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웃님으로부터 폴 존슨(Paul Bede Johnson)의 <2천 년 동안의 정신, history of Christianity>이라는 세 권의 두꺼운 기독교 역사책을 추천받았다. 살림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인데 현재 절판되어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4대 온라인서점을 위시하여 오프라인 대형서점을 두루 훑고 다녔지만 단 한 권도 찾지 못했다. 중고로 사는 것은 마뜩치 않았다. 새 책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출판사에 직접 연락했다. 종국적으로 파주시 출판단지까지 가서 몇 권 남지 않았던 새 책을 구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에 주목한 이유는 간명하다. 기독교 역사 2천 년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물론 이 책만 갖고 교회사를 개괄해보려는 건 아니다. 개혁주의 신학자이신 교회의 협동목사님으로부터 평신도가 읽는데 부담이 없고 동시에 가볍지 않은 책을 추천받았다. 그 책은 별도로 주문했다. 즉 기독교 내부의 시각에서 쓴 책과 외부의 관점에서 쓴 책을 동시에 읽음으로써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성과 균형성을 나름 확보해보려 한 것이다.

   저자 폴 존슨은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다. 엄연한 보수주의자로서 보수·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역사를 천착하고 있는 석학이다. 그의 저작 중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 : The World from the Twenties to the Nineties>는 20세기 현대사를 꿰뚫을 수 있는 명저이며, <지식인의 두 얼굴, Intellectuals>은 기존 지식인들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파헤친 흥미로운 저작이다.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저자 특유의 방대한 자료 모음과 힘 넘치는 서술은 그의 저작들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그간 읽어왔던 존슨의 책들을 통해 그의 집필 스타일을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 이웃님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에 <2천 년 동안의 정신>은 적기에 내 손 안에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한국 기독교는 이곳저곳에서 어마어마한 욕들을 폭포수처럼 얻어맞고 있다. 물론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 중에는 사실과 다르고 논리가 빈약한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한국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이 욕 먹을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교회 관련 좋지 않은 뉴스를 접하게 되면 기독교인으로서 치솟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감출 방도가 없다.

   역사를 진지하게 되돌아보면 이런 문제가 비단 한국 기독교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봉착한다. 기독교가 지난 2천 년 간 인류에게 선사한 밝은 에너지의 이면에는 참혹한 역사적 편린 또한 존재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마녀사냥'과 '종교재판'을 위시하여 참혹한 전쟁과 살육의 피의자로서 교회권력은 직·간접적인 악행을 서슴없이 자행해왔다. 이에 수박 겉 핡기 식으로 배우고 알아왔떤 교회사에 대해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정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책을 읽고 철학을 공부하며 세계와 대화하는 일은 적잖이 고통스럽다. 신神의 가르침은 세상과의 단절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과의 분명한 구별을 선포한다. 이 '단절'과 '구별'을 구분하고 해석하며 실천하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여간 힘든 일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과 세상의 지식에 대해 제대로 알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용기가 필요하고 희생이 요구되기도 한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필히 세상과 씨름할 수밖에 없는 이 지독한 '인간적 실존'은 본질적이고 태동적으로 자기 자신의 신앙을 추동하는 '신적 본질'에 종속된 채 맞물려 나아가는 함수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내 고민은 결국 지성의 목마름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었다. 2천 년의 교회사를 침착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협동목사님의 추천도서는 분명한 신앙서적에 속한다. 기독교 2천 년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오셨는지 개혁주의 관점에서 건강하고 은혜롭게 다루었다. 반면 존슨의 책은 저자 자신이 기독교임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외부자의 시선에서 객관성을 견지하며 교회사를 서술했다. 이러한 내부와 외부의 관점을 동시에 탐구하는 양자적兩者的 책읽기는 교회사를 균형있고 입체적으로 조망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의 저서와 철학사 관련 책을 끝내면 바로 진행할 계획이다.

   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의심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이다. 성경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기독교적 세계관의 전통과 질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오직 믿음'으로 대변되는 칼빈주의(Calvinism , ─主義) 신학을 굳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무신론(atheism , 無神論)과 범신론(pantheism , 汎神論)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종교는 관념'으로 규정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Marxism and Leinism)의 계급사상과 유물론(materialism , 唯物論)을 혐오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자생적 행동과 행위에 존재적 본질을 두는 프랑스식 실존주의(existentialism , 實存主義) 철학을 배척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결코 세상의 목소리에 무조건적인 배타로 일관하는 꽉 막힌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세상과 타협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신앙을 지키면서 세상과 따뜻하게 호흡하기를 소원하는 내 지성과 열정에 대한 존재론적 약동인 것이다. 이번 책읽기가 그 길을 안내하는 작은 촛불이 되기를 기대한다.

   정말이지, 인생은 짧고 독서는 길다.
오. 주님. 신앙고백이 절로 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