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 -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인문학이 이슈다. 너나할 것 없이 인문학을 얘기한다. 인문학을 배우고 전파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난리통이다. 특히 서점가는 '인문학'이라는 문구를 표지 전면에 배치한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문학이 위기라느니 빈곤이라느니 하는 우려가 팽배해 있었던 만큼 작금의 인문학 열풍은 다소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사실 말은 바로 하자. 우리사회가 언제부터 인문학을 중요시해왔던가. 외적인 열풍 현상과 내적인 중요시함은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오직 대학입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 나라 중등교육의 현주소는 궁극적으로 인문학과는 거리가 멀다. 고등교육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철학과 역사는 전공자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소외된 분야였다. 일반인이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나 칸트의 인식론의 체계를 머릿속에 담고 있기란 여간해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환경 탓이다. 이런 배경에서 TV와 신문, 서점에서 오버스럽게 인문학을 외쳐대고 있는 풍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좋은 것이다. 위기이자 빈곤인 인문학 분야에 대한 관심을 북돋우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질(質, quality)'에 있다. 과연 서점가에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인문학 도서가 진정한 인문학을 다루고 있는 책들일까. 즉 인문학이라는 보편적 카테고리에 담을 만한 내용이냐 하는가다. 서점에서 인문학을 전면에 내세운 다수의 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맹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컨덴츠의 질과는 무관하게 자기계발이나 처세술을 인문학으로 포장해놓은 출판사들의 카피문구는 그야말로 못 봐줄 코메디다.

   인문학은 자기계발이 아니다. 처세술은 더더욱 아니다. 인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자면, 언어학ㆍ문학ㆍ역사ㆍ법률ㆍ철학ㆍ고고학ㆍ예술사ㆍ비평ㆍ예술의 이론과 실천, 그리고 인간을 내용으로 하는 학문의 포괄적 집대성이 인문학인 것이다. 그렇기에 인문학은 필히 지력의 무게와 깊이를 내재한다. 인문학의 보편성 안에 자기계발이나 처세술을 무리하게 적용시키려는 일부 저자와 출판사 들의 행태가 짜증나서 못 견디겠다. 더이상 인문학을 남용하거나 농락하지 말라.

   베스트셀러에 인문학 도서가 몇 권 올라 있다. 그중 광고 카피라이터 박웅현의 <여덟 단어>가 눈에 띈다. 오랜만에 베스트셀러에 재진입했다. 최근 TV와 영화에서 소개된 이유 때문인 듯하다. 저자 박웅현은 이 책에서 '인문학'을 얘기한다.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자못 진지한 부제를 책 전면에 배치했다. 여덟 단어를 주제로 하여 젊은이들에게 강의했던 저자의 강연 내용을 묶어서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저자는 자존自尊ㆍ본질本質ㆍ고전古典ㆍ견見ㆍ현재現在ㆍ권위權威ㆍ소통疏通ㆍ인생人生 등 살아가면서 꼭 생각해봐야 할 여덟 가지 단어를 제시하며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조언한다.

   이 책의 강점은 어렵지 않다는 데 있다. 책의 태동이 되는 저자의 본래 강의는 2~30대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했다. 주제의 포괄성과 내용의 전달방식이 상당히 평이하다. 대학생보다는 오히려 중고생이 읽을 만한 책이다. 저자의 경험, 예술작품 관련 예화, 고전의 소개, 작가의 명언 등을 저자 자신의 사유로 뒤집고 비틀었다. 저자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존어체는 강의의 현장감을 살렸다. 기술적으로 내용과 좋은 궁합을 이룬다. 전달방식이 따뜻하다. 독자는 마치 학생이 된 것인양 저자의 강의 속에 포근하게 안길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의 공허함이 문제다. 저자가 선택한 여덟 단어는 모두 묵직하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풀어내는 내용에 있어서는 어디서도 들을 수 있을 만한 뻔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인문학이라면 태동적으로 소유해야 할 최소한의 지적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가볍고 미지근하며 평범하다. 특색이 없다. 사유의 밀도와 지력의 중량이 포착되지 않는다. 책 곳곳에서 자기계발서와 다름 없는 가벼운 맥락이 자주 확인된다. 보다 신랄하게 말해서 이 책은 인문학과 자기계발 사이에 어중간하게 위치한, 텍스트로서의 자아의 정체에 몰이해적인, 지극히 개성 박약한 강연집이다.

   마르크스는 지식인의 임무를 '해석'이 아닌 '변혁'으로 설파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지식인의 힘은 해석과 반영을 넘어 변혁에 다다를 수 있는 지력과 용기에서 나온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외연만 요란한 인문학 타령은 불필요하다. 지적 소음이자 종이 낭비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관통하는 속이 꽉 찬 컨덴츠가 필요하다. 이를 텍스트로 풀어내는 힘은 오직 저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해석'에 머물러 있는 저자의 역량은 아쉽다. 서두부터 정황하게 언급한 인문학의 위기, 혹은 빈곤에 직면한 현실 한국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요컨대 박웅현의 <여덟 단어>는 인문학의 정수를 느끼기에는 역부족인 딱 고만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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