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무덥다. 이제 본격적인 휴가철에 접어들었다. 이에 휴가지에서 읽을 만한 책을 아래와 같이 추렸다. 고전과 신간 중에서 시기적으로 적확성을 띤 열 권(여덟 편)의 책을 선정했다. 소설이 한 편 포함되어 있지만 대부분 고전과 인문학을 택했다. 무겁긴 하지만 현실 한국을 조망하는데 이 책들만큼 긴요한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디 휴가철에 책을 벗삼아 무더위를 식히기를 기원한다.



 


『이방인』 - 알베르 카뮈, 민음사

말이 필요없다.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다. 서양 소설사는 <이방인> 전과 후로 나뉜다.
<이방인>을 읽지 않고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문학을 제대로 관통할 수 없다. 또한 '의식'이나 '주체'를 탐구하는 시대가 끝나고 '규칙'이나 '구조'를 천착하는 시대가 도래한 사상사의 과도기적 현상을 이해할 재간이 없다. 카뮈는 이 얇은 소설에서 인간 부조리의 본성을 진지하게 질문한다. 지난 4월 '세월호 사건'은 우리사회에 내재한 부조리를 극명하게 보여준 비극이다. 개인과 사회는 어떤 긴장과 갈등으로 얽혀있는가. 과연 부조리란 무엇인가. 최근 번역논쟁에 휘말릴 만큼 작품의 질적 밀도도 최고도에 오른 작품이기에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노예의 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나남

케인즈의 대척점에 있었던 경제학자인 하이에크의 명저다. 좌파든 우파든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로 꼽힌다. 사회주의적 기제는 반드시 집단주의(collectivism)로 귀결되며 이것이 개인을 어떻게 노예의 삶으로 귀속시키는지 경제·도덕·법·철학 등의 다양한 부문에서 논증했다. 하이에크는 이 책을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집필했다. 대중이 읽기에 어렵지 않게 썼다. 최근 우리사회의 모습에서 방향성 잃은 집단주의의 단면을 발견하는 건 비단 나만일까.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념과 당파를 불문하고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한나 아렌트, 한길사

교회 청년부 특강 시 인용한 책이다. 구조적 무지가 만들어내는 '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고발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유태인 학살의 주범인 아이히만이 전범재판에서 칸트의 정언명령을 인용하여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 충격적인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철학자 아렌트의 보고서다. 구조적 무지는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에 의해 무지를 내재적으로 생산하고 고착시키는 악의 귀속적 형태다. 저자 아렌트는 구조적 무지의 기제들이 어떤 형태로 악을 평범화하고 귀속시키는지 이 책을 통해 날카롭게 고발한다. 절대적 진리와 정의는 사라지고 모든 것이 상대주의로 귀결되는 작금의 시대에 강력한 울림을 선사하는 책이다. 젊은이들에게 특히 권한다.


  
『사랑의 역사』 - 남미영, 김영사

신간이다.
문학사를 아름답게 수놓은 여러 고전소설 속에서 다양한 사랑의 속성을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 남미영 교수는 1597년 출간된 《로미오와 줄리엣》부터 2012년 출간된 《사랑의 기초》까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34편의 작품을 선별하여 사랑의 가치와 의미, 성장과 인생에 대해 심층적으로 해부한다. 사랑이 가진 인생의 선과 악, 그리고 건설과 파괴라는 양면적 속성을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폭포수처럼 뽑아낸다. 어렵지 않고 지루하지 않는, 상당한 재미를 선사하는 사랑학 에세이다. 머리 식히기에는 딱이다.


  
『지적 사기』 - 앨런 소칼 & 장 브리크몽, 한국경제신문사

절판됐다가 금년초에 한국경제신문사를 통해 재출간됐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이를 대변하는 학자들의 이론과 사상을 강도높게 비판한 책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진영의 논리는 마치 다양하고 입체적인 듯이 보이지만 결론적으로 객관적 사실에 대한 도전으로 귀결된다. 과학적 지식을 사회적 구성물(구축물, 작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합리주의 전통(인류의 진보, 보편적 가치, 과학적 발견, 이성에 대한 믿음 등)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그러나 경험적 검증과 동떨어진 이론적 담론에 불과하며 과학(적 지식)을 수많은 이야기, 신화, 사회적 구성물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는 인식론적·문화적 상대주의에 다름 아니다. 공저자는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진영의 목소리에 수류탄을 투척한 것이다. 약간의 지적知的 백그라운드가 있어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⑥ 『나의 한국 현대사』 - 유시민, 돌베개

출간된 지 얼마 안 됐지만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책에 대한 평가는 유보적이다. 내용을 공감한다기보다 한 번쯤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달필가 유시민의 신간이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 55년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조망했다. 저자는 1959년에 출생했다. 그의 출생년도부터 2014년까지의 시기를 다뤘다. 유시민의 정파적 색채는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가 여태까지 분출해왔던 국내 보편의 좌파적 역사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저자의 쿨한 서술은 눈에 띈다. 박정희 시기의 명암을 차분하게 구분하려는 자세는 진일보했다. 책 곳곳에 주석을 단 인용서적의 리스트를 확인하는 것으로도 이 책을 읽는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주관적인 해석은 아쉽다. 자전적 현대사 에세이 정도로 읽는다면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다. 역시 글빨 하나만큼은 죽인다.


  
⑦ 『혁명 I, II』 - 김탁환, 민음사

최근 드라마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혁명가 정도전의 이야기다.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끝까지 고려왕조를 지키려 했던 정몽주의 내면세계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엄밀히 말해 이 소설은 이성계가 해주에서 낙마하는 순간(1392년 3월 17일)부터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암살당하는 순간(1392년 4월 4일)까지 18일간의 비망록이다. 소설의 구성은 일관적이다. 매 장마다 이성계, 왕(공양왕), 정몽주, 정도전의 순서로 화자가 교차되며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더욱이 문체의 변화무쌍함과 편재성은 소설의 재미를 입체적으로 폭발시키는 원동력이다. 작가는 편지, 가전체 등 당시 신진사대부들이 애용한 다양한 문체를 통해 각 인물의 내면을 관통한다. 특히 유배지 영주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화자 정도전의 유쾌한 내면을 엿보는 맛은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민심이 들끓고 정부에 대한 회의가 높아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혁명의 본질을 흥미롭게 탐구해볼 수 있는 소설이다.



 

⑧ 『병자호란 I, II』 - 한명기, 푸른역사

병자호란은 치욕의 역사다. 왕이 무릎을 꿇었고 백성은 죽거나 다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 조선시대를 객관적이고 생산적으로 연구해왔다는 평가를 받는 우리시대 최고의 역사학자 한명기 교수의 역작이다. <광해군>과 더불어 당대를 다룬 책 중 최고의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한 교수의 저작은 객관적인 시각과 담담한 문체로 정평이 나 있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가해자인 청나라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잘못한 게 없는가. 국제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당쟁에만 휘말려 국력을 낭비한, 그리하여 연약하고 허접한 나라가 된 당시 조선 지도부의 무능과 허약함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민족적 수치이자 쪽팔린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병자호란의 역사는 작금의 한국사회에 녹록지 않은 화두를 던진다.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초강대국 사이에서 외교전쟁을 펼쳐야만 하는 대한민국의 현재상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병자호란의 교훈은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G2 시대에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나름 어렵게 선정한 열 권의 책이다. 책이 곧 답이 되진 않지만 책 속에서 답의 실마리는 찾을 수 있다. 좋은 책은 항시 답으로 가는 여정 위에 존재한다. 힘들고 난해한 세대일수록 책을 벗삼아야 한다. 이번 여름에 위의 책들이 좋은 벗이 되기를 다시 한 번 소박하게나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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