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언어 - 한국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사상 정치용어들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서
양동안 지음 / 북앤피플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극심한 사상 대립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못지않은 좌·우익의 극렬한 사상 전쟁의 도가니 속에 빠져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영역에서 좌익과 우익의 대립은 치열한 방식으로 전개되며 국민의 삶을 옭아매고 있다. 무엇이 이토록 대한민국을 사상 전쟁의 한복판으로 만들었는가.

   물론 사상의 균형있는 대립과 절제된 토론은 건강한 사회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의 모습은 균형과 절제와는 거리가 먼 극단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객관적 지식이 호도되고 역사적 사실이 굴곡되는 극심한 인식론적 상대주의에 빠져 있다. 좌든 우든 극단적인 것은 반드시 악의 결과로 귀결된다. 2차 세계대전의 교훈이 명징하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스탈린과 히틀러가 만나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사회에서 사상 대립과 담론 구조가 극단화되면 될수록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고 양쪽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천착할 수 있는 중용적 지성과 건강한 양심은 점점 더 많아져야 한다.

   양동안 교수의 <사상과 언어>는 바로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집필된 책이다. 저자는 우리사회 곳곳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사상·정치용어들의 정확한 의미를 포착한다. 용어 탄생의 역사성과 현재의 통용 상황의 국제성을 논증으로 각 용어의 정확한 개념을 알려준다. 일반 국민은 물론 정치인, 언론인, 심지어 지식인마저도 사상과 언어 사이의 괴리가 많은 만큼 이 책이 교정해줄 수 있는 대상은 꽤 폭넓다.

   사상과 언어는 왜 일치해야 하는가. 저자의 말대로 사상과 관련된 용어들은 사물인식과 사유의 핵심적 기호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물인식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치성과 정파성에 유독 예민한 국내 여론의 특질을 감안할 때 사상·정치용어들에 대해 정확한 의미를 찾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 힘있고 건강한 언어생활의 첫 출발은 '바른 말'에서 시작된다. 언어가 담론을 구성한다는 점을 주지한다면 올바른 언어생활이 사회의 건강한 담론문화를 형성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 대한민국 만큼 '좌파·우파'와 '진보·보수'의 프레임을 남용하는 사회도 드물다. 그러나 문제는 좌·우파의 개념도 정확하게 모른 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언론매체들과 지식인 사회에서 '익翼: wing - 당黨: party - 파派: faction'로 일목요연하게 단위를 구분하여 사용되던 합리적인 정치세력 호칭법을 무시하여 사용해온 결과다. '진보'와 '보수'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진보'라는 용어가 좌익의 전유물이 되어 있다. '좌익(파)=진보'라는 말 같지도 않은 공식이 우리사회의 여론 구조 속에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현실정치에서 '진보주의:progressivism'라는 말은 통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미국의 'liberal'을 국내에서는 'progressive'와 동일하게 '진보적'으로 부르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무지의 횡행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보수주의(conservatism)는 개념화가 확립되어 하나의 완전한 체계를 갖춘 사상이다. 그래서 '보수주의'라는 용어는 가능하다. 그러나 '진보주의'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의 뜻은 '보다 좋은 상태로의 변화'이다. 그렇기에 진보는 보편적 명사로서의 의미를 가진 것이지 어떤 하나의 객관적인 사상체계로 지칭될 수 없다. 이론적으로 성립하지 않을 뿐더러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한국에서만 사용하고 있는 용어다. 저자는 이러한 오용 사례를 풍성하고 깊이있는 설명으로 바로잡는다.

   이뿐만 아니라 이 책은 '자유주의·신자유주의', '민주주의·시장경제', '반공·메카시즘', '사회주의·공산주의', '민족해방·민종민족주의' 등 국내에서 잘못 사용하고 있는 다양한 사상·정치용어들을 해부한다. 정치인 중에서도 '사회주의(社會主義, socialism)'와 '공산주의(共産主義, communism)'의 차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가 다수인 한국의 현실에서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각 용어의 중요성을 감안한 순서적 배치가 돋보인다. 매 장마다 깔끔한 설명을 통해 잘 정리했다. 정치학 교수다운 저자의 흠 잡을 데 없는 기술과 객관적 설명이 강점인 책이다. '바르고 고운 말'을 위해서라도 일독이 필요한 책이다.

   어느 누구보다 이 책을 우선적으로 읽어야 할 분들이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학력과 무관하게 지력 자체가 미달되는 이 나라 국회의원들은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사전 시험을 쳐서 합격자에 한해서만 국회의원 입후보 자격을 줘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은 마냥 반가운 보물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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