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와 길을 걷다 -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동화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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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오소희를 처음 만난 건 꽤 오래전의 일이다. 당시 그는 세 살배기 아들과 함께 한 터키 여행을 에세이로 출간한 직후였다. 문단에 갓 데뷔한 시기였던 것이다. 광화문의 대형서점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대면했다. 인근 삼청동의 유명한 수제비 집에서 식사를 했다. 식후엔 차를 마시며 대화꽃을 피웠다. 우리는 차츰 서로를 탐색해갔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한 채 십 여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에까지 도달해 있다.

   사석에서 작가와 단둘이 만나는 일은 독자에게는 분명한 특권이다. 그러나 그 특권은 섬세하고 예민한 수고를 담보할 때만 아름답다. 몇몇 작가들과 사석에서 교류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 그러면서 깨달은 건 '작가의 우주'를 맨얼굴의 형식으로 받아낼 때 독자는 무언가의 예민한 감각으로 무장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텍스트 바깥의 현실공간에서 작가와 조우하게 될 때 독자는 반드시 이러한 수고로움을 겸손한 마음으로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작가와 독자는 '디테일의 시공간차'라는 묘한 권력관계 속에서 전쟁을 벌이는 독특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복수의 굴절력을 가진 초공간의 우주이다. 작가는 오직 '언어'라는 제약된 차원의 도구로써 '그 우주'의 각론을 '이 우주'의 총론으로 편입시킨다. 독자는 '이 우주' 속에서 '그 우주'를 탐구하며 또 다른 '저 우주'의 스펙트럼을 자신의 현실 안으로 구속시킨다. 필연성을 띤 '그 우주'의 고유한 디테일은 다수 해석성을 관통하여 개별 독자의 심연 속으로 배달된다. 이에 대한 교감과 천착이 준비되지 않은 작가와 독자 간의 '비텍스트화'는 오히려 두 존재 사이에 불균형적 애매성이 채워지는 요인이 된다. 그런 차원에서, 처음으로 고백한다. 나는 작가 오소희와의 '거리두기'에서 항시 이 모호성을 극복할만한 여백을 유지해왔다. 그에 대한 내 사랑의 성상性狀이 바로 이 대목에서 가시화된다.

   내가 사랑한 이상으로 그는 텍스트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진보적으로 불태웠다. 오소희 전작全作을 완성해온 나에게 그의 비블리오그래피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한다. '터키'에서 '동화'까지 여태까지 쏟아냈던 그의 모든 텍스트들은 시공간의 엄연성을 무력화시키며 나에게 '현재'라는 동일선상의 사랑을 요구하며 유혹한다. 그랬다. 나는 언제나 그의 텍스트 안팍을 현재의 관점으로 사랑해왔던 것이다.

   작품의 진화적 활화活火를 끊임없이 추구해온 그의 현재성은 어느덧 동화의 세계까지 도달해 세상에 찌든 내 피로와 무력을 포근하게 감싼다. 그의 신간 <어린왕자와 길을 걷다>는 동화 리뷰집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열여덟 편의 동화를 스무 개의 리뷰로 해설한다. 작가는 각 동화마다 자신만의 주석을 달아 인간 삶의 다양한 주제를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로 걸러낸다.

   책의 얼개는 간단하다. 동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작가의 경험을 재료로 하여 자신만의 주관적 해석을 빚어낸다. 여행과 일상에서 추출된 다양한 에피소드는 작가가 지닌 고유한 표현력을 통해 독자에게 스킨십한다. 그의 따뜻한 문장은 독자로 하여금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경탄하게 하고,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위로하게 하며, '행복한 청소부'를 경외하게 한다.

   이 책의 힘은 각 동화가 가진 메시지의 본질에 작가 자신의 삶을 녹여낸 데 있다. 책 곳곳에서 작가는 자신의 삶의 족적을 그대로 투영시킨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편에서는 시댁 식구의 이야기를, <안녕, 나의 별>편에서는 강아지 '별이'의 이야기를, <꾸뻬 씨의 행복여행>편에서는 남편의 이야기를, 각 편마다 여러 지인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동화의 아름다운 본래성을 현실세계 차원에서 승화시킨다. 이러한 작가의 시도는 동화가 비단 어린아이만의 전유물이 아닌, 오히려 어른이라서 친밀할 수 있는 텍스트라는 믿음을 직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눈물을 많이 흘리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은 내 눈시울을 적셨다. 원작 동화의 본래성은 그대로 해석자 오소희에게 전이됐고 그의 삶으로 한결 두꺼워진 감동의 피드백은 해석자의 두께를 넘어 독자 다윗에게 전도되었다. 책의 막장을 덮은 후 나는 한동안 멈칫했다. 서른 중반을 지나 이제 마흔으로 향하는 내 인생의 중간 여정을 살폈다. 한 여자의 아내가 된, 무엇보다 두 여자의 아빠가 된 내 자신의 현존을 진지하게 응시했다. 난 어른인가. 이쯤이면 어른이 된 걸까. 혹 아직도 어린아이는 아닐까. 깊은 사유 속에서 난 간절히 기도했다. 내 영혼이 숭고한 방식으로 내 삶을 파고들어 자기공명영상 검사를 하듯이 단층으로 해부해서 '참 나'를 알 수 있기를.

   항상 그랬다. 작가 오소희는 그의 작품 속에서 나에게 끊임없이 내 속도의 점검을 주문했다. 더 나아가 시간이 가진 입체적 기작에 겸손할 것을 조언했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해진다. 진정한 인생의 찬탄은 모든 시간대가 현재에서 통합되는 것이다. 삶의 감도가 높아지면 누구도 과거와 미래를 끌어당겨 현재라는 도마 위에 올려놓고 요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다 한 가지 맥락에서 이해되면서 감사와 기쁨과 행복의 소유가 폭포수처럼 샘솟아지는 것이다. 오소희는 항시 이 깨달음을 나에게 촉구하고야 만다.

   서평의 서두로 돌아가자. 작가와 독자는 결코 호락호락한 사이가 아니다. 둘 사이는 사랑이 있되 긴장이 있고 공감이 있되 거리가 있다. 독자는 작가의 초공간적 우주를 견뎌낼 힘을 지녀야 한다. 이 준비가 안 된 독자는 작가와의 '싸움'에서 백전백패한다. 작품에 대한 작가의 고통은 질량이 그대로 보존돼 종국 독자의 고통으로 치환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작가와 독자는 함께 성장한다. 이는 두 존재가 기묘한 사랑의 방정식 관계에 놓여있다는 명징한 알리바이가 되는 것이다. 고백컨대, 작가 오소희를 통해 나는 정말 많이 성.장.했.다.

   신간 <어린왕자와 길을 걷다>는 내게 유독 감동적이었다. 동화를 다룬 짧은 분량의 책임에도 녹록지 않은 감동을 선사받았다. 서평쓰기가 다소 힘들었다. 한 문장 쓰기도 어려웠다. 그저 시간을 담보로 해서 끈질김만으로 마지막 문단에 도착했다. 이제 서평을 정리할 때가 됐다. 전작을 모두 포괄하는 헌사로 서평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그렇다. 오소희의 텍스트는 내 마음의 해부학이며, 오묘한 정신분석학이며, 시대를 초월한 상담학이며, 인생의 진행속도를 쥐고 흔드는 영혼의 경영학이다! 그가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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