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 언젠가 어디선가 당신과 마주친 사랑
남미영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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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인간을 위시한 세계 내 모든 생명체의 원초적 갈망이자 기본능력이다. 인간의 사랑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원초적 갈망으로서 이성적 인식을 동반하고 의지에 의해 조종되면서 정감에 의해 깊이 각인되는 신비한 힘이다. 사랑 자체는 선한 것이지만 그것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양면성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사랑은 인간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선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거나 반대로, 악하고 파괴적인 방향으로도 이끌 수 있는 두 얼굴을 가진 총체적 기본 능력이다. 사랑의 실천 여하에 따라 인간의 성장이나 성공 혹은 정체나 실패가 결정되는 것은 사랑이 이러한 서로 상반되는 방향을 함께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모든 문화·예술의 원천적 주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랑을 다룬 꽤 괜찮은 책을 만났다. <사랑의 역사>는 문학사를 아름답게 수놓은 여러 고전들을 통해 다양한 사랑의 속성을 탐구한다. 저자 남미영 교수는 1597년 출간된 《로미오와 줄리엣》부터 2012년 출간된 《사랑의 기초》까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34편의 작품을 선별하여 사랑의 가치와 의미, 성장과 인생에 대해 심층적으로 해부한다. 사랑이 가진 인생의 선과 악, 그리고 건설과 파괴라는 상반되는 양면적 속성을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폭포수처럼 뽑아낸다.

   34편의 불멸의 고전들을 살피는 것은 이 책이 선사하는 가장 우선적인 선물이다. 34편 모두 찬란한 텍스트들이다.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희대의 소설들을 담았다. 저자는 해당작품의 간단한 줄거리와 인상깊은 구절을 담아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를 배려했다. 이미 읽은 독자는 재음미하고 재해석한다는 차원에서, 아직 읽지 않은 독자는 다이제스트 식으로 미리 살핀다는 차원에서 이 책의 구성은 모든 독자를 아우르는 아량이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랑을 탐구하는 다양한 시각에 있다. 저자는 첫 사랑, 열정, 성장, 이별, 도덕, 결혼 등 사랑과 연계된 다양한 각론들을 카테고리별로 묶어 일목요연하게 서술한다. 저자의 일방적인 논설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각 고전이 가진 권위를 밑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내용이 풍성하고 입체적이며 생명력있다. 독자는 책장을 넘기며 어느덧 자신이 《첫사랑》의 블라디미르,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 《제인 에어》의 로체스터가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독자로 하여금 작품에 침투할 수 있는 여력을 충분히 제공한다.

   또한 저자의 인문학적 공력과 유려한 문체가 빚어낸 문장은 사랑의 역사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좋은 안내자가 된다. 아무리 좋은 글감이라 하더라도 저자 자체의 내공과 결합하지 못하면 매력있는 글은 완성되지 않는다. 문학과 창작, 독서교육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저자의 경험과 이력은 꽤 매력적인 사랑학 리뷰집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인용 하나 어색한 게 없고 문장 하나 군더더기 없다. 근래에 읽은 고전 리뷰집 중에서 단연 손꼽을 만한 수준이다.

   책장을 덮은 후 새삼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왜 불멸의 작가들은 한결같이 사랑을 말하고자 했을까. 인류 예술이 탐구하고자 했던 포괄적 메시지는 왜 대부분 사랑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을까. 인간의 문화·예술사는 끊임없이 사랑을 천착해왔건만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 사랑조차 감당하지 못한 채 삶을 둥개고 있을까. 혹 사랑의 본성이 인간 너머에 존재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인간이 자아와 세계의 현존을 넘어 신으로 향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치열한 탐구과정 속에 사랑의 원형질이 놓여있는 건 아닐까. 이 지점에서 사랑은 고귀한 예술을 넘어 귀중한 은혜가 된다. 사랑을 인간이 절대로 임의로 지배하거나 간단히 조종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간만에 맘에 드는 책을 만났다. 별점이 짠 리뷰어로 정평이 나있지만 훌륭한 텍스트 앞에서는 호평을 망설이지 않는다. <사랑의 역사>는 몇 마디 말로 내려진 사전적 정의로 온전히 파악하기 힘든 사랑이라는 원천적 실재를 찬란한 문학작품 속에서 깊이있고 다양하게 탐구한 사랑학 참고서다. 별 네 개 이상이 아깝지 않다. 오랜만의 호평이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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