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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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이 또 책을 냈다. 평소 그를 좋아하고 그의 책을 탐독해왔기에 이번 신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구독했다. 금번 출간의 목적과 책의 성격은 기존과는 다른 특수성을 가진다. 정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은 NLL 대화록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 위한 목적이 이 책의 집필 이유다. 특정 사건에 대한 정치적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라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이미 공개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전후 문맥에 맞춰 풀이했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전혀 없었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NLL 사건에 대한 내 견해부터 말하자. 나 또한 대화록 원본 전문을 읽은 사람으로서 이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은 없었다.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이와 반대된 생각을 갖는다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정치적 반대편에 위치한 자들의 공격은 다분히 악의적인 면이 있다. 이는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과 양심의 문제이다. 원본을 읽지 않아서 몰랐다면 게으른 것이고 읽었음에도 정리되지 않았다면 무지한 것이다. 이를 처음으로 제기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정문헌 의원과 서상기 의원은 사실과 다른 거짓 발언을 했다. 의도와 상관없이 지금이라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도리다. 두 사람의 발언이 만들어낸 파장을 감안하면 국민에게 사과하고 의원직을 사퇴하는게 적절한 처사로 보인다. 그게 참된 보수의 모습이 아닌가.

   세간의 많은 사람들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읽어보지도 않고 자신의 견해를 내뿜는다. 특정 정파나 일부 언론의 목소리에 편승해 자신의 주관을 피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개인마다 정치적 자유가 있고 입장차가 있으며 각기 다른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그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실관계의 객관성을 가늠하는 역량은 감정이 아닌 이성의 영역이 추동하는 법이다. 팩트를 발견하고 추출하는 기능은 따뜻한 가슴에 있지 않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차가운 머리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보수·우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나조차도 NLL 발언의 진실과 관련된 입장은 분명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NLL 포기 발언이 없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굳이 유시민의 책과 강연이 없어도 이미 공개된 정상회담 대화록을 진지하게 일독만 해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분명한 사실관계가 정파성이라는 이기적 용광로 속에서 모호하고 부적절한 과정을 통해 침해받고 왜곡됐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저자 유시민은 이러한 나와 엇비슷한 감정에서 책을 썼을 것이다. 더욱이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라 불릴 정도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극진한 그로서는 현실 정국에서 벌어지는 코메디와 같은 사태를 묵과할 수 없었을 게다.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한 한계 또한 지니고 있다. 'NLL 대화록 설명서'라는 본래의 목적을 넘어서 당시의 정상회담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다. 잘한 부분도 없진 않겠지만 못한 부분이 훨씬 더 많았던 게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여론조사를 보라. 이는 국민 다수의 견해다. 평소 참여정부의 공과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구분해왔던 저자였기에 중용을 잃어버린 서술로 자화자찬한 그의 서술은 한없이 아쉽다 하겠다.

   사실 증명을 위한 증거 제시와 그것을 논증하기 위한 논거 대입의 적절성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증명하려는 사실이 분명한 '사실'일지라도 논증방식이 설득력을 잃게 되면 증명의 고결성은 침해받는다. 유시민의 논조는 간단하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반전과 전율이 뒤섞인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는 것이다. 노무현의 정면돌파와 김정일의 호탕함이 빚어낸 낭만적인 무대였다는 게 유시민의 일관된 입장이다. 책 내용의 절반 이상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찬양으로 도배하고 있다. 유시민의 말대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찬양할 게 많은 축복의 잔치였을까. 저자의 견해에 동의할 수 있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만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형편없는 점수를 주고 있는 사람이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정국을 차갑게 만든 NLL 논란의 빌미도 노 전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부분을 꺼내서 반대편으로부터 오해를 사게 만들었다. 대북관계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일부 세력들은 NLL 추후 협상 명분을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남북불가침부속합의서'에서 찾는다.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로 명시돼 있는 부속합의서 10조 항목을 NLL 협상 명분의 근거로 들이대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역사적 배경과 의미, 그에 따라 존재하는 본래적 전제를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로 대변되는 공산권의 몰락으로 인해 체제유지에 위협을 느낀 북한이 벼랑 끝에 몰려서 시작한 협상이었다. 당시 북한의 GDP는 마이너스였다.
노태우 정부는 민족자존과 번영을 위한 '7.7 선언'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북방외교를 펼치고 있었다. 이에 체제 위협을 느낀 북한 측은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했고, 노태우 정권과 미국은 이에 동의하여 "한반도 내에 핵무기는 없다"고 선언하며,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의 전제가 성립된 것이다. 결국 남북은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을 각기 서명 및 발효하게 된다. 즉 남북기본합의서는 애당초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시작된 협상이었던 것이다.

   북한은 1999년 제1차 연평해전을 일으키고 서해 5도 한참 밑에 내려온 '조선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2000년엔 후속조치 성격으로 '서해 5도 통항질서'를 발표하며 남북기본합의서를 위반했다. 또한 부속조항에 있는 군사훈련 협의사항도 전혀 지키지 않았다.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 조항 등을 위반했기에 그 부속합의서의 협의사항을 남측이 이행할 의무는 전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햇볕정책을 주창했던 김대중 정부에서조차 NLL을 논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7년 정상회담 이후 벌어진 국방장관회담 등을 통해 NLL 협의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북이 버젓이 핵 개발과 핵 실험을 실시하고 합의 내용의 군사관련 지침사항을 일관되게 무시해오고 있는데 왜 우리가 먼저 몸을 낮춰 협상 테이블에 올려줘야 하는가. 더욱이 서해 앞바다를 실질적으로 북에 내주게 되는 '등면적 공동어로수역'을 역대정부 최초로 논의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짜증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2차 남북정상회담의 내용과 가치를 확대 포장하고 예찬한 저자의 서술은 다수 국민의 정서와는 배리된 초라한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냉철하면서도 입체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북한'이라는 의미는 자유와 인권의 부재 가운데 굵주림에 허덕이는 우리 동족이 아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명명되는 북한 권력의 지도층을 두고 얘기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정통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다. 김일성이 창시하고 김정일이 이론적으로 발전시켰다는 북한의 혁명사상인 '주체사상主體思想'은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와 궤를 달리 한다. 사유재산을 부정한다고 해서 무엇이든 마르크시즘의 카테고리로 편입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북한 군부지도부는 마르크스의 'M'자도 모르는 세력이다. 단언적으로 북한이라는 집단은 김씨 3대 세습독재체제로 근거되는 왕조체제인 것이다.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엽기적인 독재체제를 오직 선군정치와 공포정치의 방식으로 공고히 유지해가면서 인권을 말살시키고 인민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북한 정권을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대한민국이 어떻게 지지하고 대변할 수 있는가. 이는 공산주의의 기본 이념에 대한, 아니 북한 체제가 갖고 있는 본질적 오류에 대한, 더 나아가 숭고한 인간성의 숙지에 대한 깊은 이해에 달려있는 부분이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이 부분에 대한 중량감과 숙연성肅然性을 너무 낮게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게 문제다.

   책에 피력된 유시민의 대북관은 앞서 언급한 한국 진보좌파세력의 중론과 그대로 부합한다. 그는 북한 체제가 가진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최대한 좋게좋게 구슬리면서 인내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세 살배기 어린아이를 다루듯 참고 또 참으면서 달래고 퍼주며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개인이 아니다. 북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서라도, 국가 간 외교는 인간 사이의 교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다. 집단(집단주의集團主義, Collectivism)이 무서운 것은 개인보다 훨씬 많은 다양성과 의도성, 개별성과 모호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문서로 협의된 약속도 지키지 않고 지속적인 도발로 전쟁 분위기를 고취시키는 북에게 '햇볕'이라는 어쭙잖은 용어를 전면에 배치하며 퍼주기식 정책으로 일관했던 진보정권 10년의 대북정책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유시민은 적어도 국민의 대북정서가 어떤 분포로 형성되어 있는 지에 대해서는 공부가 덜 된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기조 위에서 쓰여졌다.

   서평을 정리하자. 유시민의 신간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이 없었다는 논증을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해설하는 기능을 지닌 책이다. 그 기능에는 충실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나간 게 문제였다. 지나친 미화와 불필요한 논거, 그에 따른 편협한 시각의 의견개진은 대부분의 국민의 대북정서와는 멀리 떠나 있다. 읽는 동안 눈살이 찌푸러졌다. 굳이 긴 분량이 필요한 책은 아니었다. 쓸데없이 지면을 많이 할애했다. 유시민에게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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