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 누구나 생애 한 번은 그 길에 선다
윌리엄 폴 영 지음, 이진 옮김 / 세계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 이 소설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삼위일체三位一體의 하나님, 즉 기독교의 교리가 밑바탕된 분명한 기독소설입니다. 동시에 비기독교인이 읽어도 무방할 정도의 공간성을 확보한 판타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설이 주는 근본적인(종교적인) 메시지가 선명하기 때문에 기독교적 관점과 교리적 입장에서 서평을 쓸 수밖에 없었음을 밝혀둡니다.


   홉스는 말했다. 인생은 짧고 가난하고 추악하고 고단하다는 것을. 인간이 살아있는 목적은 분명 행복하기 위함일텐데 그러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이 절대다수인 것 같다. 행복은 만인의 목적이다.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한다. 이는 대부분의 인간이 행복을 추동하는 근원적인 에너지가 어디서 발현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인간을 불행하게 한다.

   신神에게 행복이라는 용어는 통용되지 않는다. 신은 스스로 존재한다. 인간의 지성과 과학으로는 신의 실체를 가늠할 수 없다. 신은 신만의 세계가 있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물론 두 존재 사이의 교차점은 있다. 그러나 그 지점은 매우 작고 부분적이며 일시적이다. 인간은 신이 보여주는 만큼만 볼 수 있고 허락하는 만큼만 느낄 수 있는 지극히 미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 행복의 획득은 신의 차원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가능케 한다.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섭리해가는 초월자라는 점이 믿어지면 행복을 이루는 궁극의 요소들이 신성에서 발현돼 인간에게 전도된다는 초고차원적 진리에 다가설 수 있게 된다. 인간의 행복은 언제나 이 기준에서 왔다 갔다 해왔다.

   윌리엄 폴 영의 신작소설 『갈림길』은 신비한 기적의 이야기를 통해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탐구한다. 이 소설은 전편 『오두막』과 마찬가지로 큰 고난을 당한 주인공이 특별한 계기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면서, 상처와 오해로 인해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스스로 쌓아놓은 벽을 허물고 관계를 회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 앤서니 스펜서는 외로운 인물이다. '토니'라 불리는 스펜서는 부유하고 오만하기 그지없는 이기적인 삶을 영위한다. 그는 자신밖에 모르고 자신이 전부인 세계를 살아간다. 그러던 중, 갑자기 길에서 넘어져 뇌사상태에 빠진다.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자신의 내면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은 아무런 지도나 안내판도 없는 황폐화된 곳이다. 아일랜드인 남자 잭과 농장에 살고 있는 남성 '예수', '오두막'에 살고 있는 인디언 할머니 등을 만나면서 토니는 내면을 회복시키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신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토니는 그 여정을 통해 신의 숨결에 깊이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고독과 상처를 치유받는다.

   작가는 전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전편 『오두막』과 마찬가지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전면에 내세운다. 주인공은 삶에서 받은 고난과 상처들을 온전한 삼위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치유한다. 작가는 기독교라는 하나의 종교적 카테고리에 함몰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전적으로 주목한다. 분명한 신앙적 메시지임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판타지적 요소가 적확하게 가미됐다.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성부聖父·성자聖子·성령聖'이라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적三位一體的 속성을 주목해왔다. 하나님의 본성은 '관계'에 있는 것이며 이는 신성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는 기독교적 신관神의 전제에서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삼위일체관은 세련되고 현대적이며 파격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초대교회 때 아타나시우스가 확립했던 기독교의 정통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되, 삼위로 존재하며, 세 위격은 하나로 통일된다, 는 기독교 교리에 완벽하게 일치되어 있다.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성에 대한 지독한 강조는 기독교의 핵심교리와 근본정신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근거가 되며, 그의 소설이 가진 가장 주요한 특징이 된다.

   삼위일체는 '관계'이다. 동시에 '희생'이다. 그리고 결국, '사랑'이다. 모든 것은 여기서 출발한다. 만약 신이 삼위일체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신은 인간이 되지 않았을 것이며, 그로써 신과 인간은 관계적으로 차원이 이동되는 일체적인 찬탄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신의 본성은 더욱 구체화된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고, 인간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며, 인간의 슬픔과 어둠 속을 파고들어 선함과 상냥함과 진실함을 키우며 고취시킨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삼위일체성 속에 내재된 인간을 향한 절대적 사랑의 디테일인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인간의 행복'은 바로 이 디테일을 알고 느끼며 체감하는 여정 위에 놓여 있다. 소설 속 토니의 변화 과정이 그랬다. 그의 변화는 '관계' 안에서 발생했다. 하나님과 자기자신 사이의 관계, 동시에 나와 또 다른 인간, 즉 타자 사이의 관계를 통해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본질적인 행복을 맛보게 된 것이다. 또한 토니가 선택한 종국적인 결정, 즉 '달리다굼(Talitha cumi, "소녀여 일어나라")'의 기적은 자기자신은 물론 인간이라는 가치와 소중함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결국 신성의 발현이 작동시킨 신비스러운 '관계맺기'였다.

   소설 『갈림길』의 메시지는 명징하다. 우리 자신이 회복되면 달리다굼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로하고 안내하며 실행하는 이는 바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헤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지를 신비로운 판타지로 그려내면서, 동시에 독자에게 어떤 길로 걸어가야 할 지를 질문하고 있다. '갈림길'은 우리의 상처투성이 내면을 정화하고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선택의 여로인 것이다.

   어느 누구나 갈림길을 만난다. 소설의 제목 '갈림길'은 인간의 선택을 질문하는 작가의 상징적 메시지다. 삶은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한다. 인생은 결국 선택의 역사다. 나 자신을 깨닫고, 신의 사랑에 이르며, 행복에 다다르는 길은 신의 섭리 안에서 인간의 의지가 작동된 매커니즘의 아웃풋이다. 즉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행과정 위에서 인간의 상대적인 선택이 만들어내는 초우주적 시공간의 화학현상인 것이다. 이 비밀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만 신적인 평온이 부여된다. 갈림길은, 바로 '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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