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전집 특별판을 질렀다. 오전에 '네24'에서 결제한 것이 보기 좋게 당일 저녁에 집에 도착했다. 2010년 카뮈 작고 50주기를 기념하여 출판사 책세상에서 출간한 것이다. 7권의 두꺼운 양장본으로 구성됐다. 사진에세이집을 제외한 전체 19권을 연대순으로 재배치했다. 연보, 해설, 옮긴이글을 실었다.

   이미 <이방인>을 위시하여 <시지프 신화>, <페스트> 등을 김화영의 번역으로 읽었다. 카뮈의 문학세계를 보다 깊게 천착하기 위해서는 그 외의 작품들을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가장 자유로운 정신, 가장 첨예한 지성, 가장 명징한 언어, 카뮈의 세계를 연대순으로 읽을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 큰 축복이다. '부조리 문학(不條理文學, literature of the absurd)'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장을 열어 현대소설의 가장 전범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천재 작가의 숨결을 간절히 느껴보고자 했다.

   고백하자면 최근 들어 더욱 카뮈가 읽고 싶어졌다. <이방인> 번역 논쟁이 이를 부추긴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존재했다. 최근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소란들이 기본적으로 카뮈식의 부조리(Absurdity, 不條理, L’Absurde)를 내재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개인과 사회 사이에 악질적으로 존재하는 극심한 인식론적 상대주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카뮈는 개인의 부조리와 사회의 부조리를 구분하지 않는다. 스웨덴 한림원은 1957년 노벨문학상을 카뮈에게 수여하면서 아래와 같은 멋진 헌사를 남겼다.


   "카뮈는 세계 속 인간의 조건을 특징지음에 있어 거기에 모든 개인적 의미(personal significance)를 부정하고, 오로지 이를 부조리(absurdity)를 통해서만 바라봄으로써, 또한 실존주의라는 철학적 흐름을 대표하게 됩니다. (…) 이러한 점이 <이방인>을 유명하게 만들어줍니다.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직원인 주인공은, 부조리(absurd)한 사건의 연속 끝에 아랍인을 죽입니다. 그러고는, 자기 운명에 무관심(indifferent)한 채,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한편, 마지막 순간에, 그는 합일하여 무기력에 절은 수동성으로부터 탈출합니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병들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사회의 오류와 한계는 무엇인가. 개인의 문제인가 국가의 문제인가. 국민으로서 각 개인은 건강한 가치관을 확보해왔는가. 국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개인에게 철학은 존재했는가. 정치는 왜 필요한가. 정치인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 '자유'와 '평등' 중에 무엇이 우선하며 그 사이에서 '박애'는 어떤 형태로 발현하는가. 자본주의는 그 자체의 구조만으로 절반 이상의 부정不正을 지닌 오류 시스템인가. 개인의 책임감과 윤리의식은 어디서부터 태동하는가. 우리사회의 집단주의(集團主義, collectivism)는 위험수위인가. 그렇다면, 종합적으로, 이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인가. 수없이 많은 질문들이 용솟음친다.

   이 지난하고 서글픈 질문들을 냉정하게 관통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카뮈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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