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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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이게 바로 소설이다. 무릇 소설은 이래야 한다. 하루키는 문학으로서 소설이 갖추어야 할 전범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가다. 문학의 궁극은 인간이다. 소설의 목적은 인간에 대한 세밀하고 입체적인 성찰 위에 놓여 있다. 하루키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인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정당성의 부여"는 '인간 탐구'로 정리되는 소설의 목적론적 원형에 가장 성실한 의무이자 키워드라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하루키의 힘이다.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긴 제목과는 달리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으로 채워져 있다. 한 편의 소설을 평가하면서 인물과 플롯보다 문장을 먼저 논하는 게 매끄러운 순서가 아닐 수 있다. 본래 소설의 힘은 우선적으로 등장인물의 생명력과 탄탄한 구성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하루키의 소설만은 예외다. 하루키 문학의 고유하고 독특한 주제인 '세계를 외면하며 자아 속으로 침투하는 나'를 표현하는데 있어 간결한 문장만큼 적확한 재료는 없다. 애매모호한 표현법이나 지나치게 만연한 문장은 하루키 스타일이 아니다. 딱딱 끊어지는 명료한 단문장이야말로 하루키 세계의 인물들에게 내재된 '우주 위에 존재하는 초월론적 자기애'를 가장 잘 발현해 낼 수 있는 기술이자 방법인 것이다.

   소설은 36세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나서는 순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쓰쿠루의 여정을 통해 개인과 개인 간의 거리, 자아와 타자 사이의 여백,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시간의 종속성, 내밀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회복 과정 등을 매우 담담하게 그려냈다. 어떤 장면에선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엄연하게 배리되어 있는 꿈의 세계를 통해, 또 어떤 곳에선 잃어버린 과거를 현재와 미래라는 전혀 다른 시간대의 배경으로 치환시키는 차원 이동의 놀이터로, 또 다른 곳에선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더이상 진실됨의 유의미성을 보증할 수 없는 '본질된 참'의 애매성으로, 작가는 한 개인이 반드시 짊어져야만 하는 숭고한 순례의 길을 입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담아냈다.

   주인공 쓰쿠루는 극도 공허와 절대 고독의 자장에 허덕이는 하루키적 인물의 전형이다. '삼십대 중반의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현재의 시점과 학창시절의 잃어버린 과거의 시점이 반복적으로 교차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때는 세계의 전부로만 여겨졌던 학창시절의 네 친구들로부터 이유도 모른 채 버림받은 쓰쿠루의 아픈 상처와 이로 야기된 극강의 외로움은 소설 전체의 질감을 규정해버리는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대학시절 잠시나마 쓰쿠루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하이다와 현재의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인 사라는 쓰쿠루에게 긍정의 아이콘이다. 그토록 절친했던 친구들로부터 절교를 당한 쓰쿠루에게 하이다와 사라는 쓰쿠루 자신의 삶을 재차 돌아보게 하고 원했던 죽음을 포기하게 하는 희망의 동력이 된다.

   외연적으로 보자면, 이 소설은 '색채'에 대한 이야기다. 쓰쿠루를 버렸던 나고야 학창시절의 네 친구들은 모두 이름에 색채를 담고 있다.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 등 색채가 들어가 있는 네 친구들과 달리 쓰쿠루는 색채가 없다. 남자 친구 둘은 성이 아카마스(赤松)와 오우미(靑海)이고, 여자 친구 둘은 성이 시라네(白根)와 구로노(黑野)였다. 오직 쓰쿠루만이 색깔과 연결되지 않는다. 이러한 쓰쿠루의 컴플렉스(?)는 차후 그가 인간관계에서 아이러니한 민감성을 갖게 되는 내밀한 원인이 된다. 이후 그가 만나는 사람마다 한결같이 이름에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이는 쓰쿠루에게 매우 큰 정신적인 부담으로 작용하는데, 이름에 국한된 것임에도 색깔의 결여를 자신의 고유성에 대한 존재론적 위험으로 규정하고야 마는 것이다. 쓰쿠루의 이 불편한 착각이 소설의 분위기를 한층 더 어둡게 만드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네 친구들로부터 그룹에서 버림받았을 때, 그것은 마치 쓰쿠루의 '무색채'가 증명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수영을 통해 사귄 하이다와의 짧은 만남과 친구이자 연인인 사라와의 관계를 통해 쓰쿠루는 자신에게도 색채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나간다. 사라의 제안에 따라 16년만에 네 친구들을 직접 만나는 용기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절교당한 이유와 이와 연관된 에피소드들을 하나둘씩 알아가게 된다. 이 순례의 여정은 쓰쿠루 자신의 내면 속에 존재했던 '본질된 참 나'로서의 색채가 지니고 있던 고유성과 명징성을 발견하는 통로였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소설은 하루키 문학의 전형성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이는 소설 속 장치들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는데 '음악'과 '섹스'는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들이다. 하루키는 그의 비블리오그래피에서 일관되게 음악을 틀어왔고 끊임없이 섹스를 표현해왔다. 소설에서 베르만이 연주하는 <순례의 해>가 끊임없이 재생 반복되는데 이는 쓰쿠루의 내면을 정돈시키는 핵심적 장치로 작용한다. 또한 빈번하게 등장하는 섹스씬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성행위 묘사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방향성과 현재성을 담아내는 중요한 메타포가 된다. 즉 음악을 통해 평정을 얻는 인간상의 설정과 거듭 반복되는 구체적인 섹스장면의 배치는 인간의 내면와 외연을 이어주는 통로로서의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이 결국 하나로 합치될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에 대한 소중한 이미지인 것이다.

   한 가지 의문해보자. 소설에서 하루키가 제시한 '순례'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 이에 대한 사유는 이 소설을 오롯하게 흡수하는데 꽤 중요하다. 왜냐하면 쓰쿠루의 순례가 외연적으로는 절교당한 이유를 찾는 과정으로 보이지만 종국의 내포적 의미는 '나'를 객관적으로 천착하기 위해 나서는 열정적인 자기발견과정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쓰쿠루가 잃어버린 과거를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참된 내면 속으로 끊임없이 침잠하며 진정한 자기자신이 되어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키의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그것은 세계 속의 '나'가 아닌 자아 속의 '나'로 규명된다. 하루키의 '나'는 아무런 목적 없이 무의미한 것에 지나친 열정을 보임으로써 어떤 의미나 목적을 갖고 있는 '너'에 대한 우월성을 확보하는 자세에 존재하는 초월론적 자기의식이다. '나' 외의 객관적인 세계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나'의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또 타인의 자아도 '나'의 의식 내용과 나란히 주어진 것에 불과하다.
결국 하루키의 '나'는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나'가 된다. 자신이 잃어버린 무엇, 즉 결락 내지는 타자화한 내면의 또 다른 자아를 찾아 외부세계로 한걸음 내딛게 된다. 즉 다양한 자아 속에서 자신의 진본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은 그의 모든 소설을 관통하는 흐름인 동시에 전작 『1Q84』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부분이다. 사실 새로울 건 없다. '나'에 대한 끊임없는 객관성의 부여, 그리고 그 유일한 매개로써 '사랑'이라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선善을 제시한 이야기 구도는 항시 하루키가 그려왔던 방식이기 때문이다.

   『1Q84』에서 펼쳐지는 모든 초자연적인 사건들은 10살 때 한 소녀가 한 소년의 손을 잡음으로써 시작된다. 거기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한 소년의 행동이 세계가 일그러지는 모든 판타지 현상을 추동한다. 즉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종교, 문화, 관념, 철학, 현실, 상실, 고독 등은 '나'라는 실존성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한 통로일 뿐이다. 『1Q84』의 초반부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의 지류들이 후반부에서는 한 줄기 본류로 통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종내 사랑으로 귀결되고야 마는 것이다. '나'와 다른 또 하나의 '나'를 연결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인간의 구체적인 '사랑'인 것이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도 『1Q84』의 주제를 그대로 재청한다. 결국 쓰쿠루를 억누른 극도의 공허와 불안은 현실의 유일한 도피처이자 해결책으로 존재한 사라와의 관계맺기를 통해 해소되고 부서진다. 쓰쿠루가 순례의 길을 통해 가장 핵심적으로 깨달은 것은 사라를 사랑하고 있는 엄연성에 대한 명확한 자기인식이었다. 사라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이후 그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결국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에 대해 쓰쿠루는 선연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됐다. 결국 '사랑'이었던 것이다. 인간 삶의 모든 혼란의 실타래를 종국적으로 사랑이 끝맺음시킨다는 하루키적 메시지의 보편을 그대로 이어나가고 있다.

   서평을 정리하자. 하루키의 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개인 간의 거리를 천착하는 과정을 통해 자아 속으로 침잠하여 자신의 진본을 명징화해 나가는, 그러나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고야 마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다. 참 잘 썼다. 역시 하루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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