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무엇인가 - 정의가 묻고, 권력이 답하다 - SBS <최후의 권력> 21C 권력 대탐사 프로젝트
SBS <최후의 권력> 제작팀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민심의 불편함은 집단감정의 과잉 수준을 넘어 어느덧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등 전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식을 줄 모른다.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원인이 뒤섞여 있다. 개인의 책임, 부모의 심정, 국가의 역할, 개인과 사회 간의 소통방식, 언론의 수준, 권력의 속성, 현실 정치의 무가치성 등 우리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담론들이 복잡다단하게 엉켜서 개별 국민의 머리와 가슴을 붙잡았던 것이다. 이는 현재진행 중이고 상당기간 계속해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과 국가 간의 거리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제기된 주제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위시하여 세계의 모든 혁명은 이 주제의식 위에서 잉태되고 폭발되었다. '토마스 홉스 - 존 로크 - 장 자크 루소'로 이어지는 사회계약설의 계보는 인류가 전제왕정, 입헌군주정, 민주공화정을 거치며 개인과 국가가 어떤 관계로 권력을 분산해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앙시엥레짐(구체제)이 붕괴되고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을 위시한 전 세계는 본격적인 '국민국가'의 출현을 알렸다. 더욱이 2차 세계대전 후 제국주의의 붕괴와 함께 탄생한 140여 개의 신생독립국들은 다양한 형태로 권력의지를 분산시키며 작금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권력이란 무엇인가

   신간 <권력이란 무엇인가>는 이 같은 질문에 대한 해법을 찾아볼 생각의 틀을 제공한다. SBS가 제작하여 작년 한국PD대상 작품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최후의 권력>과 일란성 쌍둥이인 책이다. 당시 방송했던 내용과 방송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다듬고 추가하고 수정해서 기존 방송을 보완한 측면이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이끌고 가는 힘, 즉 '권력'의 의미와 속성,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의 구성은 간명하다. 21세기인 지금도 왕조사회를 이루고 있는 세 나라를 소개하며 국가권력과 동의어인 '왕'과 개별 국민으로서의 '나' 사이의 거리를 포착한다. 이어서 초강대국 미국이 건국 초기와는 달리 돈과 권력이 융합되는 금권천하의 병든 나라가 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오바마 케어'로 대변되는 미국의 고장난 의료제도의 현실을 고발한다. 다음 장에서는 산마리노 공화국과 스위스 연방의 작은 도시 글라루스에서의 직접민주주의의 예를 소개하며 개별 국민이 국가권력을 어떻게 직접적으로 행사하고 통제하는지 보여준다. 마지막 장에서는 결국 문제의 핵심과 출발은 정치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새로운 정치혁명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처음과 마지막을 감곡마을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장식한다. 감곡마을 할머니들이 마을 문제와 관련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직접 군수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전달하고 설득하며, 결국 그것을 성취해내는 과정을 들려준다. 이는 책 속에서 긍정적 예로 글감이 된 산마리노 공화국과 스위스 글라루스의 직접민주주의 사례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서 공저자 SBS '최후의 권력' 제작팀의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기본인식이 어떠한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수천만, 수억 명이 넘는 현대사회의 초대형국가 속에서의 국민권력 작동방식을 소규모공동체의 메커니즘으로 풀이하려 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고도자본주의 간의 복잡다단한 알레고리에 무지한 SBS 제작팀의 지력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SBS 제작팀은 책 말미 에필로그에서 "우리가 <최후의 권력>과 <최후의 제국>을 통해 현대 마천루가 빽빽이 들어선 워싱턴의 금권정치나 혹은 신문명의 대안이라 주장하는 베이징의 검은 구름에 절망하며 인류의 전통적 권력 형태를 찾아 나선 것은 결코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얘기하며 안전망을 쳤다. 기본적으로 전통 좌파가 향유하는 루소 식의 잘못된 시간관념에 대한 비판을 미리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보험제도 하나만으로 미국을 금권사회의 병든 사회로 규정하고, 다양한 형태의 촌락공동체와 소규모공화정의 예만을 반복적으로 거론하며 '직접민주주의'의 긍정성을 의도적으로 부각한 데에는 SBS 제작팀이 평소에 가져왔던 정치적·경제적 인식이 어떠한가를 어렵지 않게 엿보게 된다.

   사실 SBS뿐만 아니라 MBC, EBS 등의 공중파에서 반자본주의적 기제를 공유하고 마치 과거가 좋았던 것처럼 시계바늘을 예전으로 되돌리려는 시도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폐해', 혹은 '자본주의의 그늘' 등과 같은 표어는 이제 지겨울 정도가 됐다. 대안과 대책은 없고 자본주의의 극단적인 면만을 오려서 비판의 재료로 삼는다. 자본주의를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라는 체제 자체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유럽에서 전개되는 좌·우파의 정책적 대립도 자본주의의 전제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 실례로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을 보라. 두 정당의 정책 차이는 '빈부 격차'와 '경제력 독점'에 대한 문제만으로 집약되어 있다. 그 외에는 간주간성 안에서 서로 간에 포용적이고 공유적이다. 우리나라처럼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며 삿대질하는 진흙탕 싸움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렇게 된 데에는 국내 공중파의 역할이 컸다는 게 내 기본 인식이다.

   물론 이 책이 가진 힘은 존재한다. 권력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과정에서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역할과 책임'을 추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는 산마리노 국회의원들의 특색을 서술한 대목은 '참 권력'의 진수와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이다. 권력은 권리이기 이전에 책임이며, 직업이기 이전에 봉사라는 사실을 산마리노의 위정자들은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관존민비官尊民卑로 대변되는 조선시대 주자학의 쓰레기 유산에 아직까지 함몰되어 있는 한국 정치권력의 현주소는 '국민이 국가의 주권'이라는 이 나라 헌법 1조 2항의 정신을 요상한 방식으로 굴곡시키고 있다. 온갖 특권과 특혜로 얼눅진 이 나라 국회의원의 자화상을 보라. 이런 면에서 "권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함의된 가장 기초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은 이 책의 중요한 존재목적일 것이다.

   내일은 지방선거다. '6·4 지방선거'는 유례가 없는 전 국민의 슬픔과 분노 속에서 치뤄질 예정이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한다. 그러나 실상 국민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서두에 언급한 세월호 참사의 후폭풍은 국가권력의 본질이 국민, 즉 '나'에게 있다는 헌법적 권리가 실상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흐려지고 파괴되는지, 그리고 이런 현상에 분노한 다수 국민의 목소리가 총체적으로 어떻게 결합하여 발산하는지 극단적으로 드러난 아웃풋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이번 선거의 결과가 자못 궁금한 건 비단 나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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