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립다 - 스물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
유시민.조국.신경림 외 지음 / 생각의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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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불특정다수가 읽는 서평이기 때문에 존칭은 생략) 만큼 많은 사랑을 받은 정치인이 있을까. 동시에 많은 욕을 받은 정치인이 또 있을까. 지극히 나이 드신 분을 제외하고 한 번쯤 좋아했을 법한 정치인이 바로 노무현이다. 좋아할 만한 충분한 매력을 가졌고 동시에 실망할 만한 충분한 이유도 존재했다. 그가 서거한 지 어느덧 5년이 되어가는 시점이다.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영화 <변호인>으로 그를 재인색하게 된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지만 최근의 어지러운 시국 탓도 있겠다. 그 어느 때보다 주변에서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자가 많이 회자된다.

<그가 그립다>는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수필집이다. 노무현 5주기 추모집의 성격을 띤다. 많은 저자들이 참여했다. 자칭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이었던 작가 유시민을 위시하여 총 22인의 글을 담았다. 집필에 참여한 22인의 이력은 가지각색이다. 작가, 평론가, 교수, 방송인, 연극인, 이발사, 요리사 등 우리사회의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다양한 빛깔을 담았다. 한 권의 소설집처럼 독립된 에세이들은 주제와 문체가 각기 다르다는 점에서 개별성을 가진다.

그중 몇몇 글이 눈에 띈다. 당선 전부터 인연이 되어 청와대 전속 이발사와 요리사가 된 두 저자의 글은 순박하고 따뜻해서 좋다. 이들의 글은 재임 당시 권위와 허례허식 없는 노무현의 소박한 인간미를 잘 소개한다. 특히 퇴임하는 날 함께 기차를 타고 사저로 가는 도중에 필요한 도시락을 준비한 요리사의 애틋한 일화는 훈훈하고 애잔하다. 결국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사람사는 세상의 한 단면일 것이다.

그러나 실린 글이 모두 읽을 만한 것은 아니다. 몇몇 저자들은 이 책의 존재목적인 노무현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아닌 개인의 정파적 입장을 토로하는 함몰성을 보인다. 곱게 읽기 힘든 부분도 적지 않다. 특히 저자 중 어느 정신 나간 교수는 "노무현이 매우 후진 국민들 틈바구니에서 고생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 국민이 갖기에는 지나치게 수준이 높은 대통령이었고, 그로 인해 시대와의 불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노무현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이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책을 읽고 나이를 먹어가며 깨닫는 명확한 진리가 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한한 능력과 잠재력의 인간이지만, 동시에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불가피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누구나 장단점을 가진다.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직도 우리사회는 역사와 인물을 천착함에 있어 극단적인 진영주의에 함몰되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잘한 점과 못한 점을 동시에 놓고 입체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지력과 판단력이 결락되어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정치인을 완전무결한 신의 연역성 위에 올려놓고 모든 비판과 반론을 굴곡시키는 행태는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적으로도 옳지 않은 짓이다.

나 또한 노무현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잘못과 한계까지 무조건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대상이 가진 명암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안에서 그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거리두기가 결여된 정치인 팬클럽은 교조적 신격화의 경향을 띠게 되고 종국적으로 보편 국민과 반대세력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분명한 사실은, 노무현은 실패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노무현의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들여다봐야 한다. "노무현이 매우 후진 국민들 틈바구니에서 고생했다"고 주장한 얼빠진 교수의 지성과 현실인식에 적지 않은 짜증이 밀려온다. 사랑과 그리움은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다.

내가 노무현을 좋아했던 건 그가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행동양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땅의 어렵고 소외된 이들의 처지를 마치 자기 일처럼 관통하려 했던 그의 순수한 마음과 패기를 사랑했다. 또한 그것을 뚫고 나가는 소신과 용기도 존경했다. 적어도 '좌파'를 하려면 노무현처럼 해야 한다. 19세기 원류 좌파들은 인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을 가진 휴머니스트들이었다. 지고한 평등의식으로 무장한 따뜻한 박애주의야말로 진보좌파가 가져야 할 핵심가치인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인간 노무현의 진심과 열정을 나는 한없이 사랑한다.

물론 대통령이 된 후에는 많이 실망했고 미웠다. 그러나 그에 대한 향수는 내 가슴 한 구석의 작은 방 안에 오롯이 보관돼 있다. 현실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우리에게 이토록 인물이 없는가 하는 푸념을 하게 될 때, 가끔 나는 가슴속 작은 방 안 노무현의 얼굴을 그린다. 신간 <그가 그립다>는 이 그리움을 애틋하게 불러일으키는, 그러나 몇몇 저자의 정신 나간 주장으로 맥이 빠지는, 그래서 부득불 선택적으로 마음에 담을 수밖에 없는, 명과 암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런 책이다.

그러나, 나도, 노무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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