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먼지가 많이 쌓였다. 예전보다 책을 읽지 못하는 환경적인 배경도 있지만 아무래도 결혼 이후에 시간상의 한계로 후기를 남기지 못한 측면이 크다 하겠다. 물론 내 게으름이 일차적인 사유가 될 것이다. 즉 블로그에 쌓인 먼지는 주인장이 성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된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이를 부인할 생각은 없다.

   반추하건대, 지난 몇 년간 내 독서는 '문사철文史哲' 중 역사와 철학에 집중적으로 머물렀다. 전통적으로 호감을 보여왔던 장르인 문학엔 한없이 소원했다. 최근 발표된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그간의 내 독서편식을 일깨웠다. 주지하다시피 금년 노벨문학상은 캐나다 단편 여류작가 앨리스 먼로(Alice Munro)에게 돌아갔다. "단편소설을 특별한 예술 형태로서의 완벽한 경지로 올려놨다"고 요란을 떠는 스웨덴 한림원의 시상 배경은 관심 밖이었다. 인문학의 명징한 한 기둥인 문학과 소원해진 내 독서의 일그러진 현존을 응시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중요했을 뿐이다.

    이러한 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었다. 주변이 시끄러웠다. 특히 우리사회가 어딘가의 호도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어두운 현실인식이 '사철史哲'에 대한 내 관심을 부채질했다. 고백컨대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싶었다. 무지가 두려웠다. 알고자 했다. '왼쪽'과 '오른쪽'을 공히 제대로 안 후에 작금의 현실에 가장 적합하고 생산적인 내용을 끄집어낼 수 있는 중용적 지성을 추구하고자 했다. 의도는 그러했다. 만만치 않았다. 결국 허무했다. 세상의 문제와 번민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의 요체는 그저 '아는 것'으로만은 불가능하다는 분명한 진리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삶은 고단하고 세상은 복잡한 것이었다.

   최근 재독한 하이에크의 명저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다룬 신간서적의 후기를 마지막으로 다시 문학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앞으로 블로그 내에서 정치적 입장과 이념주의적 색채를 발산하는 일은 최대한 배제하고자 한다. '순수 북리뷰어'라는 이곳의 순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표현했다. 선을 넘어선 적도 있었다. 경박했다. 부족했다. 스스로 마음을 추스린다.

   온라인서점을 둘러봤다. 반가운 문학 신간소식이 줄지어 메인을 장식했다. 한국 역사사회소설의 대가 김주영은 <객주>의 마지막 10권을 내놓음으로써 마침내 완간을 마무리했다. SF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필생의 역작 <파운데이션>은 그 거대한 시리즈를 모두 모아 완세트로 출간됐다. 신비로운 언어의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는 신간 <아크라 문서>를 이미 출간시켜 호평을 받고 있다. 희대의 이야기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와 우리시대의 공감작가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는 출간을 대기 중이다. 반갑고 흐뭇한 리스트다. 고민없이 전부 카트에 집어넣었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다. 시끄러운 현실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끄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번민하는 현존 인간을 쓰다듬는 가슴의 크기를 확보하는 일은 더더욱 중요하다. 그걸 잊고 있었다. 깨달았다. 뒤를 돌아봤다. 문학의 필요를 새삼 갈망했다. 문학이 공허했던 내 가슴 속의 여백을 무언가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기운으로 채워주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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