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나 또한 일천한 책읽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누구누구에서 책을 추천하는 것이 적절한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양서를 함께 나누고 그것을 통해 책읽기의 순기능을 확장시키자는 취지에서는 용기를 가져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버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책을 추천하며 서평을 쓰고 있다.

   그러나 독서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을 읽느냐가 아니라 책을 선택하는 자신만의 기준과 방법이다. 그 책이 좋은 책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의 주관이다. 가령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실존주의 철학의 교과서로 보고 성경처럼 머리맡에 두는 독자가 있는 반면 독일 현상학의 아류작으로서 쓰레기로 규정하는 나같은 독자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을 고르는 기준은 본질적으로 타자의 견해를 인식하기 이전에 자기자신의 내면의 기호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읽지 말아야 할 책들이 우리세계에 많이 존재한다고 주장해왔다. 그것은 두가지로 정리되는데 바로 '고전'과 '자기계발서'다. 아니 고전을 읽지 말라니. 어떻게 된 일인가. 항상 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내가 읽지 말아야 할 책으로 고전을 꼽고 있지 않는가. 내가 말하려는 건 '이해되지 않는 어렵고 난해한 텍스트로서의 고전'이다. 본인이 감당하기 힘든 텍스트를 앞에 두고 낑낑대며 오기로 읽는 책은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

   한 번 보자. 케인즈의 <일반이론>이나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아무런 어려움없이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독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이들 서적은 전공자도 혀를 내두르는 난해한 전문서적이다. 이를 고전이라는 명분으로 일반독자에게 읽히게 하거나 읽으려 하는 자들을 보면 씁쓸하다. 왜 이해도 못하면서 어쭙잖은 해설서를 끼고 독서를 둥개는가. 어떤 책에 대해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지는 어느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소화하기 힘든 난해한 고전을 앞에 두고 시간을 낭비하며 독서를 둥개는 독자들에게 나는 일갈한다. 읽지마!

   독서는 오기와 허영으로 하는 게 아니다. 오기로 읽은 책은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물론 본인의 필요에 따라 어려운 책에 도전하는 것 자체를 나무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순수한 관심과 진지한 공부의 차원을 넘어 허세와 위선의 영역으로 넘어든다면, 그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책은 읽지 말라. 정 읽고 싶으면 그 책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지력을 쌓은 후에 다시 도전하거나, 다이제스트 수준의 것으로 핵심만 짚어내라.

   또 하나는 자기계발서이다. 나는 지인들에게 계발서를 읽지말라고 신신당부한다. 내가 계발서를 거부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책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계발서가 가진 본질적인 구조 면에서 카뮈식의 부조리不條理가 예외없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전형적인 자기계발서가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나라는 OECD국가에서 대한민국밖에 없다. 이런류의 책들은 교묘한 선동, 저자만의 기준, 무의미한 합리주의, 뜬구름잡는 달콤한 소리 등으로 인간의 행복을 이상세계에 대한 잠시성(暫時性, transiency)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는다. 독자는 읽는 순간만 환상의 열정에 사로잡힐 뿐이다.

   외람된 얘기일 수 있으나, 계발서에 고무되고 요동하는 이들은 대부분 명확한 자신만의 가치관과 철학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내면 속에 실존하고 있는 '참 나'로서의 견해가 존재하지 않으며 기초적인 인문학적 지식과 식견이 부재하거나 결락되어 있는 것이다. 자신만의 '지적 견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그들에게는 건강한 정신과 영혼을 견인하는 지성의 통찰력 차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중용이 부재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십 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계발서는 불티나게 풀려나간다.

   웃긴 예를 들어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인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가 파산한 것을 아는가. 인세로 어마어마한 수입을 올렸음에도 파산한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어느 기자의 질문에 그가 한 답변이 가관이다. 책에 기록된 '7가지 습관'을 자기 스스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 이라고 그는 말했다. 자기계발서가 가진 부조리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읽지 말라는 것이다.

   소화하기 힘든 난해한 고전서적과 자기계발서적은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 좋다. 인생은 결코 길지 않다. 양서를 선택하는 지혜는 정말 소중하다. 읽어야 할 책을 읽고 읽지 말아야 할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자신의 지성에 달려 있다. 그러나 기억하라. 인간의 삶이란 읽지 말아야 할 책을 읽을 만큼 길지 않고 한가롭지 않으며 값싸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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