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산이 울렸다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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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힘들다. 홉스는 말했다. 인생은 짧고 추악하고 고단하고 가난하다는 것을. 잠시 웃다가도 순간을 서글퍼하며 찰나에 좌절하는 게 인간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고통의 연속성 위에서 펼쳐진다. 자기 앞에 놓여진 복잡다단한 일상의 시공간을 관통하는 힘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항시 고단하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본디 그런 것이기도 하다.

   고단한 인생 가운데 인간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행복'이라는 삶의 배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이상理想이 아니다. 인간이 고통이라는 삶의 엄연한 터널을 통과하게 될 때, 그 속의 공허와 빛의 결여는 행복을 이루는 과정인 동시에 행복 그 자체가 된다. 즉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게 본질이다. 실존은 그 다음이다. 이것이 바로 유일한 인간 삶의 목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행복은 항시 고통을 포용한다. 그 점이 삶의 딜레마다.

   기다림은 본래 신神의 영역이다. 인간은 설계학적으로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한 종족이다. 인간사 모든 불행의 근원은 기다림의 부재 혹은 망각에서 비롯됐다. 인간은 기다린 만큼 행복했고 기다리지 못한 만큼 불행했다. 기다림의 마지노선을 지켜내지 못한 인간은 결국 늪에 빠졌다. 신으로부터 벌을 받은 것이다. 그 벌은 바로 '상실喪失'이라는 참혹한 슬픔이다. 결국 인간은 사랑하는 대상의 부재를 통해 끓어오르는 최극한의 슬픔에 직면하여 자신의 교만을 뒤엎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채웠던 것의 반의지적 결락은 슬픔의 무한대를 통과하여 극한의 고통을 완성시킨다. 궁극의 대상이 시공간에서 이탈되는 경험은 아픔을 말할 수조차 없는 최고의 고통이자 비극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상실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잊고 잃으며 잃고 잊는 게 인간의 수준이다 . 상실은 회복되지 않지만 때로는 망각을 통해 구원받는다. 즉 인간은 상실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망각을 지향하는 특수한 시간의 물리력으로 무장한 단 하나의 존재이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은 항시 어둡고 처연한 배경 속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그러나 어두움이 어두움만으로, 처연함이 처연함만으로 존재했다면 호세이니의 소설은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소설은 항상 인간의 깊고 낮은 곳을 응시한다. 절망 가운데서도 한줄기의 희망이 포착돼 이것을 긍정의 드라마, 즉 빛의 서사로 환원시키는 것은 결국 인간의 내면 속에 존재하는 무언가의 가능성이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 비추는 빛보다 고결하고 숭고한 본질상의 아름다움말이다. 호세이니의 소설은 항시 그 아름다움을 주목해왔다.

   호세이니의 신간 <그리고 산이 울렸다>도 바로 그 아름다움의 선상에 올라 서 있다. 그의 전작들은 한결같이 삶의 처연한 배경을 통해 찬란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는 여성성이 갖는 본질적인 위대함을, <연을 쫓는 아이>에서는 위대한 우정의 파노라마를, 작가는 탄탄하고 숨막히는 서사로 그려냈다. 새 소설은 가난 때문에 운명적인 이별을 맞게 된 남매와 가족의 사랑을 더듬어가며 아프가니스탄 60년의 역사를 관통한다.

   소설의 배경은 아프카니스탄이다. 작가의 모든 작품은 아프카니스탄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작가의 고국이기도 하지만 아프카니스탄이 갖는 현대사의 특수성과 상징성은 인간의 한계와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는 적확한 시공간으로 작용한다. 아프카니스탄은 전쟁, 이념, 종교, 여성, 가난 등의 암울한 현대사의 키워드들이 오롯하게 녹아있는 배경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펼쳐지는 삶을 향한 다양한 몸부림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고 있는 타국의 독자들에게 녹록지 않은 감동을 선사한다.

   신작이 전작과 다른 점은 서사구조의 복잡성이다. 소설은 총 9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952년 가을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3세대를 거치며 1949년과 2010년, 1974년을 오간다. 궁극적인 중심 인물은 파리와 압둘라이지만 9개 장의 주인공은 모두 다르다. 파리를 입양하는 진보적인 여성 시인 닐라, 닐라를 사랑하는 운전사 나비, 카불에서 전쟁 피해자들을 치료하는 그리스 의사 마르코스 등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작품은 아프가니스탄 현대사의 반세기를 훑는다. 또한 작가는 1인칭과 3인칭 시점, 편지 글, 잡지 인터뷰 같은 다양한 형식을 구사하며 극적 재미를 배가시킨다.

   다양한 인물들이 펼쳐나가는 읽히고설킨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굵직한 단 하나의 방향성을 감지하게 된다. 오빠 압둘라에 대한 여동생 파리의 방향성이 그것이다. 파리의 나이 세 살 때 헤어진 두 남매의 비극적 운명은 60년이라는 긴 시간의 벽을 남겨놓았다. 그러나 차원을 넘나드는 무언가의 신비한 힘을 통해 두 남매는 결국 가족의 공명현상共鳴現象을 완성시킨다. 더욱이 그 공명성共鳴性은 동생의 기억을 초월하고 오빠의 질병을 넘어서는 영역에 존재함으로써 가족애가 지닌 태초적 숭고성과 완전성을 드러내는 절대고차원의 물리력이 된다.

   소설에서 숨막히는 대목은 두 장면이다. 공항에서 압둘라의 딸이 자신의 고모와 대면하는 장면, 그리고 압둘라가 딸을 통해 동생에게 전하려 했던 편지가 공개되는 장면은 과히 압권이라 할 정도로 감동적이다. 눈물없이 이 소설을 읽을 수 없다고 한 AP통신의 추천사는 전혀 오버스럽지 않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장대한 서사를 뚫고 이야기의 말미에 도달하게 되면 독자는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강렬한 감동의 자장에 사로잡히게 된다.

   막장을 덮은 후 나는 한동안 정지해 있었다. "삶이란 무엇"이고 "가족이란 무엇"이며 "내 행복의 현상태는 어떠한가" 하는 내 삶의 기초 철학적 질문이 가슴속에서 폭포수처럼 샘솟았기 때문이다. 한참 뒤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고 연이어 곱씹었다. '살아간다는 것'의 엄연한 실재와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의 분명한 당위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결합되기 위해서는 오직 '가족'이라는 작은 천국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이 명징한 진리를 반추하게 한 것만으로도 할레드 할레이니의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별 다섯 개를 받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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