에 속지 말아야 한다.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다. 쉬운 책은 결코 아니다. 현대사상사에 약간의 조예만 있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통렬하고 통쾌하며 흥미롭다. 일독을 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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