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공부 - 2500년 인문고전에서 찾은
조윤제 지음 / 흐름출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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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만큼 계발서가 가진 구조론적 모순에 대해 차갑게 비판해온 리뷰어도 드물 것이다. 내가 계발서에 냉담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계발서의 형태적 구조가 카뮈식의 부조리不條理를 예외없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전형적인 계발서가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나라는 OECD국가에서 대한민국밖에 없다. 이런류의 책들은 교묘한 선동, 저자만의 기준, 무의미한 합리주의, 뜬구름잡는 달콤한 소리 등으로 인간의 행복을 이상세계에 대한 잠시성(暫時性, transiency)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는다. 독자는 읽는 순간만 환상의 열정에 사로잡힐 뿐이다.

   그러나 가끔 그럭저럭 읽어볼만한 실용서를 만나게 될 때도 있다. 물론 달콤한 이야기로 무장했다는 점에서 다른 계발서와 별반 다를 건 없다. 하지만 주제를 추출하는 방식과 내용을 전개해가는 수준에 있어 가볍지 않은 밀도가 포착된다는 점에서는 구별이 된다. 대개 인문학적 재료와 방법을 적용한 책들이 이들 부류에 속한다. 즉 같은 계발서라 하더라도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는 내용상의 내공이 존재해 있는 것이다.

   조윤제의 <말공부>가 바로 그런 책이다. 분명한 계발서지만 인문학적 콘덴츠를 적절히 융화시켜 꽤 괜찮은 실용서를 만들어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일한 저자의 경험이 실용적인 텍스트를 만드는데 도움이 됐다. 뻔한 얘기지만 지루하지 않게 글을 쉽고 유려하게 뽑아내는 저자의 공력이 눈에 띈다.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쉽고 실용적인 계발서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말(言語)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2500년 인문고전에서 찾은 말 공부'라는 강력한 책 제목은 이 책이 인문학을 재료로 삼고 있다는 점을 홍보한다. 『논어論語』, 『맹자孟子』,『사기史記』 등 동양사상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불멸의 텍스트를 통해 '말 공부'의 각론을 훑는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어떻게 말하고 소통해야 하는지 고전의 가르침과 예화를 통해 관통한다.

   이 책의 매력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내용을 동양고전 속에서 한 토막의 글감을 추출하여 재미있게 버무려낸 데 있다. 본격 실용서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서술은 과하지도 않고 부족치도 않은 적정선을 잘 포착한다. 여기에 매끄러운 문장이 결합되어 책의 주제와 카테고리에 맞는 적확한 힘을 지니게 됐다. 온갖 자극적인 미사여구로 도배가 되어 있는 서점가의 대부분의 계발서들과는 격을 달리 한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가장 큰 이유는 현실 세태에 대한 시의성에 있을 것이다. 21세기는 그야말로 언어의 홍수 시대다. 작금의 대한민국도 소통의 중요성이 화두가 되어 있다. 여기저기서 말이 통하지 않고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작게는 부부 사이에서 크게는 국민과 대통령 사이까지, 현실 한국은 극심한 소통부재로 적지 않은 피로를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말의 공부를 전면에 내세운 이 책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며칠 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했다. 짧지 않은 분량에 눈물까지 흘린 담화였지만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나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말할 때 감정에 복받쳐 우는 건 어린아이도 할 수 있다. 소통의 제일 중요한 원칙은 "꼭 해야만 하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담화에 엄청난 조직 개혁과 눈물의 사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반응이 미온적이었던 것은 '꼭 해야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사회가 이토록 극심한 소통부재에 직면한 본질적인 원인도 해야 할 말은 하지 않고 불필요한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낸 데서 온 후유증이 아닐까. 청와대 참모진은 이 책을 대통령에게 추천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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