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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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을 좋아한다. 아마 진보좌파에서 내가 호감을 표하는 몇 안 되는 지식인(정치인)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첫째는 바로 그의 '합리성'이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언행와 결단은 그 표현방식이 경박했을지는 몰라도 내용에 있어서는 대부분 합리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지나친 이성주의理性主義에 함몰되지는 않았다. 논리적 궤도 안에서 자기만의 개성으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는 분명한 매력이다.

   그를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대중적 글쓰기'에 있다
. 유시민은 어렵지 않게 쓴다. <거꾸로 세계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출간된 그의 여덟 권의 저작들은 한결같이 쉽다.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수준과 범위를 담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역사와 철학을 위시한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끊임없이 외면되어 왔다. 인문학의 위기라고까지 한다. 이런 배경에서 저자의 쉽고 간결한 글쓰기는 현실정치에 관심있는 평범한 대중을 인문학적 책읽기로 유도하는데 나름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요컨대 '쉽게 쓰는 것'은 글쟁이로서의 유시민의 분명한 강점이다.

   정치인 유시민이 자유인으로 돌아왔다. 정치인 딱지를 떼자마자 신간이 출간됐다. 그 시기가 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아 미리 적기適期를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평소 자유주의자(自由主義者, liberalist)를 자처해온 그였기에 정치를 그만두고 자유인으로 돌아온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유시민의 신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자유인으로 돌아온 한 지식소매상의 깊은 고민와 사유의 조각을 담아낸 인문학 책이다.

   제목이 무겁다. 저자가 제시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먹고 사는 문제, 즉 개인과 국가의 경제적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자못 진지한 테마들을 관통하며 삶의 유한성과 죽음의 엄연성을 철학적인 사유로 탐색한다. 이전 저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뇌와 숙연한 태도는 다시 자유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잘 반영한다.

   책의 구성은 정돈적이며 체계적이다. 저자는 1장에서 먼저 '삶'을 말한다. 그 뒤 2장에서 '죽음'을 해석한다. 그러면서 행복한 삶을 위한 네 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일'과 '사랑'과 '놀이'와 '연대連帶'가 그것들인데, 이는 임상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이 수많은 관찰과 상담사례에서 얻은 '위대한 세 영역'에 기반한 것이다. 여기에 저자는 '연대'를 추가시켜 셀리그만의 견해를 보완하고 있다. 각 키워드별로 그 긴요성을 설명하는 저자의 논리는 공감적이다. 3장에서는 이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구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삶을 망치는 헛된 생각들'을 다루고 있는데 저자가 서술하는 많은 일화와 다양한 논증은 책 읽기의 속도를 배가시킨다.

   이 책이 저자의 기존 저작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무거움'이다. 저자는 삶을 다룬 1장보다 죽음을 말한 2장에 훨씬 더 많은 분량을 할당했다. 또한 죽음을 말할 때는 다양한 인문학적 콘텐츠들을 여과없이 불러들인다. 카뮈의 부조리不條理와 실존주의實存主義, 마르크스주의와 유물론唯物論, 프로이트 심리학과 칸트의 정언명령定言命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열거된 풍성한 인문학적 사유의 향연은 인간 죽음의 본질을 깊이 천착하고자 하는 저자의 진지한 접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군데군데에서 발견되는 저자의 적극적인 정치적 견해도 눈에 띈다. 정치인 신분을 떠났기에 정치적 발언을 하는 저자의 마음은 한결 편해보인다. 이명박 정부 5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 전직 대통령 평가, 박원순 시장의 역량, 안철수를 바라보는 시선, 통합진보당 사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등 저자의 정치적 견해는 책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연속된 선거 패배와 정치 비전의 실패로 마무리된 그의 정치인생을 감안한다면 다시 자유인으로 돌아와 마음 편히 내뱉는 정치적 발언들은 나름의 의미와 재미를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책은 나와 견해를 달리 하는 부분이 꽤 존재한다. 그중 보수주의(conservatism , 保守主義)와 진보주의(progressivism , 進步主義)를 정의하는 저자의 논리는 내 견해와 많은 부분에서 상치된다. 저자는 보수와 진보를 '생물학적 접근법'으로 정의한다. 보수주의는 인간 여러 본성 가운데 '진화적으로 익숙하고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것'을 지향하는 이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보수와 보수정당을 싫어한다고 얘기한다. 즉 진화에 대한 순응과 생물학적 흐름에 대한 순종을 지향해나가는 보수주의가 싫다는 것이다. 이념에 대한 저자 개인의 호오好惡를 뭐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저자의 개념화는 극히 좁고 편향적인 시각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에 동의하기 힘들다.

   저자는 편견에 함몰된 전제적前提的인 개념화를 하고 있다. 그것은 생물학적 접근법이 보수보다 진보를 진화적인 관점에서 보다 우월한 선상에 올려놓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진보주의를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으로 정의하면서 보수주의는 이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상대적으로 보수를 차갑고 냉정한 것으로 인식해버리는 전제가 깔려 있다. 더욱이 '자유'와 '정의'를 진화적으로 새롭고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행동의 영역으로 규정하며 진보의 카테고리 속으로 은밀하게 편입시키는 저자의 인식은 몹시 불편하다. 자유와 정의는 명징한 보수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을 지나면서 보수와 진보의 개념은 끊임없이 '진화'되어 왔다. 보수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현대적 보수주의는 자유주의(liberalism , 自由主義)를 자연스럽게 포함한다. 두 이념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인간 공동체의 전 영역에서 포괄적이고 지배적으로 침투되어 있다. 또한 나라마다, 세대마다, 민족마다 이를 정의하는 기준은 상대적이고 유동적이다. 이러한 복잡다단한 매커니즘을 단지 '생물학적' 차원에서 풀이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면적이고 비좁은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일부분에서는 성립될 수 있겠지만 보혁保革의 보편적 요소들을 매끄럽게 포함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해석은 설득력을 잃는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유시민을 진보주의자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가 현실정치에서 보여준 언행과 정책적 결단은 진보와 대립되는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 법안'에 찬성표를 행사한 것은 이유야 어떻든 진보주의자로서는 부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또한 대학강연에서 끊임없이 공동체에 대한 희생과 국가에 대한 책임을 요구해왔다. 그간 저작들에서는 마르크스주의의 허구를 지적하고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정의를 강조했다. 그의 이러한 발언과 행동은 정통 보수주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가 분명한 진보주의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킨다. 실존주의와 유물사관에 대한 견해, 보편적 복지와 국가 부문의 증대를 바라보는 시각, 보수와 보수정당을 규정하는 인식, 휴머니즘과 진보적 연대의식의 강조 등은 그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주의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저자의 이념적 주관주의와 논증의 굴곡된 논리가 이 책이 가진 총체적인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삶과 죽음을 철학적 논증의 방식으로 관통하여 독자에게 녹록지 않은 질문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2장은 독립적으로 죽음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카테고리의 독립성과는 별도로 저자는 책 내용 전반에 걸쳐서 일관되게 죽음을 탐구한다. 일정 기간의 안정된 직업 없이 본업의 변화를 끊임없이 꾀해오면서 그는 정치의 영역에까지 발을 디뎠다. 어쩌면 현실의 정치는 그에게 인간 삶의 비루함을 가장 잔인하게 보여준 공간이었을지 모른다. 이를 카뮈 식으로 말하자면 '부조리不條理'다. 저자가 실제의 삶과 일상 속에서 기묘한 괴리나 위화감과 함께 직접 느껴본 인생의 배리背理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저자의 나이가 55세를 넘어선, 즉 인생의 반환점을 오래전에 돌아섰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는 남은 인생의 아름다운 비전을 긍정하고자 하는 저자 자신의 열정적인 고백이며 도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삶과 죽음을 모두 '자연의 한 조각'으로 규정했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저자의 문장과 오버랩된다.

   서평을 정리하자.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르고 많은 부분에서 견해를 달리하지만 나는 이 책을 젊은이들에게 추천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인문학적 콘텐츠의 배치와 유시민 특유의 쉬운 서술이 청춘이라면 꼭 한 번 사유해볼 만한 삶과 죽음과 행복에 대한 경험적이고 철학적인 논증을 매우 힘있게 추동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신념과 학문적 견해가 다르다 할지라도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는 한 권의 진지한 인문학 책으로서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를 갖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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